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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롬 3:1-8

샤마임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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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실하심은 사람의 불의로 깨지지 않습니다 (롬 3:1-8)

유대인의 특권과 그 의미 (3:1-2)

로마서 3장의 서두에서 바울은 앞서 유대인의 외적 특권, 곧 율법과 할례에 대한 자기 자랑을 철저히 무너뜨린 이후,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는 반문을 다룹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3:1). 이는 마치 청중이 바울의 논리에 반대하는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일 유대인의 특권이 실제로 심판에서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받은 언약과 표징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도전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답변은 놀랍습니다.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라”(3:2). 바울은 유대인의 존재 가치와 구속사적 위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특권을 다시금 정리해 줍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τὰ λόγια τοῦ θεοῦ, 타 로기아 투 테우)이 맡겨졌습니다. 여기서 '말씀들'이라는 표현은 복수형으로 되어 있어, 단순한 율법 조문만이 아니라 언약, 예언, 지시, 교훈 등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계시를 포함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단순히 종교적 민족으로 택하신 것이 아니라, 구속사의 도구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보관하는 자들이 아니라 전달하고 순종하며 본을 보이는 자들로 부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사람의 불의는 하나님의 진실함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3:3-4)

바울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유대인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화하는가라는 신학적 질문에 답합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3:3). 여기서 '믿지 아니함'(ἀπιστία, 아피스티아)은 단순한 불신의 태도가 아니라, 언약을 저버리고 신실하지 못했던 유대인의 역사 전체를 함축합니다.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 강하게 부정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3:4). 헬라어로 'μὴ γένοιτο!'(메 게노이토)는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강한 부정의 표현으로,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분의 성품은 우리에게 좌우되지 않으며, 그분의 언약은 결코 사람의 연약함으로 인해 취소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시편 51편 4절을 인용하여 이를 뒷받침합니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 하나님께 회개하며 드린 고백으로, 하나님의 판단이 언제나 옳고 의로우며 인간의 죄는 도리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심오한 신학적 진리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불의와 대비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의를 돕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죄가 얼마나 깊은지를 통해 하나님의 의로움이 얼마나 완전한지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하는 오류 (3:5-8)

바울은 이제 또 다른 반론을 가정하여 논박합니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3:5). 여기서 '사람의 말하는 대로'(κατὰ ἄνθρωπον λέγω, 카타 안쓰로폰 레고)는 인간적인, 혹은 세속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충분히 하지 않아야 할 질문이지만, 혹 그런 생각이 있을 수 있음을 가정하여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일종의 도덕적 오류입니다. 만일 인간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면, 하나님께서 그 불의에 대해 심판하시는 것이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도전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같은 강한 표현으로 대답합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3:6). 이는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최종적 심판자이시며, 그분의 판단 기준은 영원하고 완전합니다. 만약 그분이 불의하다면 그 어떤 존재도 바르게 심판할 수 없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와 주권을 천명하는 선언입니다.

 

바울은 7절과 8절에서 다시 한 번 인간의 타락한 논리를 비판합니다.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이 말은 한마디로 “악을 행해서 선이 오게 된다면, 왜 우리가 정죄받아야 하느냐”는 비틀린 논리입니다. 바울은 이 논리를 따르는 자들이 이미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단언합니다. 이런 사상은 복음을 오용한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조롱하는 죄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구원과 언약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인간의 불의함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인간의 반응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성취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인간의 죄가 면책되거나 정당화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회개와 겸손을 이끌어야 하며, 그 은혜 앞에서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자는 그 자체로 더 큰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유지됩니다. 그분의 진실하심은 사람의 거짓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으며, 오히려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악용하려는 모든 자는 정죄받을 것이며, 하나님은 오직 의로우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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