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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칼럼] 보라 새것이 되었다

샤마임 2015.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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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칼럼]

보라 새것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필연의 역사다. 필연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운명은 바꿀 수 없다. 운명을 거스르면 반드시 죽음이 뒤따라온다. 불행하게 인류의 운명은 ‘죽음’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죽음 앞에 빈부귀천이 없다. 어느 누구든 죽어야하고, 죽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죽음은 인간의 운명을 지배했고, 죽음으로 인해 역사는 깊고 어두운 밤이 되었다.


부활절은 지금까지 죽음으로 운명 지워진 역사의 필연에 전쟁을 선포한다. 생명이란 새로운 필연의 역사를 만드는 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 때에 나치의 승승장구에 쐐기를 박은 노르망디 상륙잔적처럼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낸 침공이다. 부활절은 죽음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 전복시키는 날이다. 사망과 죽음이 지배하는 역사에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로 창조하는 날이다.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산다고 선언한다. 그렇다. 십자가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며, 인류의 죽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서 죽었다. 사흘 후 주일 새벽 주님의 부활은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사망의 위협에 겁먹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오늘 다시 살아났다.


부활절은 사탄에게 치명적 패배를 안겨준 전쟁선포이자, 승리의 시작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계속 이기고 또 이길 것이다. 죽음은 성도들에게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은 죽음의 역사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이며, 새로운 창조의 시간들이다. 아무리 동장군(冬將軍)이 강하다 해도 봄처녀를 이길 수 없듯, 죽음이 아무리 강해도 생명을 이길 수는 없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우리 안에 머물고 계시는 생명의 능력을 맛보고 능력의 삶을 살아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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