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절기] 수전절(Festival of Dedication)
[성경의 절기] 수전절(Festival of Dedication)
수전절은 신구약 중간기에 생겨난 유대인 전통 절기이다. 유대를 점령한 안티오쿠스 아페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고 이방신상을 세운다. 이때 유대인들이 일어나 마카비 혁명을 일으키고 그들을 몰아낸다. 이것을 기념하여 생긴 절기가 수전절이다. 하누카는 수전절의 히브리어이다.
[신구약 중간기는 하단에 링크한 <제2성전 시기(신구약 중간기) 역사 개요>를 참고하십시오.]
*2019년 수전절은 12월 22일(일) 저녁에 시작해 30일(월) 저녁에 마친다.
아래는 수전절이 생기게 된 과정의 역사적 배경의 일부이다. 중간기 전체는 하단의 <제2성전 시기(신구약 중간기) 역사 개요>를 참고 바람
수전절이 빛의 절기가 된 이유는 바벨론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다. 바벨론 탈무드에 의하면 마카비가 성전을 회복했을 때 성전에는 겨우 하루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순결한 기름이 발견된다. 이들은 새 기름을 통해 8일 동안 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까지 등불을 밝힌다. 그래서 봉헌식 때 새 기름으로 성전을 밝혔다하여 8개의 등불잔을 통해 어둠을 밝히는 풍습이 생겨난 것이다.
하누카에 사용되는 등불은 모양이 다르다. 성전 안의 촛대는 모두 7가지이지만, 하누카의 촛대는 모두 9개이다. 양쪽 4개씩과 중앙에 한 개가 있다. 중앙의 한개는 처음부터 켜고, 나머지는 하루에 한 개씩 붙여간다. 마지막 8일찌 되는 날은 모든 촛대에 불이 켜져 가장 환하다.
요세푸스는 이 절기를 '빛의 절기(The feast of light)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약성경 속에서 하누카는 요한복음 10:22에 단 한 번 기록되어 있다. 유대력으로 기슬르 월이며 태양력으로 11-12월이다. [c참조 이스라엘의 달력과 절기]
-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요 10:22-24)
예루살렘에 올라간 예수님은 며칠 이상을 머물렀던 같다. 요한복음 8장에 의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신다.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요 8:12-13)
예수님은 수전절을 통해 빛의 의미를 가르치시고 되새기고 계신다. 하누카는 중간기의 유대교 전통의 중요한 변이가 일어난 시기이다.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은 급속하게 민족주의와 율법주의로 빠져들어간다. 느헤미야와 에스라서를 이러한 율법의 강화로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그 이전의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이스라엘 안으로의 유입을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방인들과 결혼한 사람들을 하나님께 고발하고 그들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한다. 철저한 분리와 개혁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페르시아가 멸망하고 헬라 시대가 도래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헬라왕국은 크게 네 개로 분리 된다. 팔레스타인은 이집트를 장악한 톨레미 왕조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맞이 한다. 하지만 시리아를 중심으로 터를 잡았던 셀류쿠스 왕조는 지나친 간섭과 헬라정책에 의해 유대인들을 고통을 받는다. 특히 에피파네스 4세의 강력한 헬라화 정책으로 인해 반헬라 정서가 깊게 자리하게 된다. 결국 에피파네스의 예루살렘 모독 사건은 강력한 반헬라 정서를 일으켰고, 마카비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참조문헌]
가스펠서브 <성경문화배경사전> 생명의말씀사
*<성경문화배경사전> 성경 연구에 정말 중요한 자료이다. 목회자라면 반드시 구익해야할 책 중의 한 권이다.
3) 셀류쿠스 왕조 시대(B.C. 198-167)
이러한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두 왕조를 서로의 땅을 넓히기 위해 자주 충돌했다. 5번 정도의 큰 전쟁이 있었고, 결국 기원전 198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설류쿠스 왕조에 편입시킨다. 이것으로 팔레스타인은 새 주인을 모시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전쟁 초기는 톨레미 왕조에 우호적 있지만 말기에는 셀류쿠스 왕조를 돕게 된다. 그 덕분인지 셀류쿠스 초기에는 우호적으로 유대인을 대했고, 적지 않은 자유도 보장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기원전 190년 안티오쿠스 3세는 로마와 벌린 서머나(Smyrna) 전투에서 크게 패하게 된다. 서머나 전쟁은 로마와 한니발 장군과의 전쟁이었다. 한니발이 패함으로 안티오쿠스는 큰 부담을 안게 된다. 그 여파로 타우러스 산맥(the Taurus Mountains) 서쪽에 위치한 소아시아 지역을 로마에게 빼앗긴다. 금 5,000달러라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여 재정상으로도 큰 타격을 받는다. 안티오쿠스는 열악한 재정을 만회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힘에 부치는 세금을 부과한다. 이때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하던 많은 보물들까지 탈취한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견딜 만 했다. 정말 심각한 상황은 다음 통치자에게 일어난다.
안티오쿠스 3세가 살해당하고 그의 장남이었던 안티오쿠스 4세가 왕으로 등극한다. 그는 유대를 헬라화 시키기 위해 강압적으로 유대인들을 대하기 시작한다. 그는 가장 먼저 사독 가문의 제사장이었던 오니아스 3세(OniasⅢ)를 파문시킨다. 오니아스 3세의 파문 뒤에는 시리아파(셀류커스왕조)와 이집트파(톨리미 왕조)의 정치적 이견으로 인한 갈등이 존재한다. 왕조가 바뀌면서 시리아파는 득세하게 되고 이집트 파는 위축되었다. 시리아파는 이집트파였던 오니아스 3세를 처리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시리아파는 안티오쿠스 4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아니아스 3세를 처리해 달라고 청을 한다. 문제는 오니아스 3세는 사독 계열의 합법적인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안티오쿠스 3세는 비교적 온화한 정책을 폈기 때문에 오니아스를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아들인 안티오쿠스 4세는 달랐다. 기회를 엿보던 시리아파는 안티오쿠스 3세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아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충동질해 오니아스 3세를 대제사장직에서 파면시킨 것이다.
시리아파 지도자였던 시몬은 자신의 동생인 야손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한다. 야손은 안티오쿠스 3세와 결탁하여 예루살렘을 헬라적으로 재정비한다. 안티오쿠스 4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야손은 시몬은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유대인들에게 헬라풍의 옷을 입게 한다.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던 정통 유대인들과 하시딤과 경건한 유대인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아론이 자손, 특히 사독의 제사장들만이 대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사고 체계를 전복시킨 그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비록 헬라인에 의해 대제사장이 되기는 했지만 야손은 정통파였기에 불만은 있었지만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메넬라우스라는 유대인이 토비야 가문보다 더 많은 뇌물을 바치고 대제사장이 된 것이다. 메넬라우스와 그를 따르던 자들은 안티오쿠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더욱 헬라의 문화를 정착시키려 했고, 정통파를 핍박하기 시작한다.
야손파와 메델라우스파의 그리고 정통 유대인파들간의 긴장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안티오쿠스가 이집트 원정에서 전사하게 된다. 소문을 전해 들은 야손과 추종들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메넬라우스를 몰아내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안티오쿠스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집트를 거의 정복할 뻔했지만 로마가 이집트를 돕는 바람에 실패하고 다시 돌아간다. 이집트 원정의 실패와 로마의 패창을 지켜보던 안티오쿠스 4세는 제국을 정신적으로 통일해야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세운 메넬라우스를 몰아내려 했던 유대인들을 반란세력으로 보고 그들에게 철저히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먼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야손을 추방하고 다시 메넬라우스를 대제사장직에 복귀시킨다. 자신의 군대를 풀어 닥치는 대로 유대인들을 학살한다. 성전의 기구들을 끌어내 가져가 버린다. 반항하는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죽이고, 유대교 전통을 뿌리째 뽑으려고 한다.
먼저 희생 제사를 중단시킨다. 또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막는다. 심지어 토라를 찢어 불사른다. 유대인들에게 돼지고기를 억지로 먹이게 하며, 곳곳에 우상을 세워 제사를 드리게 한다. 그의 파괴적 행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성전 뜰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경배하게 한다. 심지어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놓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항했고, 반항한 자들은 지체 없이 죽였다. 에피파네스 4세는 유대교 자체를 말살시키려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외경인 마키 1서와 2서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2. 저항과 독립(B.C 162-64)
*마카비(Maccabee) 혁명은 셀류쿠스 왕조 시대 안에 있지만 독립했던 하스몬 왕조와 함께 묶는 것이 선명해 보인다.
1) 마카비(Maccabee) 혁명
순교를 당하거나 예루살렘을 떠나는 등의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던 유대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 유명한 마카비 혁명이 시작된 것은 예루살렘이 북서쪽에 자리한 모데인이란 마을이었다. 시리아의 한 관리가 이곳에 찾아와 이교 제사를 강요했다. 이 대 다섯 아들을 둔 마타티아스(Mattathias, 한글성경은 ‘맛다디아’로 번역, 이곳에서 마카비라는 이름이 생긴다)라는 제사장이 명령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헬라 관리와 배교자들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산으로 도망친다. 산으로 도망친 그들은 정통을 지키려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저항운동은 마타티아스(Mattathias)의 세 아들인 마카비(대장쟁이)라는 별명을 가진 유다와 요나단, 그리고 시몬에 의해 계속하여 이어간다. 기원전 165년 12월 25일 그들은 성전을 회복하고 예배를 다시 드리게 된다. 정확히 성전이 더럽혀진 3년 후이다. 이때를 기념하여 하누카, 또는 빛의 절기로 알려진 수전절이 생겨난다.(요 10:22) 도중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사망하고 안티오쿠스 5세가 등극한다. 나이가 어렸던 탓에 리시아스가 섭정하면서 기원전 162년 유대인들에게 절기를 자유롭게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한다. 리시아스는 그것뿐 아니라 유대인의 호감을 사기 위해 메넬라우스를 죽인다. 핫시딤은 정치적이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다는 정치적 독립을 위해 전쟁을 시도하지만 참패하고 자신도 죽임을 당한다. 다메트리우스 1세가 지배하면서 아론 계열의 알키무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그도 얼마 가지 않아 죽게 된다. 그 후 예루살렘은 무려 7년 동안 대제사장이 없는 공백 상태가 된다.
유다가 죽자 형제인 요나단이 뒤를 이었다. 셀류쿠스 제국은 이때 한참 세력다툼 중이었다. 더메트리우스 1세와 알렉산더 발라스가 충돌한 상태였다. 요나단은 알렉산더 발라스를 지지했다. 결국 승리는 알렉산더 발라스에게 돌아갔고, 덕분에 요나단은 발라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발라스는 기원전 152년 요나단을 유대의 지도자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고 만다. 정통 유대교를 신봉했던 하시딤과 경건한 유대인들을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손에 피를 묻힌 그가 대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다. 이것을 참다못한 수많은 유대인들이 마키비 가문에 분노를 갖게 되었고, 예루살렘을 등지게 된다. 이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막이나 시골에 내려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이때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이때 안티오쿠스 4세의 아들을 자칭하던 자기 일어나 알렉산더 발라스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다. 자신을 더메트리우스 2세로 명명한다. 그는 다시 안티오쿠스 6세와 세력다툼을 하게 된다. 안티오쿠스 6세를 지지하던 트리포는 시시각각 세력을 확장하며 데메트리우스 2세를 지지하던 요나단을 죽여 버린다.(기원전 143년) 요나단의 뒤를 이어 시몬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더메트리우스 2세에게 세금 면제와 유대인들의 독립을 요구한다. 오니아스 3세 이후 유대는 정통적인 제사장이 아닌 사람들이 대제사장이 되었고, 지도자와 대제사장을 겸직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시몬은 주전 134년 자신의 사위였던 프톨레미에게 살해당한다. 시몬을 대신해 그의 아들 힐카누스가 대제사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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