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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롬 1:8-17

샤마임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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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영성과 복음의 빚진 자 (롬 1:8-17)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 (1:8-10)

바울은 편지의 첫 인사에 이어 로마 교회를 향한 깊은 감사를 드러냅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하믄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1:8). 여기서 '먼저'(πρῶτον, 프로톤)라는 단어는 순서상의 개념만이 아니라 중요성과 중심성을 나타냅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의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의 감사는 단순한 예의나 습관적인 문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학적 신념과 사도적 사명의 토대입니다. 바울은 감사의 이유를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이 말은 로마 교회의 영향력, 혹은 단순한 교세의 확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복음에 대한 신실한 반응,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삶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전파됨'(καταγγέλλεται, 카탕겔레타이)은 공적으로 선포되고 회자된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로마 교회의 믿음이 다른 지역 교회들에게도 신앙의 본보기가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1:9). 여기서 '섬긴다'는 표현은 헬라어 'λατρεύω'(라트류오)로, 구약에서 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역 전체를 제사적 헌신으로 이해합니다. 그의 기도는 우연적 간구가 아니라, 복음적 관계 속에서 지속되는 끊임없는 중보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보기를 간절히 원했으나(1:10), 그 길이 항상 막혀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 허락된 때만이 진정한 만남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여기서 배웁니다.

영적 은사를 나누는 교제 (1:11-13)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한 열망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1:11). 여기서 '신령한 은사'(χάρισμα πνευματικόν, 카리스마 프뉴마티콘)는 단순한 은사 목록 중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사역을 통해 공급되는 성령의 선물 전반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단지 로마 교회에 무엇을 주기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곧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12). 바울은 복음을 나누고 가르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서 위로와 견고함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사역자의 겸손이자 공동체성에 대한 깊은 이해입니다.

그는 이전에도 로마를 방문하고자 여러 번 계획했지만 길이 막혔다고 고백합니다(1:13). 여기서 '열매를 얻는다'(καρπὸν σχῶ, 카르폰 스코)는 단순한 수적 성장이 아니라, 복음의 역사로 인한 신앙의 성숙과 구원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복음이 한 개인을 변화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성숙하게 이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지 교훈을 전하려는 자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열매 맺기를 원하는 동역자로 자신을 위치시킵니다.

복음의 능력,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1:14-17)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 그리고 복음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14). '빚진 자'(ὀφειλέτης, 오페이레테스)라는 표현은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이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의무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은 그가 구속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바울은 결코 복음을 선택적으로 전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종, 모든 문화, 모든 지적 수준을 아우르는 하나님의 복음 앞에 모든 사람은 동일한 수혜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1:15). 여기서 '할 수 있는 대로'(προθύμως, 프로뒤모스)는 '기꺼이, 열심히'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피상적 의무감이 아니라 자발적 열망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 여기서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οὐ ἐπαισχύνομαι, 우 에파이스퀴노마이)는 단순한 감정적 표현이 아니라, 복음을 공개적으로 자랑하고 증언하는 사도적 확신을 의미합니다. 당시 로마는 문화와 철학, 군사력과 제국의 권위가 결합된 세속적 힘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유대인 예수가 구원자라고 선포하는 것은 모욕과 조롱을 자초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dynamis theou, δύναμις θεοῦ)임을 선포합니다.

이 복음은 유대인에게 먼저, 그리고 헬라인에게도 미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먼저'(πρῶτον)는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계시의 순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택하셔서 언약을 주셨고, 그 언약은 결국 이방을 향한 구속사로 확대되어 갑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1:17).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디카이오쉬네 테우)는 단순히 하나님의 속성이나 윤리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언약적 구원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는 표현은 오랜 해석의 논쟁이 있어 왔으나, 문맥상 이는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으로 완성된다는 뜻으로, 구원의 처음과 끝이 전적으로 믿음에 의존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하신 성경의 선언으로 뒷받침됩니다.

결론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한 사도적 열정과 복음의 보편적 능력을 확신에 찬 언어로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에 빚진 자이며, 이 복음이야말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선언합니다. 복음은 부끄러움이 아닌 자랑이며, 우리의 삶을 견고케 하는 유일한 소망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생명의 소식입니다.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랑해야 할 복음, 그 복음에 빚진 자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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