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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bat)

샤마임 2020. 4. 26.

성경의 동물 박쥐(bat)

일반적 박쥐 개념

박쥐의 다른 이름은 편복(蝙蝠), 복익(伏翼), 선서(仙鼠), 천서(天鼠)이다. 박쥐는 시력이 매우 약해 잘 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어둠 속을 빠르고 쉽게 날아다닌다. 시력대신 초음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장애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먹이를 위치를 감지해 사냥한다. 그러나 과일박쥐로 분류되는 박쥐는 반향정위 능력이 없고, 시력과 청력을 이용한다. 그리고 낮에 움직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박쥐와는 사뭇 다르다. 얼굴은 여우와 닮아 날여우(flying fox)라고 부른다. 과일박쥐는 날개가 30cm 이상이다. 황금볏과일박쥐의 경우는 너비가 150-170cm에 달해 성인의 신장과 같다. 과일을 먹고 살지만 질병을 옮기기 때문에 극히 조심해야 한다. 가끔 사람들 앞에 나타나 깜짝 놀래키기도 한다. 한 동굴에서 여러 종류의 박쥐가 모여 산다. 종류가 다양해 꽃가루를 먹는 종이 있고, 개구리나 생쥐 등 작은 동물을 작아 먹는 종도 있고, 흡혈박쥐도 있다


성경의 박쥐

박쥐의 히브리어는 아탈레프이다. 부정한 짐승이다.

레위기 11:19 황새와 백로 종류와 오디새와 박쥐니라

신명기 14:18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이사야 2: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박쥐는 날개가 있어 날아다닌다. 하지만 조류가 아니라 포유류다. 즉 날개가 있는 쥐(mouse). 현재 이스라엘에는 32종류의 박쥐가 서식한다고 한다. 아탈레프는 모든 종류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박쥐는 지구 모든 곳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동물 중의 하나이다. 오직 북극과 남극에만 없다고 한다. 그만큼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는 특유한 동물이다. 팔레스타인에 자생하는 박쥐는 크게 곤충을 먹는 박쥐와 과일을 먹는 박쥐가 있다.

박쥐, 코로나19 감염증의 숙주

최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 박쥐를 숙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박쥐는 많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한시가 박쥐를 식용으로 사용하면서 박쥐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박쥐 안에 있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들에게 감연된 것으로 보고있다. 박쥐는 코로나19뿐 아니라 2003년에 있어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2014년의 에볼라, 2012-2015년 동안 유행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의 주요 감염원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 영어: zoonosis)은 동물들이 가축하 되면서 급격하게 일어난 전염병이다. 박쥐는 가축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박쥐를 식용으로 사용하면서 박쥐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된 것이다.

흡혈 박쥐와 드라큘라

박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흡혈박쥐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피를 빨아 먹는 흡혈박쥐는 종종 흡혈귀를 연상시킨다. 소설 속에서 흡혈귀가 박쥐로 변신하는 것은 이러한 연관성 때문이다. 수천 종의 박쥐 중에서 3종만이 흡혈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동물들에게 다가가 날카로운 이빨로 마취하여 피를 빨아 먹는다.

[3종의 흡혈박쥐] 

흡혈박쥐 (Desmodus rotundus), 

털다리흡혈박쥐 (Diphylla ecaudata), 

흰날개흡혈박쥐 (Diaemus youngi)

1897<드랴큘라>가 소설로 세상에 나왔다. 아일랜드 작가인 브램 스토커가 쓴 것으로 블라드 테페스(1431-1476)의 잔인함을 알게 된 후 그를 조롱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한다. 고대 왕국 왈라키아의 왕자였던 블라트 터페스는 투르크 제국에 맞서 싸웠다. 그런데 포악성이 드러나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말뚝에 박아 놓고 즐겼다고 한다. <드라큘라>1924년 영국에서 무대로 올려져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드라큘라가 입고 나온 검은 망투는 마치 박쥐를 닮아 흡혈인간의 상징처럼 되었다. 헐리우드에서 영화와 되면서 점점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된다. 드랴큘라는 후에 뱀파이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부여되면서 다른 모습으로 진화된다


박쥐 캐릭터에서 배트맨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잘 조화되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정의를 이루는 존재로 그려진다. 


창조과학자의 주장입니다. 캬... 교수가 이런 글도 쓰네요. 

뱀과 하늘을 나는 짐승은 애굽 신의 상징

둘째, 히브리인들이 잘 아는 새와 곤충들이 망라(網羅)되어 있다. 성경은 당시 가나안 주변에 익숙하게 알려진 조류와 곤충들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먼저 20여 종류의 부정한 새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독수리, 솔개, 물수리(어응, 魚鷹), 말똥가리(매), 말똥가리(매) 종류, 까마귀 종류, 타조, 타흐마스(쏙독새의 일종, nighthawk, KJV, RSV), 갈매기, 새매 종류, 올빼미, 가마우지(노자,鸕鶿), 부엉이, 흰 올빼미(따오기), 사다새(당아, pelican, KJV, RSV), 너새(올응, carrion vulture), 황새와 백로 종류, 오디새(대승,戴勝, hoopoe, 후투티), 박쥐였다(괄호 안의 이름들은 한글개역판을 참조).

공동번역 성서는 이들 이름을 독수리, 수염수리, 흰꼬리수리, 검은소리개, 각종 붉은 소리개, 각종 까마귀, 타조, 올빼미, 갈매기, 각종 매, 부엉이, 사다새, 따오기, 백조, 펠리컨, 흰물오리, 고니, 각종 푸른 해오라기, 오디새, 박쥐로 기록하고 있다. 개역성경보다는 개역개정판과 공동번역이 좀 더 현대적 이름에 가깝게 번역한 이름으로 보인다.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되는 것으로 보아, 이들 동물들은 오늘날 명확히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종류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종류들도 있다. 그래서 성경 역본들이 각각 조금씩 서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박쥐는 오늘날 분류학상으로 포유류에 속한다. 하지만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당시 히브리인들의 상식에 따라, 성경은 박쥐를 나는 새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레 11:20, KJV).

성경을 과학책이라 우기며 토끼를 반추동물이라고 하거나, 박쥐를 포유류가 아닌 새라고 하며 집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런 성서근본주의적 사고는 부질없는 집착에 불과하다.

셋째, 곤충은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 가운데 뛰는 다리를 가진 곤충들만 정결한 것들이었다. 즉 메뚜기 종류, 베짱이 종류, 귀뚜라미 종류, 팟종이 종류 등 네 가지 종류가 해당되었다.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들은 부정한 종류였다.

곤충들은 지금도 동남아 등지에서는 식용으로 다양하게 시식되고 시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판되는 경우는 흔치 않으나, 과거 농촌에서 자란 대부분의 세대는 논과 밭에서 메뚜기 등 곤충들을 포획하여 닭 등 가축의 먹이로 주거나 구어 먹고 튀겨 먹은 기억들이 남아있다.

세례 요한이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던 것도 바로 메뚜기가 정결한 곤충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마 3:4).

그러면 왜 성경은 박쥐(레 11:19) 등과 같은 생물들은 먹지 말라고 규정했을까? 박쥐를 매개로 한 20-21세기 바이러스의 창궐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을까?

400여년간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모세의 주도 아래 출애굽을 감행한다. 장정만 60여만명이었다. 이들은 광야에서만 40년을 유랑한 후 가나안으로 입성한다.

이들 공동체에 섭생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만일 특정 전염병이나 식중독이나 바이러스가 공동체에 침투하여 창궐한다면, 민족이 궤멸될 수도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도 박쥐에게 은 우상, 금 우상을 던지라하여 박쥐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생물로 취급(사 2:20)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도 ‘박쥐 우상’을 경고하고 있다(렘 22장 참조).

이렇게 박쥐에게 쓸데없이 가까이 하는 것은 전혀 영육 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 규례에 따라 박쥐 식용을 멀리하여 공동체의 집단 발병을 막을 수 있었다.

따라서 레위기 섭생법은 비록 구원의 직접적 조건은 아닐지라도,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 인류를 속량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 따른 광야와 가나안 섭생법까지 염두에 두고, 인류 역사 전체에도 계시로서의 성경책에 대한 교훈을 주시는 다중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이들 부정한 동물들은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생물들일까? 그렇지는 않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낮 12시경 욥바의 피장(피혁공) 시몬의 집에서 베드로가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을 때,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환상이 나타났다.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내려오고 있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다.

그 때 베드로에게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결코 먹을 수 없다고 반응하였다. 이 때 두 번째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는 음성이었다.

레위기 11장과 관련하여, 이 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부정하다고 한 것들은 분명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부정하고 가증한 것들이었다. 베드로는 한 번도 이들 규례를 어긴 적이 없었다(행 10:14).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어찌 속되다 할 수 있느냐(행 10:15)”는 음성이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 3:13). 은혜의 시대에 율법적 잣대는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이 환상을 통해, 히브리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당당하게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 가증한 것들을 함부로 먹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유리하며 살던 이방인에게도 참 빛이 비추인 것이다. 그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요 1:4-9)!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방인들이여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라!

60회 기독교학술원 창조론
▲조덕영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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