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별설교] 디모데후서3장 말세를 만난 그리스도인의 자세
[장별설교] 디모데후서3장 말세를 만난 그리스도인의 자세
디모데후서 3장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두인 1-9절에서는 종말론적 현상 속에서 드러나는 악의 현상들을 열거합니다. 두 번째 부분인 10-17절에서는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설명합니다. 말세의 때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탐욕적 삶이 지배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배신하며, 쾌락을 사랑합니다. 초반부는 5절의 말씀대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바울은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며, 성경에 천착(穿鑿)할 것을 당부합니다. 이제 디모데후서 3장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1-9절 말세와 악의 발현
10-17절 말세를 만난 그리스도인의 자세
1-9절 말세와 악의 발현
바울은 디모데에게 각별히 주의를 줍니다. 말세의 때가 되면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번역상의 모호한 감이 있습니다. 개역을 하면서 왜 이렇게 모호하게 번역하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하여튼 아래의 두 번역을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있습니다.
[표준새번역] 그대는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공동번역] 마지막 때에 어려운 시기가 닥쳐 오리라는 것을 알아 두시오.
즉 말세가 되면 고통의 때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복음과 약간 다른 의미로 보입니다.
가장 먼저 자기를 사랑합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은 타인을 자신을 위해 수단화 시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미들이 연이 등장합니다. 자기 사랑은 다시 ‘돈을 사랑’하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자랑과 교만은 한 몸을 이룹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을 자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입니다. 또한 타인을 비방합니다. 교만한 자들은 타인이 자신보다 뛰어난 것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반드시 그를 깎아 내려야 합니다. 교만한 자는 필연적으로 비판자들이며,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말세에 나타난 현저한 특징입니다. 성경에서 부모에 대한 거역은 하나님을 거역한 것과 동일시 한다는 점에서 부모 거역의 죄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십계명의 사람과의 관계에서 첫 계명을 부모를 공경으로 주셨습니다. 바울은 부모 공경을 ‘약속이 있는 첫 계명’(엡 6:2)이라고 선포합니다. 과연 부모에 대한 공경은 모든 계명 중에서 기본이 됩니다.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감사는 자족에서 나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죄로 가득찬 세상에서 아무 이유 없이 감사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함으로 얻는 감사입니다. 거룩은 말씀에 합당한 삶을 의미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성도답게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때 거룩하게 됩니다.
무정( ἄστοργος)은 애정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감정이 메말라 있는 상태입니다. 로마서 1:31에서도 동일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성령 없는 자들의 특징이 바로 무정한 자들입니다. 타인의 감정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상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긍휼의 주님이셨습니다. 사람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알고 함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지성적인 마음만 통할 뿐 아니라 감정을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무정한 것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존재의 양상(樣相)입니다.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고 조언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이후의 것들도 결국 교만하고 탐욕적인 성향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원통함을 풀지 않고, 모함하며, 절제하지 않고,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3절) 이와 같은 것들은 바울이 설명한 사랑의 모습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사납고(3절), 조급하며(4절) 쾌락을 좋아하는(4절) 현상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한 탐욕적 형태입니다.
바울을 계속 탐욕에 대해 경계합니다.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고 말합니다.(4절) 지식적인 욕망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악한 마음으로 진리를 탐욕적으로 대하는 자들이 분명합니다. 뭔가 신비로운 지식을 추구하며, 마치 신앙의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7절)다고 말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8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로마서 1:18-32의 내용과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방치한 자들입니다.
정리해 봅시다. 말세의 공통적인 현상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족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며, 교만하고 비방하고 모함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부모의 권위를 부정하며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기만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묵상하고 즐거원합니다.(시 1:2)
10-17절 말세를 만난 그리스도인의 자세
말세를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먼저 자신이 박해를 받는 일을 소개합니다.(10-11절) 그러나 주님께서 건지셨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은 박해를 받으리라고 정의합니다.(12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불가피하게 박해와 핍박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박해가 일어날 때 이상하게 여기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13절을 유의해 봅시다. 악한 자들은 속이기도하고 속기도 합니다. 그들은 교만하기 때문에 스스로 지혜롭다 역깁니다. 남들을 완벽하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과 같은 교활한 자들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입니다.(9절)
종말의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답이 있습니다.
ㄱ.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
악의 시기에 교활하고 교만한 자들이 승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며 마침내 패배할 것입니다. 위기의 때 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한 것에 머물러야 합니다.
ㄴ. 성경의 유익(14-17절)
배우고 확신한 것은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15절) 바울은 7절과 비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경을 지혜(σοφίζω)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된 지혜는 간교하고 교활한 세상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알고 확신하는 성경에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15절)라고 설명합니다. 구약은 구약 자체가 아니라 신약의 관점, 즉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재해석된 구약이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로 인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바울이 언급한 성경은 구약인가?
우리는 성경이라는 표현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성경’을 신구약을 전체적으로 합한 것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신약 시대에 성경은 일차적으로 모세 오경을 말하며, 그 외 선지서들과 포함한 것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구약을 성경이라고 말했을까요? 헬라어 원본으로 들어가면 성경은 ‘γράμματα’(15절) ‘γραφὴ’(16절)로 기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NA28] 15καὶ ὅτι ἀπὸ βρέφους [τὰ] ἱερὰ γράμματα οἶδας, τὰ δυνάμενά σε σοφίσαι εἰς σωτηρίαν διὰ πίστεως τῆς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16 πᾶσα γραφὴ θεόπνευστος καὶ ὠφέλιμος πρὸς διδασκαλίαν, πρὸς ἐλεγμόν, πρὸς ἐπανόρθωσιν, πρὸς παιδείαν τὴν ἐν δικαιοσύνῃ,
두 단어의 원형은 ‘γράμμα’로 우리가 흔히 문법으로 번역하는 gramma의 원단어입니다. 뜻은 손으로 기록하여 쓴 문서들을 말합니다. 즉 편지나 서신, 또는 문서 등을 말합니다. 쿠텐베르크 인쇄기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문서는 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단어입니다. 구약 성경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후에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인 회당에 보존되어 있는 토라(모세오경)의 일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efer_To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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