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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로강단- 갈등의 길목에서 (정용수목사)

샤마임 201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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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길목에서

(창세기 13:1-18)




우리는 삶에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얼마나 내면의 갈등을 경험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 속에 오는 갈등에 내 마음을 오래 두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실패가 마지막 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일을 위한 새로운 진보를 향해 나아가야만 합니다. 오히려 그 실패 속에서, 감추어진 엄청난 보화를 찾아내야 합니다. 아브람은 기근을 피해 들어갔던 애굽에서 비참한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일어나서 미래를 향해 새로운 삶의 발걸음을 하게 됩니다. 아브람은 실패의 현장에서...

 

첫째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원래의 땅으로 옵니다.

아브람은 거부가 되어 애굽에서 가나안땅으로 올라옵니다. 하란에서 옮겨와 자신 장막을 쳤던 곳, 하나님을 위하여 처음 단을 쌓으며 예배 드렸던 벧엘과 아이 사이로 가서,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께 예배를 드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께 대한 초심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거부가 된 롯의 목자와 아브람의 목자와 다투게 되어 갑작스런 재산의 증식으로 인한 갈등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줄을 그어놓고 이곳은 내 땅, 저곳은 내 땅이라고 외치듯, 목자들은 서로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위험했고 빨리 해결되어야 했던 문제였습니다. 아브람은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습니까?

둘째로, 관대함은 갈등의 해결사입니다.

목자들의 반목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조카 롯마저도 예사롭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을 억누르고 얼마간을 지켜봤겠지만, 가만 둔다고 없어질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아브람은 주도권을 쥐고 갈등의 해결에 나섰습니다. 아브람은 다투지 말아야 할 것과 롯에게 선택권을 준 것은, 재산보다는 롯의 가족에 대한 더 소중함을 표현했습니다. 아브람이 어떻게 그런 관대함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예배를 통해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바른 관점과 태도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먼저 세워질 때, 이웃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선택이 갈등을 일으켰습니까?

 

셋째로, 잘못된 선택 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믿음에 의한 모든 관대함이 100% 행복한 결과를 낳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갈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관대한 제의 앞에서도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롯은 자기 삼촌의 넓은 아량을 이용했습니다. 롯은 아브람과 달리 보는 것에 의해 결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 택한 곳이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 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나의 삶의 선택을, 무엇에 의해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 당신의 감각에 의해서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넷째로, 갈등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롯이 떠난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주셨던 약속을 재확인해 주십니다(14~17).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관대함을 베풀었지만 상대방이 이것을 이용할 때, 우리가 당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믿음으로 기꺼이 손해를 보는 것이 마치 바보 같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경우에서 보듯이 믿음의 선택을 한 사람은 결코 패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인정해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람이 거처를 옮겨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면서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단을 쌓은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아브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자로서 살아갈 때, 그의 앞에서 나타나는 모든 갈등과 염려를 이겨가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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