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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빌레몬서

샤마임 202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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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빌레몬서


[장별설교] 빌레몬서

 

빌레몬서는 마지막 바울서신에 속합니다. 빌레몬서 후에 나오는 히브리서는 바울 서신이 아닌 것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하지만 바울적인 성향이 강한 서신입니다. 기존의 바울의 신학과 약간이 차이가 있고, 헬라어 원본 자체가 바울적인 느낌은 나지만 바울의 문체가 아니기 때문에 바울 서신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빌레몬서는 한 장으로 이루어진 매우 짧은 서신입니다. 또한 목회서신처럼 한 개인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빌레몬의 수신자는 빌레몬입니다. 서신의 내용을 살펴보면 빌레몬에게 있는 종인 오네시모가 주인인 빌레몬에게 해를 끼치고 도망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1절에서 바울은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다라고 표현합니다. 골로새서 4:9에 보면 신신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라는 바울의 표현이 등장합니다.

 

골로새서 4: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빌레몬서는 바울 서신 중에서 옥중서신으로 분류됩니다. 옥중서신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압니다. 디모데 후서도 실제로는 옥중에서 썼지만 옥중서신으로 분류하지 않고 목회서신으로 분류합니다. 옥중 서신은 바울이 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붙잡히게 됩니다. 가이사랴에 감옥에 머물다 가이사에게 호소하여 로마 감옥으로 압송됩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두 번에 걸쳐 수감됩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것이 1차 수감이고, 디모데 후서를 기록한 시기가 제2차 수감시기입니다. 빌레몬서는 1차 수감시기인 60-62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빌레몬서는 골로새서를 보내기 전에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골로새서 4장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빌레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겹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골로새에 속한 성도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가 목회자로 활동했고, 에바브라가 로마로 떠난 후 아킵보가 골로새교회의 목회자로 활동합니다.(4:17) 빌레몬은 목회자는 아니었지만 골로새교회를 전반적으로 돌보고 이끄는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1:2에 의하면 빌레몬의 집은 교회로 사용되었습니다. 학자들은 빌레몬이 사업차 에베소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바울의 복음전도를 듣고 회심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우리는 빌레몬이 누구이고 정확한 회심의 이유와 순간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부자였고 뛰어난 성품을 지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이 정도로 이해하고 본문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빌레몬서는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1-7절 바울의 인사와 기도

8-20절 오네시모를 위한 바울의 호소

21-25절 마지막 부탁과 인사

 

4-7절 빌레몬에 대한 감사

 

바울은 인사를 마친 다음 곧바로 빌레몬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4) 이유는 빌레몬이 예수님만을 사랑할뿐 아니라 성도들 향해서도 많은 사랑을 행했기 때문입니다.(5) 바울은 사랑과 믿음을 함께 사용함으로 둘 사이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다른 듯 하나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교만한 것이고, 믿음 없는 사랑은 거짓된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은 사랑과 믿음이 함께 함으로 연합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6절에서는 믿음의 교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6절은 호소문 또는 기도문입니다. 평서문으로 번역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신대 길성남 교수는 이렇게 번역하기를 제안합니다.

그대가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선을 깨달음으로써 그대의 믿음의 교제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효력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의 기도문은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기 보다는 이미 알려진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7절에서는 이미 성도들이 빌레몬으로 인해 평안함과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8-20절 오네시모를 위한 바울의 호소

 

8절부터 20절까지는 오네시모를 위해 간구합니다. 비록 목회자로 마땅히 명할 수 있지만 사랑으로 간구’(9)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빌레몬의 승낙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1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일을 진행할 때 억지로 하지 아니하고 먼저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합니다. 목회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며, 그로 인해 그들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먼저 오네시모는 전에는 무익했으나 이제는 네게 유익하게 되었습니다.(11) 바울은 오네시모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에는 즉 거듭나기 전에는 쓸모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후 오네시모는 유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10절에서 갇힌 자 중에서 낳은 아들이란 표현은 옥중에서 바울이 오네시모를 만나 복음을 전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바울의 복음 전도를 통해 오네시모는 변화되었고, 바울에게나 오네시모에게 유익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쓸모없는 사람에서 유익한 존재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쓸모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탐욕에 이끌려 죄를 짓자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무익과 유익의 차이는 한 가지입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세우고 섬기는가 아니면 해를 끼치는 존재인가라는 점입니다. 전에는 오네시모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해를 끼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 타인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아들’(10)로 표현하면서 내 심복’(12)이라고 표현합니다. 13절의 표현을 보면 바울은 옥중에서 오네시모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종과 동역자로 대하라.(16,17)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사랑 받는 형제’(16)로 대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또한 바울을 동역자로 생각한 것처럼 오네시모를 바울 처럼, 즉 동역자처럼 대해주기를 간청합니다.(17) 심지어는 만약 불의나 빚진 것이 있다면 바울 앞으로 계산하라고 부탁합니다.(18) 바울이 얼마나 오네시모를 아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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