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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식물] 마늘(garlic)

샤마임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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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식물] 마늘(garlic)

 

[성경의 식물] 마늘(garlic)
마늘꽃

 

1. 용어

히브리어로 ‘숨’(שׁוּם)이다. 민수기 11:5에서 한 번 사용된다.

 

팔레스타인 마늘과 우리나라 마늘은 거의 다르지 않다. 같은 품종이라 봐도 무방하다. 백합과 속한 뿌리식물이다. 한해살이이며, 다년생 식물이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이 심어 다음 늦봄이나 초여름에 수확한다. 뿌리만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꽃대인 쫑을 뽑아 반찬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마늘은 동남아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고르게 펼쳐져있고, 잘 자라는 편이다. 소화를 촉진하고, 항산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최근들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늘을 매우 즐겨 먹었다고 한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로마시대에는 유대인들을 향해 ‘마늘 냄새 나는 자’로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민수기 11:5에서 의하면 애굽에서 부추 등과 함께 먹었던 마늘을 그리워하고 있다.

 

마을은 향이 강해, 육고기를 먹을 때 함께 넣어 먹거나, 구워 먹고 밀가루를 반죽할 때 넣어 만들기도 했다.

 

마늘

 

마늘은 뿌리를 먹는다. 생마늘도 식용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음식에 넣어 먹거나 가루로 만들어 빵에 넣는다. 요리할 때 갈아 넣기도 한다.

 

2. 성경 속 마늘

 

마늘은 민수기 11:5에서 단 한 번 언급된다. 그런데 마늘을 그토록 좋아했던 유대인들이 왜 구약에서 단 한 번 만 사용했는지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늘이 언급된 부분을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수기 11장 전체를 읽는 것이 좋다. 이곳은 디베랴 바닷가로 하나님께 원망하는 이스라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을 보내심으로 진영의 끝을 태우신다. 그들 가운데 악한 감정이 일어난 이유는 이스라엘 섞인 ‘다른 인종’(민 11:4)의 충동 때문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Couleur님의 이미지 입니다. 

  • 민수기 11:1-5 / 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 그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그들은 매일 내리는 만나를 통해 만족하지 못하고 애굽에서 먹었던 중독성이 강한 부추와 마늘 등을 그리워했던 것이다부추나 마늘은 육고기를 먹을 때 함께 먹는 향이 강한 음식이었다결국 하나님은 메추라기를 허락하시지만 저주를 받아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른다.

 

[묵상] 원망의 원인과 비전의 회복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나갑니다. 홍해의 기적을 맛본 이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충분히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흥분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다른 민족들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모든 것이 원망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매일 홍해의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가져온 음식도 떨어지고, 재미난 일도 없었습니다. 매일 내리는 만나도 이제 지겨워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생활이 그리워졌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자유도 없고 인격도 없었지만 음식만은 자유롭게 먹었습니다. 특히 부추와 마늘과 함께 곁들여 먹었던 고기 맛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 생각하니 애굽에서 먹었던 고기가 생각나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생활이 지겨워지고, 옛적이 그립고 또 그리워졌습니다. 한 명이 원망하기 시작하더니 다른 민족들에게 번져 나갔습니다.

 

 

원망은 전염성이 무척 강했습니다. 원망은 다른 민족들을 너머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번져 나갔습니다. 그들의 원망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왔고, 하나님을 불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원망의 깊음 속에는 불신과 탐욕이 꽈리를 틀고 육신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을 원망할 때 순식간에 교만이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죄가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그들의 필연이 되었고, 결국 사망에 이른 것입니다.

 

도대체 원망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원망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을 너머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인자 제공자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원망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른 민족은 출애굽할 때 함께 이스라엘과 애굽을 탈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과 현저히 다른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동일하게 애굽을 미워했지만 비전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신들이 왜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야하는지를 공동체의 역사 기억을 통해 이해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언약의 성취를 위해 그들은 현재의 고난과 고통에 대해 대가를 지불할 각오는 어느정도는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민족은 단지 애굽의 핍박을 피해 도망친 것일 뿐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으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편하고 쉴 수 있는 곳이면 됩니다. 바로 비전의 부재가 그들을 원망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봅시다. 혹시 원망하고 있다면 자신의 비전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단지 물질이 없고, 처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원망한다고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좀더 근원적인 문제, 비전의 부재가 가져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상실한 탓입니다. 만약 비전을 다시 회복한다면 동일한 상황 속에서도 원망이 아닌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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