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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8-48절 그리스도의 의가 온전하게 하리라

샤마임 202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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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8-48절 

마태복음 5장 38-48절 그리스도의 의가 온전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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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 마태복음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마태복음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마태복음 5: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 마태복음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 마태복음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 마태복음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마태복음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 마태복음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마태복음 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강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구약의 법이 가진 특징은 받은 그대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소위 동해보복 법은 악한 것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를 말합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해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율법 속에 넣은 것이죠.

여기에는 복수에 대한 한계를 명확히 합니다. '눈에는 눈'입니다. 즉 누군가 나의 돈을 100만 원을 훔쳤다면 그 백만 원에 대한 처벌을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심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누군가 나의 뺨을 한 대 때리면 보복으로 한대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대 세대 네대를 때립니다.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합니다. '눈에는 눈'의 보복의 법칙에는 분노를 억제하라는 명령도 담겨 있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악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선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적은 되갚는 것입니다. 대적은 공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금하시는 것은 되갚는 복수를 말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빛으로 어둠과 싸워야 하고, 진리로 불의와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무기는 혈육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입니다.

  • 로마서 12장21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악한 자는 누구인가?
'악한'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포네로스(πονηρός)이다. 사용된 용례를 보면 아래와 같다.
5:11, 37, 39, 45, 6:23, 7:11, 17, 18, 12:34
마 6:23 눈이 나쁘면(πονηρός)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πονηρός) 열매를 맺나니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πονηρός)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위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악한은 왜곡된 관점과 타락한 심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단지 죄를 짓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타락한 심성을 가지고 모든 것들을 왜곡시켜 판단하는 잘못된 생각과 견해를 가진이들이다.


“구하는 자에게 주며”

필요를 요구하는 자들에게 그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고, 꾸러온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부분은 산상 수훈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입니다. ‘사람으로서 가능한 일일까?’ ‘복수하지 않으면 공의와 정의를 어떻게 될까?’ ‘악인들은 더 악해지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해야 할 고난과 모욕입니다. 타인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아픔을 눈감고 귀를 막는다면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은 대항해야 하지만 선에는 동참해야 합니다. 긍휼을 구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을 읽고 있는 독자의 일부들은 벌써 이러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말씀은 판단의 기준의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당하는 것에 대해 기꺼이 감내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원수’(44절)는 ‘악한 자’(39절)보다 더 위험합니다. 악한 자는 누구나에게로 향하지만 원수는 한 사람을 주목합니다. 원수의 악은 의도적이며, 주도면밀합니다. 주님은 악한 자뿐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나는 신적 능력으로만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45절)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해를 비추시고, 자연의 섭리를 거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대한다면 그리스도인들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거룩하니 자녀들도 거룩하고, 아버지가 사랑하니 자녀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하늘 아버지를 닮아가야 합니다.


“남보다 더하는 것”

그리스도인의 의는 세상이 하는 만큼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패와 악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습니다. 죽음의 강에서 생명의 거스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증명하는 존재들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방식에 적응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동시에 더하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탁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되게 하리라’(4:19)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전제가 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성령의 강하게 하심을 붙들며 살아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더하는 것’는 당연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의 눈에 옳으면 옳은 것이고 틀리면 틀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아버지를 닮아가며, 온전하심을 쫓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가 그렇게 할 것입니다.

죄인들은 결코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절대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그리스도의 의가 하나님께 보이게 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자들입니다.

  • 로마서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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