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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철이 든다는 것

샤마임 2020. 8. 26.

신앙의 철이 든다는 것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철들지 않을 것이다."

철이 들면 죽음이 가까웠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생각한 '철이 든다는 것'은 이타심이었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수고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철들지 않겠다는 말은 끝까지 이타적인 아닌 이기적 존재로 살아가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신의 생각하는 것을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철이 든다는 말은 이타적 삶 이전에 자신의 앞가림을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남에게 짐 지우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철들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타인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타인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자신의 몸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철들지 않겠다는 말속에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않고 타인에게 끝까지 짐을 지우겠다는 '악한 생각'이 스며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키울 때 시간과 비례하여 성숙한 아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이는 어릴 때 혼자 하는 것이 없습니다. 잠도 혼자 못자고, 밥도 혼자 못 먹고, 걷지도 못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홀로 걷는 연습을 하고, 홀로 먹는 연습도 합니다. 바닥에 버려진 쌀만큼 아이는 자라납니다. 엄마가 잠들지 못한 시간만큼 아이를 성장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는 홀로 잠도 자고, 홀로 씻고, 스스로 밥도 먹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인이 되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자신을 길러준 부모와 이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를 '철들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세상은 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어색한 표현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사람은 유기적 존재이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자신을 책임지고, 타인의 수고와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그는 '철이든 사람'이 됩니다. 철든 사람은 스스로 책임질 뿐 아니라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합니다. 마땅히 해야할 수고를 '왜 내가 해야 하는데?'라고 토를 달지 않습니다. "알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잘 섬기며, 타인을 돌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불평하고, 시기하고, 반목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공의'를 행했다고 믿습니다. 타인에게 짐을 지우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히 섬김을 소비하는 존재로 많은 이들에게 짐이 됩니다. 신앙의 철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고, 타인을 생각하는 긍휼과 사랑에 비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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