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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마태복음 20:17-28 무리한 요구

샤마임 2020.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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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목)

마 20:17-28

무리한 요구


[본문 읽기]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이르시다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한 어머니의 요구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 묵상]

세 번째 이르시다

예루살렘이 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번 예루살렘 여행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마음은 비장하고 무겁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유대인들에게 버려지고, 멸시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십니다.(이전 예언 16:21, 17:22-23) 성경에서 세 번은 확고부동하다는 뜻이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두려워 묻지도 못했습니다.


저 멀리 예루살렘이 보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위에 제자들과 함께 있습니다.(17절) 아마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따로’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심각한 어투로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따로’ 부르신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여겨서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도 이상하시지만, 제자들에게 ‘다시 살아난다’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주님의 설명은 몽환(夢幻)적이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아들을 부탁하는 어머니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가 오갈 때 갑자기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여인은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였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 분은 예수님의 그리 멀지 않은 친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살로메 (Salome)입니다. 세베대의 아내이고, 사도 요한과 큰 야고보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있었으며, 부활 후 빈 무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와서 절하며’ 예수님께 무엇인가를 구했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1절)

과연 어머니입니다.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이나 2천년 이스라엘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주의 나라’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리한 요구를 거침없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앞에 둔 주님께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a mother's request to jesusa mother's request to jesus


이 이야기를 들은 나머지 제자들은 ‘두 형제에 대해 분이’(24절) 여겼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두 요한과 야고보처럼 동일한 마음이었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성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했으니 그만한 대가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안에 남겨진 ‘보상심리’는 천국의 원리를 왜곡시키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천국의 원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 주님 앞에 성공만을 생각하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싶습니다. 주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설명하십니다. 먼저 세상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임의대로 하는 곳입니다.(25절) 철저히 타인을 자신을 위해 이용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들은 철저히 이기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수단화 시키고 이용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까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려 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행위, 하나님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려는 탐욕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원리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합니다. 두 원리는 동일한 하나의 원리입니다. 종이 섬기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28절) 세상의 가치와 천국의 가치는 완전히 다릅니다. 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타인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목적으로 대합니다. 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랑, 그것이 천국의 원립니다.

무리한 요구

주님의 의도는 제자들도 주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이것이 가능할까요? 참으로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요?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주님께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주님의 요구가 더 무리해 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목숨처럼 타인을 사랑할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천국은 사람의 힘으로 사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다면 결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결단과 기도

*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여 가장 중요한 것을 행하게 하소서.

*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선택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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