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3월 28일(토) 마태복음 17:14-27 겨자씨 한 알의 믿음
[매일묵상] 3월 28일(토)
마태복음 17:14-27
겨자씨 한 알의 믿음
[본문 읽기]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없음)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말씀 묵상]
만일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았어도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 어떤 체험보다 강렬했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이기 때문입니다. 산 아래로 내려와 다시 무리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도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에게 아들이 한 명 있는데 그가 간질이 있어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져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제자들에게 찾아가 고쳐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고치고 싶은 아버지로서 당연한 행동인 것 같은데 주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아이를 고쳐주십니다. 제자들이 하도 이상해 주님께 왜 자신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물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인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
주님의 말씀은 마치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 크기의 믿음도 없다고 야단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에 속하며 무력하고 나약한 것들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이렇게 작고 무력해 보이는 믿음이라할지라도 큰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이미 죽은 자를 살리며,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받았습니다.(마 1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바로 겨자씨에 있습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씨는 작고 초라하지만 싹이 트고 자라면 2m 가까운 큰 나무처럼 됩니다. 믿음도 동일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믿음은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행하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은 거대한 산도 옮긴다.
우리는 종종 주의 일을 할 때, 보이는 기교에 집중하려 합니다. 그것은 생명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진정한 사역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하심을 믿고 순종함으로 일어나는 신뢰입니다. 믿음은 이처럼 하나님과 신자와의 철저한 신뢰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단지 기도의 기술, 찬양의 기술, 설교의 기술만 익히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안에 겨자씨처럼 생명이 있느냐?’ 묻고 계십니다. 진심으로 생명이 있다면,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전세
주님께서 다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은 예언하십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대꾸하지 못하고 그저 ‘매우 근심’(23절)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예언은 부연 설명 없이 곧바로 성전세를 내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주님은 이곳에서 제자들은 성전의 주인이 누구이며, 그 아들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십니다. 아들은 주인인 아버지의 집에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26절) 그럼에도 주님은 사람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발견한 한 세겔로 성전세를 내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대속 죽음과 성전세를 내야하는 의무 간에는 삶을 대하는 그리스도의 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굳이 낼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변의 이목과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더 중요한 본질적 사역을 사소한 것들이 가로막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원리와 원칙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의 목적인지를 바로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우리는 세상이 주님의 것이기에 나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식의 견강부회(牽强附會)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희생을 통해 큰 것을 얻어야 합니다.
결단과 기도
* 믿음은 관계이며 생명입니다.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지 전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시다.
* 다른 무엇을 구하지 않고 오직 예수만 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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