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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 VS 사두개인

샤마임 2011. 10. 5.

바리새인 VS 사두개인


신약 성경 안에 두 부류의 유대인들이 소개된다. 하나는 바리새인 하나는 사두개인
잠깐 여기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어 보자. 흑백논리라고 비판하지 마시라.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려는 것이니...

우리가 일반상식으로 접근할 때 바리새인이 거룩한 생활을 했으니 보수인 것 같고 세속적인 삶을 살았던 사두개인들이 진보일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다. 보수가 사두개인들이고,  진보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바리새인들은 오래된 구약 성경을 현 시대 속에서 그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구약성경이 원래 말하려는 원 의미를 찾아 그것을 현시대 속에서 '해석'하여 적용시켜려 했다. 그들은 구약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현시대에 맞는 간음하지 말라는 뜻을 적용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구약의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상징적인 해석을 많이 가했으며, 구약을 거룩한체 내버려 두지 않고 그것이현대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해석하고 분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 신앙인으로 비추어졌던 것이다.


그에 비해 사두개인들은 서기관과 제사장 그룹으로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일하는 보수주의자들이란 것이다. 그들이 보수인 까닭은 이렇다.(보수는 항상 권력자들이다) 


구약의 율법은 함부로 건드려 셔는 안된다. 문자적을 해석해야 하는 그 오래된 전통을 지금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언뜻 보면 말씀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정반대이다. 이들은 지금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지 않는 말씀들은 무시했다. 그래서 말씀과 상관없는 부분은 마음대로 살아가는 그야말로 자유인들이었다. 전통에 얽매어 해석을 거부하고 그것을 고수하려는 것은 존경이 아닌 사기였다. 말씀에서 분리된 이중적인 삶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대교회에 적용해 본다면 이런 식이다.


사도바울이 초대교회에 여자들이 머리에 힌 수건을 쓰라는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지금도 수건을 쓴다. 그러나 영화나 인터넷, 이종경기 등의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두개인들이 보수적으로 살아가는 진짜 이유다.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모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시기에 있었던 아디아포라 논쟁[각주:1]은 고대교회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해석되지 않는 모든 말씀은 다 거짓말이다. 

  1.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종교개혁자들간의 논쟁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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