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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빼앗고 다시 주시는 하나님(창22장)

샤마임 201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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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빼앗고 다시 주시는 하나님(창22장)




여호와 이레라는 복음송이 있다.

여호와 이레

1 주님 내길 예비 하시니 나 기뻐합니다 주님 내길 예비 하시니 나 기뻐합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이레 주님 내길 예비 하시니 여호와 이레

2 주님 내게 평화 주시니 나 기도합니다 주님 내게 평화 주시니 나 기도합니다

여호와 샬롬 여호와 샬롬 주님 내게 평화 주시니 여호와 샬롬

3 주님 내게 승리 주시니 나 찬송합니다 주님 내게 승리 주시니 나 찬송합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닛시 주님 내게 승리 주시니 여호와 닛시

4 주님 나를 치료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주님 나를 치료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여호와 라파 여호와 라파 주님 나를 치료하시니 여호와 라파

5 주님 나를 사랑하셨네 날 구원하셨네 주님 나를 사랑하셨네 날 구원 하셨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주님 나를 사랑하셨네 할렐루야 아멘
 

이 찬양은 성경 속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노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고통 받을 때 찾아 오셔서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에게 응답을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답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고 가득 담아 주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십니다. 그러나 때로 하나님은 주신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빼앗은 것을 다시 주시는 분이죠. 주고 빼앗고, 빼앗은 것을 다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 줄다리기와 같습니다.
 
1.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 / 창세기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세기 22장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신 후 17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이다. 그동안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셨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들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75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소명을 떠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25년이 흐른 뒤 그토록 원하던 이삭을 얻었고,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그동안의 시간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브라함을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하고 나눔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절함이나 진정성은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늘 감사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동감이 없으며, 무의미한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기록할 가치가 없는 인생이요 하나님의 책에서 누락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빼앗는 하나님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잠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깨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독자 아들이삭을 지시할 산으로 가서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지칭할 때 쓰는 호칭을 주의하십시오. '네 아들' '네 독자' '네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모두가 '네'입니다. 아브라함은 온통 이삭에게 빠져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망각된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깊은 곳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드려내십니다. 이삭은 내가 네게 준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너는 왜 이삭을 '너의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누리고 있는 기쁨과 행복은 누가 내가 네게 선물로 준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너는 왜 그것을 너의 것이라고 고집하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순종합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불과 나무를 가지고 삼일길이나 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삼일간의 여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일생 주에서 가장 아브라함다운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믿음으로 아들이삭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17-19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1: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재고하도록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의탁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의존적 신앙이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이 말은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타락을 이것을 거부함으로 일어났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버리고 오직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행위는 바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첫 번째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떠날수록 사회의 문제는 더욱 커지고 심각해집니다.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전에는 결코 진정한 평안은 없습니다.

3. 다시 주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테스트의 진의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진술합니다. 로마서 4:17-22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4: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4: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맞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고 나를 하나님의 손 위에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사용하도록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덧입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 힘, 내 능력, 내 지혜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작아지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커지고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사는 것을 이처럼 위대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고 빼앗았지만 결국은 다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주고 빼앗고 다시 주시는 훈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키우시고 더 원대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사용하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는 사소하고 작은 세상의 욕망에 붙들려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보다 크고 위대한 것들을 위하여 우리의 것을 잠시 거두어 가십니다. 우리는 다시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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