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롬 2:9-11, 마 7:15-20 열매 행위 심판

샤마임 2025. 3. 27.
반응형

열매로 알리라, 심판은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롬 2:9-11, 마 7:15-20)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며 차별이 없습니다 (롬 2:9-11)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힙니다. "환난과 곤고가 각 사람의 악을 행하는 모든 자에게 이르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롬 2:9-11). 이 세 구절은 신학적으로 인간의 구원과 심판에 있어서 무엇이 기준이 되는가에 대한 중요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심판의 기준이 단지 지식이나 고백이 아닌, '행함'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행위의 내용에 따라 상과 벌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τοῦ κατεργαζομένου τὸ κακόν, 투 카테르가조메누 토 카콘)과 '선을 행하는'(τοῦ ἐργαζομένου τὸ ἀγαθόν, 투 에르가조메누 토 아가톤)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실수나 일시적 행위가 아니라, 삶의 패턴과 방향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존재와 인격을 따라 지속적으로 행해진 삶의 열매를 두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두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이는 심판 앞에서 누구도 특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다'(οὐ γάρ ἐστιν προσωπολημψία παρὰ τῷ θεῷ, 우 가르 에스틴 프로소폴렘프시아 파라 토 테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판단이 오직 진리와 행위에 기초한 공의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단지 율법주의적 경고가 아니라, 믿음의 열매가 반드시 존재해야 함을 말하는 신약의 명확한 증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셨지만, 그 구원은 반드시 선한 행실을 수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도 동일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믿음은 행위를 낳으며, 그 행위는 심판의 날에 우리 정체성을 입증하는 열매가 됩니다.

 

거짓 선지자와 열매로 알리라는 예수님의 말씀 (마 7:15-20)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결론부에서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와 함께 열매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5-16). 이 말씀에서 '열매'(καρπός, 카르포스)는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통해 드러나는 성품, 행실, 그리고 그가 남긴 영적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겉모습으로는 분간할 수 없는 이중성 속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7-18). 여기서 '좋은 나무'(ἀγαθὸν δένδρον, 아가톤 덴드론)와 '못된 나무'(σαπρὸν δένδρον, 사프론 덴드론)는 존재 자체의 본질을 말합니다. 즉, 어떤 나무인가에 따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열매가 맺힌다는 원리입니다. 행위는 본질을 숨길 수 없으며,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결정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9-20). 이 구절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심판의 선언입니다. 열매 없는 나무는 존재의 목적을 잃었기에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종말론적 심판의 메시지이며,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심판관이 얼마나 분명하고 실재적인지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바울이 말한 '선을 행하는 자에게 영광과 평강이 있다'(롬 2:10)는 말씀과,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진다'(마 7:19)는 말씀은, 믿음이 반드시 삶을 통해 증명되어야 한다는 동일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단순히 영적 이론이나 교리적 수용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복음이 심령 안에 뿌리내리고 살아 있는 진리라면, 반드시 외적으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본질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도 동일한 관점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여기서 '죽은 믿음'(νεκρὰ πίστις, 네크라 피스티스)은 외적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생명력 없는 헛된 신앙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열매 없는 나무가 찍혀 던져지는 것처럼, 야고보는 생명이 없는 믿음은 종말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평강과 영광'이,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그 구원이 반드시 성령 안에서 열매로 나타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번 복음의 본질을 붙들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오직 은혜로 구원하되, 그 구원은 성령의 능력으로 삶을 변화시키며 선한 열매로 이어지게 합니다. 회개 없는 은혜는 값싼 은혜이며, 행함 없는 믿음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거룩한 흔적이며, 심판의 날에 우리를 구원과 멸망 사이에서 결정짓는 하나님의 기준이 됩니다.

 

결론

심판은 단지 고백이나 지식이 아닌, 행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의는 삶의 열매로 드러나며, 참된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위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외적인 종교적 언어가 아닌, 삶의 실질적 변화와 열매로 우리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