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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장

샤마임 2020.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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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

요한일서 3장은 형제 사랑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3장의 핵심 구절은 16절로 형제 사랑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1. 1-6절 하나님을 앎이란 무엇인가

2. 7-12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목적

3. 13-24절 형제를 사랑하라

 

1. 1-6절 하나님을 앎이란 무엇인가

 

요한은 3장을 시작하면서 진정한 앎이 무엇인가로 시작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인간의 힘으로 다다를 수 없는 깊은 심연(深淵)이 놓여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지식은 참된 영생과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1절은 감탄사로 시작합니다. 1절을 다시를 원어에 근접하게 번역해 보면 이렇습니다.

  •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ἀγάπη)’로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으로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을 말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그 사랑이 너무나 감격스러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랑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거주하시는 성령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큰 은혜를 알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한 우리가 종말의 때에 예수님처럼 변화될 것을 2절에서 이야기합니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연약하고 흠이 많고 부족하지만 다시 새로운 몸을 입게 되면 주님을 닮아 완전한 몸이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말에 일어날 일에 대해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들은 주님께서 거룩한 삶을 살았듯 우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3)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죄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는 옛 사람의 죽음, 죄성에 사로잡혀 세상을 탐하는 옛 자아의 죽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죄를 짓지 않고 주님처럼 거룩하기를 끊임없이 갈망하게 됩니다. 요한은 죄를 짓는 자들은 그를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고 못박습니다.(6)

 

여기서 요한이 강조하는 앎이란 방법이나 노하우가 아닌 관계를 말합니다. 주님과 연결되어 있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삶을 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통해 주님과 성도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 (15:4-5)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2. 7-12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목적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가 죄를 멸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8절 후반부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을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함입니다. 그럼 다시 죄를 지어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은 강력하게 외칩니다. ‘그럴 수 없다그렇습니다.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마귀의 자녀들이라고 말합니다.(10)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목적에 반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쓸모 없게 만드는 악입니다

3. 13-24절 형제를 사랑하라


. 서로 사랑하라.(11, 16)


하나님을 앎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요? 요한은 서로 사랑이라고 답합니다. 우리는 종종 서로 다툼이나 문제가 생길때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복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네 자신의 관계를 살펴보라고 조언합니다. 요한은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세상에 다툼 없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크든 작든 어떤 교회도 항상 문제가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으며, 경쟁과 다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은 종종 가해자와 피해가로 구분하여 가해자는 무조건 사과해야하고, 피해자는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섬겨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3:11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3:23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4:7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4:11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말합니다.


.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18)


행함과 진실함으로‘ἐν ργκαὶ ἀληθείᾳ’행동 안에 그리고 참으로의 뜻입니다. 의역을 하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진리를 따라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선 16절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다만 실천적 측면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진리는 삶으로 드러나야 진리입니다. 사랑은 실천되어야 사랑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요한은 자신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음에도 궁핍한 형제를 돕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지 못한 자라고 폭로합니다. 사랑은 혀에 있지 않고, 손과 발에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 계명대로 사랑하라.(23)


사랑의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할 때 나의 생각이나 고직이 아니라 주신 계명대로사랑하는 것입니다. 23절을 봅시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 법칙은 성경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사람은 자신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미국 사람은 미국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경험이란 것도 어떤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어제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집에서 조용히 비오는 것을 구경한 사람은 빗소리가 아름답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는 가운데 출근해 일하는 빗소리가 곤욕스럽게 들릴 것입니다. 사실은 진리도 아니고, 객관적 해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준 오직 성경이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2번입니다.


2. 하나님께서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시어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 하셨는가 ?

. 신구약 성경에 기재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이다.( 1:8,9 , 딤후 3:15-17 , 22:1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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