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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유산, (교사대학 설립의 성경적 근거와 필요성)

샤마임 2012.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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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유산
신명기 6:1-15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38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모세는 모압평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나안 땅에서 오래오래 살면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입니다. 여기서 가나안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축복들입니다.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주시고 행복을 주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나안을 우리가 어떻게 간수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38년의 수고와 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모세는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 광야 2세대와 그들의 자녀들에게 질문하며 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이게 주신 복들을 간직하여 온전하게 누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기억’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억 공동체입니다. 기억을 간직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정체성이 없어지기도 하고, 수천 년 동안 이스라엘로 살아가게도 합니다.

기억이 왜 중요한가?

기억은 이스라엘 민족의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역사와 전통을 그리고 나와 민족의 방향을 설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이곳까지 왔으며, 어디로 가야하는 지는 ‘기억’이 알려 줍니다. 모든 것은 기억이 기준이 되고 기억이 근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억은 이스라엘 존재의미 그 자체입니다.

이제부터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떻게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1. 가나안은 어떤 곳인가?

먼저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 근거이기도하고 삶의 목적과 이유가 펼쳐진 장소입니다. 그 가나안이 갖는 영적인 의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믿음의 유산, 신앙의 유산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나안은 어떤 곳인가?

가나안을 지배하는 신은 ‘바알’이라는 신입니다. 신화 속의 바알은 비를 주는 자연의 신입니다. 우리는 열왕기상 18장에서 갈멜산 꼭대기에서 450명의 바알의 제사장들과 엘리야와의 대결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곳의 주 논쟁의 주제는 ‘누가 비를 주는가?’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자 엘리야는 아합을 찾아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을 신청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가뭄을 해결하고 비를 내리는 신이 누군가를 증명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입니다. 그 후에 하늘에서 비가 내려오게 됩니다. 비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바알은 수천 년 전의 고대근동 지방의 신화에 나오는 신이 아닙니다. 그 신은 과학의 신이요, 이성과 계몽의 신입니다.

가나안은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곳입니다. 지금까지는 광야에서 배회하는 삶이었습니다. 광야의 삶은 축적이 불가능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고 오늘과 내일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삶입니다. 광야는 없어서 힘들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신의 한계와 생존의 위기를 날마다의 삶에서 체험해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인도해 주시지 않거나 채워주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가장 아픈 곳이지만 가장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축적이 가능합니다. 그해 농사해서 창고에 모으고 고구마나 콩을 말려 놓으면 몇 년 동안 기근이 들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입니다. 잉여 농산물을 시장에 팔아 다른 재산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가나안은 우리의 욕망을 무한대로 끌어 올릴 수 있는 곳입니다. 한해 농사만 잘 지으면 몇 년 동안은 놀고먹어도 되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이 굳이 없어도 되는 곳입니다. 광야는 누구나 평등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생깁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끌어 모아 남보다 앞서며 다른 사람 보다 앞서가며 위에 올라서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도와주는 존재가 바로 바알입니다. 바알은 농사의 신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높여주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잘만 하면 몇 년 동안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사사기와 열왕기를 보면 이러한 유혹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처절하게 무너지고 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종으로 만들고, 남의 밭을 사들여 자신의 땅으로 삼아 더 많은 곡식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계속하여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계속 부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위험을 알았기 때문에 율법 안에 그럴 수 없도록 몇 가지의 장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는 지계석이고 다른 하나는 희년제도입니다. 현재 개역개정판에는 경계석으로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지계석은 여호수아가 7년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한 다음 지파와 가족별로 땅을 분배 받은 후 자신의 가문의 땅 경계에 세워놓은 작은 비석입니다. 희년제도는 50년 마다 자신의 원래 땅 주인에게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인해 땅을 팔거나 빼앗겼어도 50년이 돌아오는 희년에도 원래 땅 주인에게 돌려줌으로 그 가문이 영원한 종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입니다.

잠 23: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신 1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신명기 27: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욥기 / 24:1 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 어찌하여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4:2 어떤 사람은 지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24:3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24:4 빈궁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 가난한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호세아 5:10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모세가 걱정했던 가나안은 유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완전하게 닮아 있습니다. 무한 경쟁시대 속에서 우리는 영적인 지계석을 옮겨 자신의 욕망을 넓히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키는 유혹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소명을 잃어버린 다면 가나안이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린 다는 것입니다. 사사기로부터 열왕기에 이르는 역사서의 가장 중요한 단어는 ‘샤마르’라는 언어인데 ‘지키다’ ‘보존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너희가 나의 계명은 샤마르-지키면, 나는 너희를 지키겠다-샤마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이 누군가를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은 ‘자카르’라는 동사인데 ‘마음에 담아두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보존하고 물려주는 관건은 자녀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자카르’하는 두는 것입니다.

2. 그럼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보존하고 물려 줄 수 있는가?

기억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행하신 모든 일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의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며,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며, 행동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할 때 우리는 가나안의 유혹과 문화를 이길 수 있습니다. 사사기의 악순환 패턴을 보십시오. 그들이 죄를 짓기 바로 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망각은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하여 ‘기억 공동체’로 살아가야 합니다. 신학적 표현을 쓴다면 ‘서사적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우리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형식으로서의 기억 공동체-기억 시스템을 구축하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은 네 마음에 새기고, 그 다음은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 가지도 소홀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오늘은 세 번째에만 집중하겠습니다. 가르침의 방법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강론하고-이야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붙이는 것이고, 셋째는 기록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 가지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 보다 이 명령이 가지는 포괄적인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는 방법인데 그것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기분 내키면 하고, 기분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양식 패턴을 따라 매일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의 습관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0.25%의 유대인들이 25%이상의 노벨상을 휩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은 정말 간단합니다. 노벨상을 받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콜글래드 웰이 쓴 [아웃라이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지구상의 탁월한 천재들을 연구하면서 마태복음의 법칙으로 불리는 ‘일만 시간의 법칙’을 찾아냈습니다. 그들이 성공한 이유는 머리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들을 성장시키고 연습시킬 수 있었던 일만 시간의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들은 성공의 시스템을 구축해준 부모와 환경 속에서 그럴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영적인 것으로 돌려 봅시다. 영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성령이 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살았기 때문입니다. 시편1편에도 보면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헐떡였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어땠습니까? 30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성령이 임해서 성경에 능통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12살 때 예루살렘 올라가 그곳의 석학들과 논쟁했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어릴 적부터 토라와 구약 성경에 능통했습니다. 주님은 이미 준비하고 계셨으며, 때가 되자 자신의 사역을 무리 없이 감당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봅시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적 유산을 물려주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통일왕국을 보내가 솔로몬의 사후인 기원전 931년에 북쪽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남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아 분열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북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분열된 지 220년 만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남 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는 데 이것은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시기보다 140년이 더 지난 일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경건하고 위대한 왕들은 모두 남 유다의 왕들이었습니다.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아사, 웃시야,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등은 모두 유다지파에 속하는 남유다의 왕들입니다. 어떻게 하여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남 유다가 갖는 위대한 성경 교육 시스템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교육 시스템을 몇 가지만 살펴봅시다.

첫 번째는 절기를 통한 교육입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절기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삼대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은 예루살렘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도 절기 때만 되면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 때의 일입니다.

역대하 35:18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왕들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주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남유다가 망했던 결정적인 이유들은 바로 하나님을 기억하는 시스템을 거부 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레위인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레위인을 제사를 드리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직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대하 31:4에 보면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역대하 31:4 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을 명령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몫의 음식을 주어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하니라

여호수아 대 6개의 도피성은 레위지파에게 주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명기 33:10에서는 레위인에 대하여 이렇게 축복합니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포로 귀한 후 느헤미야에 의해 주도된 각성운동 때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 레위 지파 사람들은 사람을 속에 함께 서서 그들에게 율법을 다 해석해 주는 일을 했습니다.

[느] 8: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느] 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느] 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세 번째는 왕에게 율법책을 복사하여 주는 것입니다.

신명기 17:14-20

[신] 17: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신] 17: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신] 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 17: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신] 17: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신] 17: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신] 17: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네 번째는 성전 제사입니다. 역대하 11:13-15에 보면 열왕기에는 기록되지 않는 놀라운 사실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면서 남유다에 있는 성전에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황금 송아지 단을 만들고, 그 황금 송아지가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낸 신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만들고, 레위지파가 아닌 일반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아 섬기게 합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에 살고 있던 레위지파 사람들은 성전이 있는 남유다로 피난해 오게되고, 결국 남 유다를 더욱 영적으로 만들고, 강력한 나라로 만들게 됩니다.

[대하] 11:13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대하] 11:14 레위 사람들이 자기들의 마을들과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니 이는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들이 그들을 해임하여 여호와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대하] 11:15 여로보암이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친히 제사장들을 세움이라 [대하] 11:16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대하] 11:17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3. 이제 교회를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에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 저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어린 학생들이 영적으로 양육 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최적의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 말로 영적 가나안 땅에서 영적 성공을 거두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입니다.

먼저는 양육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목회자가 중심으로된 전문 교사가 준비 되어야 하고, 주일학교 교사와 성경 전문 교사를 양육해야 합니다. 레위인처럼 말씀을 전담하고, 양육하는 기억의 담지자요, 전승자를 많이 두어야 합니다. 즉 영적 지도자의 인적 인프라를 구축해 놓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교사대학과 양육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자원하는 몇 사람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온 교인이 동참해야 하며, 중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과정을 수료하여야 합니다. 차세대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양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저는 교육국 안에서 차세대 영적인 지도자를 배출할 교사대학 설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차적으로는 교사를 양육과 재교육을 위해서, 2차는 주일학교와 교사학에 관심있는 분들의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3차적으로는 주일학교를 위한 인적자원을 축적함으로 언제든지 교회를 위해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다음세대를 준비하며, 은사중심의 섬김 체제로, 글로버 시대에 맞는 ‘멀티티칭’과 양육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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