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3월 23일 월 마 15:21-28 치명적인 약점
3월 23일 월
마태복음 15:21-28
치명적인 약점
[본문 읽기]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말씀 묵상]
우상의 땅으로
예수님께서 거기서 나와 두로와 시돈 땅으로 들어가십니다.(21절) 거기는 여호와를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지만 완악하고 교만하며 생명 없는 가식의 사람들이 사는 유대 땅입니다. 그들은 주님께 찾아와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음으로 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다고 소리를 높입니다.(2절) 주님인 그들을 향하여 ‘그럼 너희는 왜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3절)고 묻습니다. 진정으로 더럽고 악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완악한 사람들에게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향한 곳이 두로와 시돈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페니키아 지방으로 불린 항구 도시로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아합과 결혼한 이세벨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두로와 시돈의 주신은 바알신입니다. 바알은 ‘주인’이란 뜻으로 구름을 타고 다니면 비를 내리는 신으로 섬겼습니다. 바알의 아내는 아세라 여신인데, 음란하고 추악한 우상들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 갑자기 우상의 땅으로 가셨던 걸까요?
우상의 땅에서 믿음의 고백을 듣다
시돈 지방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한 여인이 찾아와 주님께 찾아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22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전혀 요동하지 않으시고 모른 체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당시 이방인의 입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자 유다의 전통을 세운 왕입니다. 또한 다윗의 후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신다는 약속이 구약에 있습니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한 후로 다윗이 자손이 왕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곧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의 입에서 ‘다윗의 자손’이란 호칭이 나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런데 놀랍게 주님은 그런 고백을 듣고서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개보다 못할지언정
여인이 하도 소리를 지르니 제자들이 주님께 간청합니다.
“주님 저 여인이 우리 뒤에서 이렇게 소리 지르는데 한 말씀하시고 그냥 보내십시오.”(23절)
주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냄을 받지 않았고 하십니다.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와서 절을 합니다.(25절)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간절히 구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번에도 너무나 차갑고 냉혹하게 대답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26절) 그런데 여인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에게 부스러기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은 여인의 간청을 듣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선언하십니다.
우리는 여인의 논리에 감동을 합니다. 맞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참으로 끈기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더 중요한 하나의 원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여인은 왜 그렇게 끈질기게 주님께 다가간 것일까요? 여인이 주님을 꼼짝할 수 없도록 만든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긍휼’입니다. 주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고통 받는 이들을 참아보고 견디지 못하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가나안 여인을 그것을 알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누구에게든지 어디서든 딸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답은 오직 주님께만 있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처지를 알았고, 예수님께서 긍휼히 많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여인은 처음에 뒤에서 멀리 서서 소리 질렀습니다. 두 번째는 주님 앞에 철저히 엎드려 간절히 간청했습니다. 세 번째는 주님의 마음속에 있는 긍휼하심을 증언했습니다.
“제가 듣기로 당신은 긍휼이 풍성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이방여인이지만 개다 주인 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저에게 떡이 아닌 부스러기는 줄 수 있으시지요. 당신은 긍휼이 너무나 많아 저에게 충분히 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성도는 주님의 치명적 약점에 호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너무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풍성한 긍휼을 기대하며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갑시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결단과 기도
* 우연처럼 보이는 많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작정과 사랑이 있임을 알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게 하소서.
*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의 연약을 보게 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주님을 마음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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