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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장 주해와 강해

샤마임 2021. 11. 2.

사도행전 4장 주해와 강해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이 제사장들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 앞에서 변증 하게 되고,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경고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풀려나 사도들은 교회 공동체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믿는 무리들이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서로 물건을 통용합니다. 구브로의 바나바가 소개되면 4장이 마무리됩니다.

 

4장 구조

 

1-4절 사도들이 잡히다

5-12절 사도들의 변증

13-22절 사도들의 두 번째 변증

23-31절 풀려나 합심하여 기도하다

32-37절 하나 된 공동체

 

4장 주해와 강해

 

1-4절 사도들이 잡히다

4: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아직 성전에서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방금 전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을 베드로가 고쳤고, 사람들이 놀라워 베드로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베드로는 기회를 틈타 복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듣기 싫어하던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1절) 사도들을 붙잡아 옥에 가둡니다. 이들은 로마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들의 권력과 욕망을 채우는 자들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가장 유대적이어야 할 제사장 그룹인 사두개인들은 가장 교묘하게 반유대적이며 반민족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세족적인 존재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유물론적 사고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율법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바리새파와 다르게 이들은 오히려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이었습니다.

 

'이르러'는 에페스테산(ἐπέστησαν)으로 '기습했다' '들이닥쳤다는 뜻입니다. 이 관리들은 거룩한 곳의 관리를 맡은 자들입니다. 제사장들은 성전 제사를 관장하는 이들로 레위인들에서 최고의 서열에 속하는 제자장 그룹입니다. 성전 맡은 자는 경비대장으로 동일한 단어로 치안 판사나 관리를 말합니다. 이들은 친 로마적이라 예루살렘 안에서 불안한 정서나 분위기가 보이면 그것을 안정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4: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이 사도들을 싫어한 이유는 두 자기입니다. 하나는 예수에 대해 가르친 것, 둘째는 예수의 부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부활은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두개인 그룹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 아니라 유물론적 사고를 가진 사두개인들에게 부활은 가당치도 않는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신학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을 사도들이 행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발짝 하듯 사도들을 기습한 것입니다.

  • '싫어하다' διαπονούμενοι는 짜증 나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후에 등장하는 가르치다의 디다스케와 선포하다의 카탕켈레인에 대한 반응이다.

4: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사도들은 현행범으로 붙들립니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 뭔가를 할 수 없어 곧바로 구류해 둡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문의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과 베드로의 설교가 단지 몇 분이 아니라 거의 6시간 넘게 흘러갔음을 말합니다.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누가는 사도들이 붙잡힘과 더불어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오천명의 남자들이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어린아이와 여성들까지 합하면 적어도 만 명을 넘어갈 것입니다. 위협과 위기의 순간이 계속되지만 공동체는 계속하여 성장합니다. 2장 47절에서 구원 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신다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면 4장에서는 남자의 수가 오천이라는 명확한 수치를 표시합니다.

 

5-12절 사도들의 변증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이튿날 유대 지도자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의회나 그의 비슷한 수준의 모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관리들, 장로들, 서기관들로 구성된 유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이들로 제사장들에게 학문적 조언을 하는 이들입니다. 서기관들은 일반적으로 바리새인들이 맡았습니다. 안나스는 이전 대제사장이며, 가야바는 현 대제사장입니다.  가야바는 빌라도 재임 시기에 재임합니다. 이들은 성전의 실질적인 권력자들입니다.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그들은 권위에 대해 물었습니다. 예전 주님께도 동일하게 권위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아 주님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 마 21장 23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또 하나는 누구의 이름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권위와 존재 자체입니다. 권위와 이름은 동일한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 성전을 관리하고 있는 누가 사도들에게 가르칠 권한을 주었느냐는 협박이자 경고입니다. 베드로는 3장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습니다.(3:6) 이들은 알고 있었고, 어떤 면에서 그렇기에 그들을 가둔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묻는 이유는 공적으로 모든 가르침을 금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베드로가 성령에 충만하여 변증 하기 시작합니다. 누가는 성령 충만을 통해 예수의 영이 임했음을 강조합니다. 행 1:8에서 예수님은 승천하기 전 성령의 임함을 예언하고 그로 인해 온 세상에 '증언'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그 일을 행합니다. 베드로는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을 부릅니다. 관리는 공직 관료이고, 장로들은 권위적 측면에서 말하여 관리와 장로는 유대 지도자들을 총칭합니다.

 

4: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베드로는 위기를 기회로 사용합니다. 질문을 받고 답을 주면서 지금이야 말로 예수를 선전할 기회로 생각합니다. 먼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로 평가합니다. 이사야는 오래전 종말의 때에 저는 자가 사슴처럼 뛰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병자에게 행한 일은 종말론적 사건이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일임을 의도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 사 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건강'을 뜻하는 '휘기에스'는 손상이 없는 신체적 건강을 뜻합니다.(BDGA) 이것을 율법적으로 흠이 없어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병자를 온전하게 한 사람이 누구냐? 바로 너희들이 십자가에서 못 박고 죽였지만 하나님이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 치유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통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유대 지도자들의 재판은 자신들이 받아야 합니다.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건축자의 버린 돌은 시편 18:22를 인용한 것으로 메시아에 대한 거부를 암시합니다. 건축자는 유대지도자들일 수 있고, 하나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맥상 유대 지도자들이 더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버린 돌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사도행전 3: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사람들은 버렸지만 하나님은 인정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 이름만이 사람을 구원할 것입니다. '다른 이름... 주신 일이 없다' 즉 유일하다는 여호와께 사용하는 표현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입니다. 이제 그 여호와의 구원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베드로는 선언하는 것입니다.

13-22절 사도들의 두 번째 변증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3절에서 두 가지 반응이 확연합니다. 하나는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 없는 범인인데 말을 너무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응할 말이 없어진 것입니다. 담대함의 파레시안은 사도행전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로 '거침없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자유민의 특징'(존슨)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선처를 구하지 않고, 지도자들의 억압에 굴하지도 않았습니다.

 

학문 없는 범인은 말 그대로 학식 없는 사람을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또는 정식적인 학업 과정을 밟지 않은 일반 사람들입니다. 문맹율이 현저히 높았던 당시에서 범인은 일반 사람들을 말한다. 당시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글을 읽고 쓰고 공부했습니다. 심지 그는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였습니다. 이건 단지 예수의 제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는 공식 공부가 아닌 예수를 따름으로 그에게 공부를 했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더 할 말을 잃게 만든 것은 베드로가 치유한 사람이 바로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증인이 앞에 있기에 지도자들은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러한 명백함 앞에서도 그들은 주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악입니다. 

 

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공회원들은 의논합니다. 표적이 나타났음이 분명하고, 부인할 수 없음에도 그들은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도록 사도들은 위협하기로 합니다. '유명한(그노스토스 γνωστός)은 '잘 알려지기 적합한' '알려질 수 있는'의 의미로 특이하고 분명한 사건입니다. 너무나 명백함에도 그것을 강제적으로 억제하려는 지도자들은 완악 그 자체입니다. 그들은 모여서 부당하고 황당한 결정을 내립니다. 이 소문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사도들을 위협하여 막자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입 단속하고, 대중매체를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베드로는 명백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와 협박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너희'와 '하나님'을 대척점에 두고 선택할 대상으로 설정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21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관리들은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놓아줍니다. 그런데 그들이 놓아준 이유는 '백성들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은 백성들의 눈입니다.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할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떤 악도 죄도 짓는 악행자들입니다. 

 

23-31절 풀려나 합심하여 기도하다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풀려난 사도들은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당한 일들을 교회에 말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초대교회는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픔과 사연을 공유합니다. 존슨은 동료라는 표현이 '초대교회가 얼마나 자신들을 서로 의지가 되는 친구들의 공동체로 보았는지 강조'한다고 말합니다.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기도의 대상은 대주재이며,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신약은 구약과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제 다윗의 시편인 시편 2편을 인용하여 세상의 관리들의 어리석을 지적 합니다. 그들은 서로 연합하고 마음을 모읍니다. 악을 위해서는 말이죠. 거짓과 연합하고, 악과 연대하는 세상의 관리들입니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위협을 감해 달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죠. 타협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입니다. 또한 치유의 기적과 표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 기적들은 '예수이 이름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손'은 의지와 능력을 말합니다.

32-37절 하나 된 공동체

이 부분은 초대교회가 어떠한 공동체를 이루었는가를 말해 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초대교회의 전부는 아닙니다. 누가는 성령을 받은 후 그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믿은 자들이 한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였다는 말이며, 자신의 견해와 생각이 주님께로 맞추어졌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물건을 서로 통용합니다. 자기의 소유로만 생각하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다른 서신서를 보면 초대교회가 모두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들은 내부적으로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외부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행 1:8이 실현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루살렘 안에서만 증인입니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서로의 소유를 통용함으로 가난한 자가 없어졌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바울은 후에 일반 교회는 연보를 통해 공평해진다고 역설합니다.

  • 고후 8: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 고후 8: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 고후 8: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그의 본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는 레위족인데 특이하게 요셉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도 자신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갖다 바칩니다.

 

 

사도행전 장별 요약

사도행전 장별 요약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가 누가복음 이후 예수의 승천 이후 사도들의 행적과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나가는 삶을 그려 낸다. 초기의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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