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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기능과 상징] 1. 하나님의 임재로서의 성전 상징

샤마임 2020.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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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임재로서의 성전 상징

 

종교 없는 민족은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해도 사람들은 신을 섬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곧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수천 년 전에도 했다. 그러나 종교가 사라진 시대는 단 한 번도 없다. 종교는 언제나 인간과 함께 했다. 인간이 신을 섬길 때는 언제나 신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다. 인간들은 특정한 장소에서 신을 만났다. 거대한 반석이나 나무, 강, 특이하게 생긴 구조물들이 그렇다.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신을 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신과 만날 수 있는 신전을 지었다. 불교가 처음 신라에 들어왔을 때 깊은 깨달음이나 꿈을 통해 부처를 만났던 곳에 절이 세워진다. 이슬람과 기독교 등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신의 현시(顯示)가 일어난 곳은 종교적 장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자신에게 나타난 신의 집, 즉 신전(神殿)을 지었다.

 

인간은 창조될 때 종교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즉 신과의 교제를 갖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갖지 못한다. 부와 명예, 관계와 그 어떤 것으로 채우지 못한 깊은 갈망이 인간 안에 내재한다.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류의 조상들은 언제나 에덴동산을 그리워한다. 이러한 에덴동산에 대한 기억은 생득적이라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은 왜곡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지 아니하고 자신이 만든 새로운 에덴동산과 신을 경배한다.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하며, 종교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 속에 담긴 종교성이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장 오래된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보라.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와 인도도 마찬가지다.

 

인간들은 신들을 만나기 위해 신전을 지었다. 신전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사제를 필요로 하고, 사제들은 신들의 ‘말’을 전한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성막과 성전, 그리고 선지자들은 이러한 임무를 맡고 있다. 신전은 섬기는 신에 합당하게 지어져야 한다. 마르둑 신을 섬기는 신전과 다곤 신을 섬기는 신전은 다르다. 제의법과 사제도 다르다. 복장과 언어, 제사하는 방법도 다르다. 상당히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신전은 신을 섬기는 방식에 맞게 움직이며, 그 신을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신전은 그 신이 창조한 세계의 중심이다. 신전은 세계의 배꼽인 것이다. 신전은 가장 거룩한 곳이고, 신이 가장 강하게 임하는 곳이다. 신전을 중심으로 세상은 확장된다. 이러한 개념은 이방종교나 이스라엘의 성전이나 동일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방민족은 많은 신을 섬기지만 이스라엘은 유일신만을 섬긴다.

 

이방신과 여호와의 극명한 차이는 계시의 특별성이다. 이방신들도 계시한다. 물론 엉터리겠지만. 이방신들의 계시는 모호하고, 탐욕적이다. 제물을 바침으로 신의 마음을 달래기도하고 바꿀 수도 있다. 많은 재물은 신을 기분 좋게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해야하고 제사도 드려야 한다. 제사보다 순종이 먼저다. 이방신은 자기만족적이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철저히 계시적이다. 또한 이방신들은 극히 지엽적이고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며, 통치자이다.

 

성전은 중심이기에 그곳은 하나님의 보좌이다. 에덴동산이 성전이 이유가 바로 그곳으로부터 강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에스겔 성전에서도 동일하게 강이 흘러나와 세상을 치유한다. 이러한 개념은 다시 요한계시록에서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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