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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몬(daimon) , 내면의 목소리? 아니면 현자

샤마임 201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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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몬(daimon)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다이몬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다. 그런데 에라스무스는 다이몬이 현자라고 말한다.(우신예찬) 

성경에서 양심은 모호하다. 절대적인 판단 기준은 아니지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판단의 가치를 가질 때 양심은 쓸모가 있다.  일단 바울이 사용한 '양심'의 표현들을 살펴 보자.


로마서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롬 9:1에서 바울은 양심이 '성령과 함께 증언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양심은 성령은 아니지만 성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양심을 중립적인 어떤 것이기 보다 바르고 옳은 무엇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양심의 기능은 롬 13:5에서도 여전히 동일하다.

 로마서 13: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고린도전서 8:7로 가보자. 이곳에서는 우상 숭배로인해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양심은 절대 중립적 상태이거나 변화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나 인성처럼 타락하고 변화활 수 있는 것이 된다. 디모데전서 1:19에서도 '양심을 버렸다'는 표현을 통해 양심이 가진 기능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린도전서  8: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고린도전서  10: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디모데전서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또 다른 곳에서는(딤전 3:9, 딛 1:15)에서는 양심이 깨끗해야 믿음과 합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양심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 어떤 것이지만 완전하지 않다. 어떤 양심을 바르고 옳지만, 어떤 양심은 더렵혀졌고 악하다. 반대로 착한 양심은 믿음과 함께 한다.(예를 들어 딤전 1:19)

 

디모데전서 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디도서  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양심은  영혼의 소리다. 하지만 완전한 것이 아니다. 착하고 바른 양심을 가질 때 온전한 믿음과 하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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