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9가지 열매
-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에 소개됩니다.
-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Greek NT: Nestle 1904
ὁ δὲ καρπὸς τοῦ Πνεύματός ἐστιν ἀγάπη, χαρά, εἰρήνη, μακροθυμία, χρηστότης, ἀγαθωσύνη, πίστις πραΰτης, ἐγκράτεια· κατὰ τῶν τοιούτων οὐκ ἔστιν νόμος
New International Version
22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forbeara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23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사랑(love)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신 사랑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희락(joy)은 기쁨을 말하며 복음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입니다.
화평(peace)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평케하신 것을 말합니다.
오래참음(patience)은 인내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인내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비(kindness)는 친절함입니다.
양선(goodness)은 선함을 말합니다.
충성(faithfulness)은 변하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온유(gentleness)는 타인을 대하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절제(self-control)는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음을 말합니다. 이제 이것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성령의 열매(ὁ καρπὸς τοῦ Πνεύματός)
번역상 어려워 보이는 문장은 아닙니다. 열매(καρπὸς) 그 나무 또는 식물에서 열리는 것으로 그 나무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열매로 알리라' 하신 것처럼 열매는 열매를 맺게 하는 나무의 본질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심는대로 거둔다는 행위의 결과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열매는 성령을 따라 살았던 삶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서두의 5:16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는 말씀과 잘 어울립니다.
사랑(ἀγάπη love)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후의 언급되는 성령의 열매들을 전제하고 포괄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랑을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뿐 아니라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합니다.
- 로마서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요한1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곧 성령을 따르는 삶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은 새로운 통치, 새로운 법칙을 말합니다. 이전에는 육신의 지배를 받았다면 이제는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곧 사랑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희락(χαρά joy)
희락은 기쁨으로 성령의 열매 두 번째에 언급된다.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사랑을 뺀다면 가장 우선 순위에 해당되는 것이 희락 즉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은 뭘 말할까요? 기쁨의 본질은 하나님의 성품을 향유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등을 누리게 됩니다. 희락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며, 창조 후 '좋다(토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할까요?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알고 반응하는 것이 바로 희락입니다. 희락은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하여 밤에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희락을 누리게 됩니다.
화평(εἰρήνη peace)
화평은 평화로 헬라어는 에이레네(εἰρήνη)를 사용합니다. 한글성경은 화평이란 단어보다는 '평강'이란 단어로 많이 번역했습니다. 바울은 인사 문구에 유난히 '은혜와 평강'을 함께 사용하기를 좋아했습니다.
- 로마서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이 있기를 원하노라
- 고린도전서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고린도후서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갈라디아서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인의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케 하심으로부터 왔습니다. 화평의 열매는 단지 이웃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을 통한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평을 말합니다.
오래참음(μακροθυμία patience/forbearance)
오래참음은 인내인데 관계적 의미에서 인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오래 참으신 것처럼 우리 또한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 인내하는 것입니다.(참 벧전 3:20)
-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μακροθυμία)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하지만 인내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 뿌리는 내리고 있습니다.
로마서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자비 (Kindness, χρηστότης)
자비(Kindness, χρηστότης - chrēstotēs)는 신약에서 단순한 친절을 넘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운 성품을 반영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χρηστότης는 헬라어에서 유용함, 온유함, 친절함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히 타인을 배려하는 수준을 넘어 상대방에게 실질적인 유익을 주는 선한 태도와 행동을 포함한다. 로마서 2:4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χρηστότης)이 사람들을 회개로 인도한다고 말하며, 이는 하나님의 자비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으로 이끄는 능동적인 성품임을 보여준다. 또한 에베소서 4:32에서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용서할 것을 권면하는데, 이는 성도의 삶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5:22에서 자비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언급되며, 이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성품임을 보여준다. 갈라디아서의 문맥에서 자비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사랑과 자유 속에서 나타나는 실천적인 덕목이다. 갈라디아서 6:1-2에서는 넘어지는 자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고 서로의 짐을 지라고 권면하는데, 이는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자비를 실천해야 함을 보여준다. 바울은 율법이 아닌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 곧 사랑과 자비로 드러난다고 강조하며, 이는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닌 타인을 배려하고 돕는 삶을 의미한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서 자비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인해 나타나는 적극적인 선행과 사랑의 실천이며, 성도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선 (Goodness, ἀγαθωσύνη)
양선(Goodness, ἀγαθωσύνη - agathōsynē)은 신약에서 단순한 도덕적 선함을 넘어,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하는 내적인 성품과 적극적인 선행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ἀγαθωσύνη는 일반적인 선을 뜻하는 ἀγαθός(agathos)에서 파생된 단어로, 단순히 착하거나 친절한 것을 넘어, 의롭고 거룩한 선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로마서 15:14에서는 바울이 로마 교인들을 가리켜 "선함이 가득하다"고 표현하며, 이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는 뜻을 내포한다. 데살로니가후서 1:11에서도 양선은 믿음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선한 목적과 연결되며, 단순한 인간적인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성품과 그 실천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5:22에서 양선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언급되며, 이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갈라디아서의 문맥에서 볼 때, 양선은 단순히 율법을 지키려는 외적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내면의 변화와 행동을 가리킨다. 갈라디아서 6:10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정에게 선을 행하라고 권면하는데, 여기서 선을 행하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서 양선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선한 성품과, 그것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율법의 요구를 넘어선 자유로운 사랑과 섬김의 삶으로 연결된다.
충성 (Faithfulness, πίστις)
충성(Faithfulness, πίστις - pistis)은 신약에서 신뢰, 신실함, 그리고 믿음의 개념을 포함하는 중요한 단어로 사용된다. 헬라어 πίστις는 단순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신뢰와 신실한 태도를 의미한다. 히브리서 11:1에서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하며,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변함없이 의지하는 태도를 포함한다. 또한 마태복음 25:21에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태도가 결국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신약 전체에서 충성은 단순한 인간적인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신뢰와 헌신으로 강조된다.
갈라디아서 5:22에서 충성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언급되며, 이는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들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갈라디아서의 문맥에서 볼 때, 충성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신뢰와 헌신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2:16에서 바울은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강조하며, 여기서 믿음(πίστις)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신뢰와 헌신을 의미한다. 또한 갈라디아서 6:9에서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할 것을 권면하는데, 이는 성령 안에서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서 충성은 단순한 도덕적 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하며 끝까지 헌신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하며, 이는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의 필수적인 특징으로 강조된다.
온유 (Gentleness, πραΰτης)
온유(Gentleness, πραΰτης - praütēs)는 신약에서 단순한 유순함이나 나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타인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내적 성품을 의미한다. 헬라어 πραΰτης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태도를 포함하며, 이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강한 자제력과 신뢰 속에서 나타나는 덕목이다. 마태복음 5:5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이는 세상의 방식과 달리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겸손하고 온유한 자가 참된 유업을 받게 됨을 나타낸다. 또한 마태복음 11:29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시며, 진정한 온유함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임을 보여준다.
갈라디아서 5:23에서 온유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언급되며, 이는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들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성품임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6:1에서는 범죄한 자를 바로잡을 때 온유한 심령으로 행할 것을 권면하는데, 이는 온유함이 단순한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성도 간의 관계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중요한 덕목임을 보여준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성령의 역사로 인해 나타나는 온유함을 강조하며, 이는 자기 의를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며 인도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서 온유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고, 겸손과 절제를 통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세우는 성품을 의미하며, 성령을 따라 사는 삶에서 필수적인 덕목으로 강조된다.
절제 (Self-control, ἐγκράτεια)
절제(Self-control, ἐγκράτεια - enkrateia)는 신약에서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다스리는 능력을 의미하며, 성령의 역사로 인해 나타나는 내면의 균형과 통제력을 포함한다. 헬라어 ἐγκράτεια는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뜻을 가지며, 이는 단순한 자제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 속에서 자신의 삶을 조율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9:25에서는 운동선수가 상을 얻기 위해 절제하는 모습을 비유로 들며, 신앙생활에서도 절제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덕목임을 보여준다. 또한 디모데후서 1:7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하며, 절제가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힘임을 강조한다.
갈라디아서 5:23에서 절제는 성령의 열매 중 마지막으로 언급되며, 이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임을 보여준다. 갈라디아서의 문맥에서 절제는 율법적인 규율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자기 통제와 균형 잡힌 삶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5:16-17에서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대립한다고 설명하는데, 절제는 성령을 따르는 자들이 육체의 욕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또한 갈라디아서 6:8에서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거둔다고 말하며, 절제가 단순한 금욕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과 연결됨을 보여준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서 절제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올바른 삶을 선택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이는 성도의 영적 성숙을 나타내는 중요한 특징으로 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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