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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성경인물(신약)

사도바울 생애와 신학

by 하늘땅소망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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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Paul) 생애와 신학

 

사도바울을 빼고 신약과 신약신학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만큼 중요한 존재이며 독보적인 인물입니다. 신약의 2/3를 기록한 저자이며, 선교사이며, 사도입니다. 철저한 가말리엘 학파에서 공부한 랍비이면서도 가장 진보적인 성향의 선교사이기도 합니다. 그가 미친 사상은 기존의 유대교를 초월하여 새로운 기독교로의 교두보(橋頭堡)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서신 구분

 

바울의 생애를 살피기 전에 사도바울이 기록한 신약성경 목록을 살펴 보겠습니다.

일반구분은 대개 아래와 같이 구분합니다. 바울서신은 크게 일반서신, 교리서신, 옥중서신, 목회서신으로 구분합니다. 일반서신은 초기서신으로도 부르며 데살로니가 전후서가 이에 속합니다. 교리서신은 신학서신으로 부루기도 합니다. 루터에 의해 이신칭의라는 명제로 정의될 수 있는 교리를 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입니다. 이중에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쌍둥이 서신으로 서로 닮아 있습니다. 옥중서신은 내용이 아닌 옥에 갇혔을 때 쓴 서신으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가 있습니다. 목회서신은 개인서신으로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가 있다. 더 자세한 구분법은 [https://392766.tistory.com/4662]에서 확인 바랍니다.

 

바울의 생애(초기)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이고, 그의 아버지는 사도바울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로마시민이었습니다. 바울은 당연히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로마시민권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한 힘과 권력 또는 명예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라와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여자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냈다는 이유로 옥게 갇하게 됩니다. 밤에 실라와 바울은 찬양하게 되고 옥터가 흔들리며 문들이 열립니다. 간수가 와서 깜짝 놀라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겠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말합니다. 그 일로 간수와 가족들은 세례를 받게 됩니다. 다음날 바울을 아무 이유도 없이 풀어 주려하자. 바울이 이렇게 말한다.

 

16:37-38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로마시민권자를 아무 재판도 없이 함부로 다루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빌립보 감옥의 관리들이 직접 와서 바울에게 사정을 하면 떠나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릅니다.

 

바울의 부모는 상당한 재력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상업을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하게 알 길은 없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형태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개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아람어(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했으며, 적지 않은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혔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바울은 가말리엘 수하에서 율법을 배우게 됩니다. 아마도 십대 중반에 다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받았던 수업은 랍비수업이며, 구약 성경을 읽고 쓰고 해독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으로의 유학을 의미하는데, 이곳에서 바울은 바리새인에 속하여 더욱 율법 준행과 배움에 매진합니다. 유년시절 개방적인 성향과 다르게 예루살렘 유학시절 바울은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성향의 유대인으로 변화됩니다. 바울은 스스로 바리새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때 스스로 하나님의 율법에 철저히 순응하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바울의 청년시절

 

바울의 청년시절을 추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몇 가지의 단서를 통해 그의 청년시절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가말리엘에게 수학한 후 본격적인 랍비의 생활을 배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가말리엘에게 수학한 것 자체가 랍비 수업입니다. 랍비는 15년 정도의 시간을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바울이 스데반을 죽일 때 가표를 던진 사람으로 소개된 것을 볼 때 그는 이미 랍비로서 자격을 획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문헌에 의하면 가표를 던질 자격은 결혼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울 서신 안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가 전혀 독신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지만 결혼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신학자들 간의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사항이 아닌 이상 바울은 결혼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는 랍비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던 선생이었습니다. 신학교에 비하면 박사학위를 마치고 새로 들어온 신입교수쯤 될 것입니다. 지도부가 특별한 신임할 정도로 율법과 유대주의에 열심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임은 바울이 사람들을 부려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고 감옥에 집어넣을 만큼의 권력을 갖게 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건을 봐도 그는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이끄는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과도한 충성은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낳았지만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회심, 사울 핍박자에서 복음 전도자로 태어나다

 

바울의 회심은 급작스럽고 기이한 사건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도바울의 회심 사건을 두고 수많은 학위 논문이 저술되는 것을 볼 때 신학적으로 중요한 사건임이 불명합니다. 바울의 회심은 AD34년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가 끝난 직후 순교 당하는 장면입니다. 스데반이 성령충만하여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이 스데반을 잡기 위해 거짓 증인을 매수하여 세웁니다. 스데반을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결국 사람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합니다. 이때 증인들이 자신들의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7:58) 둡니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8:1) 누가는 그날 이후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다고 보고한 다음 예루살렘에서 피해 도망친 제자들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전해졌음을 전합니다.

 

사울은 주의 제자들에 대해 위협과 살기가 등등’(9:1)하여 대제사장을 찾아가 다메섹 회당으로 찾아갈 공문을 받습니다. 만약 그곳에서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만나면 누구든지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올 계획이었습니다.(9:2) 그렇게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향합니다. 다메섹에 거의 가까이 다다랐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사울을 둘러쌉니다. 그 빛이 얼마나 강했던지 사울은 곧바로 땅에 엎드러집니다. 땅에 엎드려 있을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으니라

 

사울은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려는 도중(途中)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그는 자신의 신앙에 크나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육신의 시력을 잃어버린 사울은 사람의 손에 이끌려 직가라하는 곳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 못함으로 살아온 삶과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메섹에 있던 경건한 아나니아를 통해 세례를 주게 하고 그제 서야 사울은 진정한 회심에 이르게 됩니다. 누가는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세례를 줄 때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9:18) 사흘동안 사울은 육적인 눈을 보지 못했지만 영적인 세계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회심이후, 사울(바울)이 아라비아 광야로 들어가 기도했다는 설교를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사도바울이 회심한 이후 곧바로 전도에 나섰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9:20을 보면 바울은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다고 서술합니다. 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했던 사울이 자신이 잡아갈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울의 회심에 당황하며 이렇게 수근거립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야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사울은 그들의 비아냥거림을 개의치 않고 더욱 담대하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소개합니다. 즉 예수는 구약에서 기다렸던 그 메시아(헬라어로 그리스도)라고 소개했던 것입니다. 사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음 얼마나 급격하게 변화되었는가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결국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은 사울을 잡아 죽이기 위해 밤낮으로 성문을 지킵니다. 만약 사울을 발견하게 된다면 사울을 잡아 즉결처분할 생각으로 보입니다. 이 소식을 사울이 듣게 됩니다. 결국 그의 제자들이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려 도망가게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11:32-33을 가면 사도행전의 기술과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는 유대인들이 아닌 다메섹 왕 아레다의 고관이 자신을 잡으려고 성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고후 11:32-33]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볼까요? 누가와 바울의 시각의 차이로 보입니다. 누가는 사건을 간략하게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저술한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안에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흐름까지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유대인들이 다메섹 왕의 고관에게 로비를 통해 매수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익에 눈이 먼 아레다 왕의 고관은 유대인들의 청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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