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의 역사
성경해석의 역사
성경 해석의 역사는 시대적 맥락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엄격하게 문자와 상징(비유 또는 알레고리)적 해석이라는 두 축이 서로를 겨냥하며 변증법적 양상을 이어왔다. 최근에 일어나 정경학적 성경 해석은 초대교회가 가진 본래적 의미로 상당히 가까이 갔다. 하지만 그것 역시 현대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로버트 M. 그랜트의 <성서 해석의 역사>를 기본으로 삼아 성경해석의 역사를 개론적으로 살펴보자. 자의적으로 요약하거나, 다른 서적을 참고하여 보강 보완하였음을 밝힌다. 괄호( ) 안의 숫자는 인용한 책의 페이지다.
1. 서론
교회사는 교리사며, 교리사는 성경 해석의 역사다. 성경은 해석되어야 하며, 해석되지 않는 성경은 성경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시대적 맥락을 통해 읽지 못한다며 죽은 것과 방불하다. 그랜트는 ‘해석은 객관적일 뿐 아니라 언제나 주관적이다.’(9) 역사 속에서 가장 혁명적 성경 해석의 역사가 있다면 문예부흥 때 있었던 로렌조 발라가 <콘스탄틴 대제의 기증서>의 허구성을 폭로한 것이다. 이것은 다시 성경의 원전으로 돌아가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고, 이것은 성경 비평 시대의 전조적 현상이다. 19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비평적 연구 활동은 절정에 달했다는 그랜트의 주장은 정확한 지적이다.(10)
“성서가 마땅히 서야 할 장소는 교회 안이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진리이다. 교회는 성서가 나오기 전에 존재하였고 교회는 성서의 울타리이다. 양자, 곧 교회와 성서가 다 그리스도에 관해서 증언하지만, 교회가 먼저 있었으며 성서는 교회 안에서 회원의 사용을 위해서 생겨났다. 신앙 공동체의 밖에서 있으면서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충분하게 해석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본의는 아니지만 성서의 결을 따라간다는 것이 오히려 핵심적인 내용들을 잘라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11)
그러므로 성경 해석자는 자기가 관찰하는 진리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대해석 책임을 져야 한다.(12) 그는 계승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인 동시에 예배하는 사람이다. 그는 예배드리는 비의 자체와 그가 이해하고자 하는 비의에 관한 진상과의 사이에는 항상 긴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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