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 서 1:1-5 바울 사도로 부름 받다.
갈라디아서 강해
1:1-5 바울 사도로 부름 받다.
[본문 읽기]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해와 묵상]
갈라디아서의 첫 시작은 다른 서신처럼 인사말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인사하면서 자신과 수신자들에 대한 안부를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묻습니다. 로마서의 경우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고린도 전서는 더욱 간략하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구합니다. 갈라디아서는 기존의 인사말 형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내용은 사뭇 긴장감이 흐릅니다.
사도 된 바울은(Παῦλος ἀπόστολος)
헬라어 첫 구절은 ‘바울 사도’로 시작합니다. 의역하자면 ‘사도인 바울은’이 될 것입니다. 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이란 이름은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에게서 가져온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였던 바울은 베냐민 지파 출신의 첫 왕 사울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바울이라 이름은 헬라식이거나 라틴식일 것이라 학자들을 추측합니다. 사울의 뜻이 ‘크다’라면 바울은 ‘작다’는 뜻입니다. 왜 그가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성경을 정확하게 들려주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백대로 유대인의 사도가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바울로 불렀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는 자신의 원래 이름을 버렸습니다. 사울은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바울이 자랑한대로 베냐민 지파이며, 사울 왕에게서 가져왔으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원래 이름을 버리고, 작은 자로 자처합니다. 바울의 능력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복음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버릴 줄 알았습니다. 오로지 자신에게서 사울이 아니라 복음,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아갈 때 어떤 이름을 갖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 ‘성도’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지요?
바울의 자기소개에서 두 번째 주목할 것은 ‘사도(ἀπόστολος)’라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대부분의 서신에서 자신을 사도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몇 곳에서는 사도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사도로 소개하지 않는 곳: 빌, 살전-후, 몬]
사도(ἀπόστολος)는 ‘~으로부터’라는 뜻의 ‘ἀπό’와 ‘~을 준비하다’와 ‘보내다’란 뜻을 가진 ‘στέλλω’가 합해진 단어로 ‘보냄을 받는 자’란 뜻입니다. 현대의 ‘대사’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이후의 구절들에서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갈라디아서에서는 고린도전서처럼 사도직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ἀπόστολος)라는 호칭은 먼저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뜻했고, 바나바와 같은 열두 사도에 준하는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호칭이었습니다. 사도란 호칭은 단순한 직분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즉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사도인 것인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생각은 누가의 관점과 동일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ㄱ. 사람에게 난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말미암은 것도 아니다.
부정에 부정을 더합니다. 사람(ἀνθρώπων)에게서 나온(ἀπ᾽)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으로 말미암은(δι᾽)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연 상태의 육신적 사람을 뜻합니다. 바울은 동일한 사람이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취급하여, 앞으로 자신의 사도직인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강조합니다.
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로부터
그럼 자신의 사도직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바울은 예수님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διά)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보다는 하나님께 무게 중심을 둡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분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인사말은 그 어떤 서신보다 강력하고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에서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께 왔다고 말합니다. 더글라스 무는 본절을 주해하면서 ‘아포(ἀπό)’와 ‘디아(διά, ~통해서, 말미암아)’라는 두 전치사가 최종적 기원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사도됨이 인간의 어떠한 간섭도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은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에게 안수하게 했고, 안디옥 교회를 통해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이곳에서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최종적인 기원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모든 형제(ἀδελφός)와 더불어
바울은 종종 자신과 동역한 사람들을 ‘형제’로 불렀습니다.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형제라 부르는 사람들은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한 ‘형제’로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복음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공동체나 친밀한 모임에서는 서로를 향하여 형제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분이 다르거나 계급이 다를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인해 모든 차별과 구별이 사라진 복음 공동체의 힘입니다.
자기 몸을 주신 그리스도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 이어집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 기원은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3절)입니다. 진정한 은혜와 평강이 기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4절)신 분입니다. 바울은 초지일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이 악한 세대’(4절)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처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그들의 운명은 죽음과 심판이며, 영원한 형별로 향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그들을 죽음에서 구원했고, 영원한 생명으로 선물로 주었습니다.
나가면서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증을 시작합니다. 바울이 사도된 것은 자신의 의지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드림으로 악한 세대 속에서 우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어떤 존재도 죄에서 우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하십니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을 위해 사도로 부름을 받았으며, 그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1차수정일 2021-07-01
'신약서신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계시록 16장 진노의 일곱 대접 (0) | 2021.08.11 |
---|---|
로마서 1장 강해 (0) | 2021.07.28 |
고린도 전서 강해 및 관련 도서 (0) | 2021.02.19 |
갈라디아서 강해 및 참고도서 (0) | 2021.02.19 |
요한계시록 19장 (0) | 2020.07.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