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고전읽기]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
[기독교 고전 읽기]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
성경적 역사관은 타종교와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순환되거나 점증적 진보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인간의 교만으로 타락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킵니다. 이것을 우리는 구속사로 부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이며,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 형태를 가집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의 멸망으로 인해 역사가 무엇인지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세상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을 구분함으로 세상과 하나님의 나를 구분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세상은 궁극적으로 소멸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함을 보여 줍니다. 오늘은 최초의 역사 철학에 해당되는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오늘의 책은 크리스찬다이제스트의 <하나님의 도성>을 사용했습니다. ( )이 숫자는 쪽수이며, 11.3 등의 표기나 (12.4)등은 11권 3장, 12권 4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원 책의 권.장으로 표기했고, ( )는 번역된 책의 쪽수를 표기한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1. <하나님의 도성>을 쓰게 된 사연과 목적
410년 8월 24일, 그날은 로마가 멸망한 날입니다. 영원한 도성이라 불리던 로마가 망한 것입니다. 교회사가인 곤잘레스는 암울했던 당시의 시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숨을 거둘 때, 반달족들은 힙포를 포위하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그들은 이집트를 제외한 아프리카 북부 해안을 장악했다. 그보다 수년 전인 A.D 410년에는 알라릭이 이끄는 고트족에 의해 로마가 함락되었다. 그보다 앞서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는 황제가 고트족에게 참패를 당하고 살해되었으며, 고트족 병사들은 콘스탄티노플 성벽에까지 접근했다.”
어거스틴이 살았던 시대는 말 그대로 한 시대가 몰락하고 새로운 시대가 태동하려는 전환기였습니다. 영웅은 시대가 낳는다는 말은 어거스틴에게도 해당됩니다. 어거스틴이 가지는 독특한 삶의 여정과 영혼의 혼란은 격동기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시대를 분석하고 종합하게 했습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는 어거스틴이 살았던 시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합니다. 초대교회는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니케아 종교회의야말로 이전의 시대와 이후의 시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325년 니케아(Nicaea) 회의는 대부분의 동방학자들이 주도한 회의였습니다. 이곳에서 부활절 논쟁과 아리우스 논쟁을 정리합니다. 아리우스 논쟁은 '동일 본질'과 '유사 본질'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여 예수가 피조물이 아닌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합니다. 그다음 회의는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소집하여 열리게 됩니다. 이 회에서는 갑바도기아의 세 학자, 두 그레고리와 낫지안주스의 그레고리가 나서서 ' 신인양성(神人兩性)이 예수라고 하는 한 사람의 인격 안에 어떻게 서로 결합될 수 있느냐'라는 아폴리나리스의 의문에 답을 주고 예수라는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양성이 모순 없이 조화롭게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러한 결론은 다시 양성론에 대한 심각한 논쟁을 벌이게 되고, 그 후로 이어지는 회의들은 기독론을 정립하는 시간들로 채워집니다. 어거스틴의 시대는 ‘엎어놓고 믿으라’는 초대교회의 전통이 심각하게 도전을 받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호한 채로 두었던 믿음의 정의들이 점점 명징하고 분명하게 정의되고 정립되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혼란의 시기에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을 통합하고 정리합니다.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어거스틴은 콘스탄틴 이후 기독교가 인정되고 국교화되면서 핍박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한 편으로 경건이 쇠락하고 타락으로 떨어지는 역기능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신학적 연구에 깊이 몰입하고 평안한 시대에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기독교화 된 로마는 얼마 가지 않아 이방인들의 침략을 받게 되고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교도들의 도전을 받게 되고 기독교화 된 후 로마가 망한 이유가 기독교에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기독교에 억눌려 살았던 이교도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쏘게 됩니다. 당시 어거스틴의 친구이자 로마의 행정담당관인 마르켈리누스는 이교도들의 대항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어거스틴밖에 없음을 깨닫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413년에 시작하여 427년에 완성된 <하나님의 도성>은 로마의 멸망이 기독교에 있지 않으며, 로마가 곧 ‘하나님의 도성’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세상의 도성인 로마는 불완전하며, 결핍되어 있고, 욕망과 죄가 가득한 곳이라고 역설합니다. 비록 이곳에 일부의 선과 공의가 있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도성은 심판받아 마땅한 곳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의 도성에 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을 기술하면서 주목이 ‘세상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을 구분하고, 로마의 멸망 이유가 기독교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변증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13년의 오랜 집필 기간과 방대한 분량은 불가피하게 최고선의 문제, 예지와 운명의 문제, 자유의지의 복잡한 주제들을 끌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본서는 단순한 기독교적 역사 철학의 관점을 넘어 기독교의 총체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 책의 구조와 내용
책은 모두 22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세 권은 414년에, 다음 4권은 415년에 그리고 6권에서 11권까지는 416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세 권은 420년에, 마지막 여덟 권은 426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완성해 나갑니다. 완간한 상태에서 출판하지 않고 일부분이 완성된 순서대로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고 합니다. 책이 완성되었을 때 어거스틴은 자신의 친구이자 제롬의 친구였던 아프리카 감독이었던 피르무스에게 책을 보냅니다. 책을 내용상으로 구분하면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1-10 세상의 나라인 로마에 대한 비판
2. 11-14 세상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의 기원
3. 15-22 역사의 종말과 기독교적 역사관
그러나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하면 1-14장과 15-22장으로 구분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 단계보다는 두 단계의 구분이 더 명징합니다. 왜냐하면 엄밀하게 ‘하나님의 도성’에 대한 이야기는 15장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1장부터 14장까지는 로마의 멸망 이유가 기독교에 있지 않다는 변증에 집중하고, 로마가 기독교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도성’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15장 이후의 내용들은 대체로 두 도성 사이를 오가며 비교하고 분석합니다. 세상의 도성은 하나님의 도성이 아니며, 세상의 도성 속에 하나님의 도성이 영적으로 일부분 참여하고 있으나 일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유지되고 통치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는 세 단계 구분에 근거해 책의 전박적인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합니다.
1단계: 로마의 멸망은 이유는 기독교가 아니다.(1-10권)
‘하나님의 도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은 15장입니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이교도들이 공격하는 이유의 기저에 깔린 ‘기독교 이전의 로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반격합니다. 이교도들은 로마의 멸망 이유가 로마가 기독교화되면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잘못된 정책을 폈기 때문에 결국 망했다고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로마에 관련된 신화와 막대한 분량의 연구서들을 언급하며 이전 로마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즉, 이전의 로마가 가지는 종교적 모순과 정치적 업적들은 결코 바르지도 않았고 허물이 없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교도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기독교 이전의 로마는 악으로 가득하며, 엉터리 신화에 얽매여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그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세상의 나라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돌아가고자 하는 로마는 선하지도 평화롭지도 않았습니다. 1장부터 5장까지는 (이방)신을 섬기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주장에 반박합니다. 어거스틴은 5장 마지막 부분에서 ‘온갖 수많은 거짓 신들이 어리석은 자들에게 유일한 소망의 대상의 되는 현세적인 행복을 얻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입증’(318쪽)했다고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로마의 신화 속에 나타난 거짓된 신들의 이야기를 폭로합니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연극들은 신성 모독적이며, ‘남신들과 여신들, 하늘의 처녀와 만물의 어머니인 베레킨티아를 기념하기 위해 행해진 아주 천박한 구경거리’(132쪽)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연극 공연을 요구한 자는 바로 신들’(144쪽)이라고 고발합니다.
또한 로마의 수많은 전쟁 중에서 신들의 이름으로 치른 전쟁들이 모두 승리를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과 한니발 전쟁의 경우 로마는 거의 멸망 위기에 빠집니다. 자기를 구해준 스키피오 장군을 배반한 로마의 살루스티우스의 부도덕함, 만리우스가 갈라디아를 복속시키고 아시아의 사치스러운 풍습을 로마에 가져온 사건, 자신들의 제국을 확장하기 위하여 벌린 전쟁 등은 결코 선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제국의 성장은 오히려 그들 자신이 정당한 전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자들의 악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웃 민족들이 평화를 지키고 항상 정의롭게 처신하며 결코 악으로써 도발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로마제국은 사실 소국으로 남아있어야 했을 것이다.”(243쪽)
로마의 팽창과 행복 속에는 음란과 탐욕이 자리하고 있으며, 수차례 위기를 겪어 왔고, 부도덕한 방법들을 통해 제국을 확장해 왔습니다. 그들은 초기부터 ‘거짓 신들을 숭배했고, 악령들에게 희생 제사’를 바쳤습니다.(290쪽)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지만 어거스틴은 방대한 분량을 그들이 추억하는 기독교 이전의 로마는 저급했고, 부도덕했으며, 결코 행복한 곳이 아니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이전의 로마는 돌아가야 할 회귀의 고향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2단계: 세상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의 기원 (11-14권)
이곳은 두 도성의 기원과 종국을 다루는 중요한 곳입니다. 어거스틴은 후반부에 종말론적 역사를 다루기 앞서 두 도성의 근원적인 차이를 다룹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여기서 두 도성을 시작하기 전에 신지식에 대한 문제를 다룹니다. 11.2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 세계의 올바른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1.3에서는 성령으로 인하 정경과 그 권위의 문제를 다룹니다. 11.4부터 마지막 11.34까지는 창조의 기원을 다루면서 두 도시의 서곡인 천사들의 창조를 다룹니다. 악한 천사 즉 ‘마귀의 교만 때문에 죄가 처음으로 생겼다.’(554쪽)고 선언합니다. 어거스틴은 천사 창조를 다루면서 <자유의지론>에서 언급했던 악의 기원을 밝힙니다. 천사들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가장 처음 창조되었으며, 그들의 악은 ‘결함’이며, ‘결함은 본성에 반대되는 것이며, 반드시 본성에 해를 준다.’(555쪽)고 말합니다. 타락은 나쁜 것이며, 그 이유가 ‘본성들의 질서에 역행하면서, 지고의 존재를 버리고 더 낮은 존재로 타락했기 때문’(12.8)로 보았습니다.
어거스틴은 15권부터 다룰 하나님의 도성을 시작하기 전에 14권에서 죄의 원인이 육체가 아닌 ‘죄 많은 영혼’(659쪽)에 있다고 전제하며, 그로 인해 썩음(죽음)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 원리는 결국 ‘세상의 영’과 ‘하나님의 영’을 구분하는 바울의 주장을 따르는 것입니다.(고전 2:11-14) 세상의 도성, 즉 세상의 나라들은 세상의 영을 따르기 때문에 썩음(소멸)을 당할 것이고, 영원한 진리를 따르는 하나님의 도성의 시민들은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삶은 자기희생적 삶이며, 겸손과 사랑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영이 지배하는 세상의 도성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리석은 존재가 될 것이며, 이상한 사람들로 취급 당하게 됩니다. 결국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그네로, ‘길손’(679쪽)으로 지내게 됩니다. 이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의 차이를 타락에서 찾고 그 타락이 세상의 나라를 움직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 두 도성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펼쳐지고 진행하는가는 마지막 부분에서 세밀하게 다루게 됩니다. 14권 28장에서 언급한 두 도성의 차이를 간략하게 요약해 봅니다.
“두 가지 사랑이 두 도시를 건설했다.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멸시하는 자기 사랑이 지상 도성을 만들었고, 자기를 멸시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천상 도성을 만들었다. 따라서 지상 도성은 자체를 자랑하며 천상 도성은 주를 자랑한다. 지상 도성은 사람들에게서 영광 받기를 원하고, 천상 동성은 우리의 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최대의 영광을 여긴다. .. 지상 도성에서는 지배욕이 자체 속의 귀인들과 .. 군림하고 천상 도성에서는 .. 사랑으로 섬기되, 지도자는 그 지혜로 피지도자는 복종으로 섬긴다. 지상 도성은 그 권력자들이 나타내듯이 자체의 권력을 사랑하며, 천상 도성은 하나님께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한다.”(698쪽)
3단계: 역사의 종말과 기독교적 역사관(15-22권)
마지막 주제를 다루는 15권부터는 두 도성을 나누는 두 족보를 다룹니다. 두 도성은 ‘두 사회’(15.1)입니다. 하나의 사회는 처음 조상에게서 태어난 ‘가인’이며 ‘사람의 도성’으로 부릅니다. 다른 사회는 ‘아벨’이며 ‘하나님의 도성’에 속합니다. 지상의 도성은 타락한 가인, 동생을 죽인 살인자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 도성의 처음 성벽에는 아우의 피가 흐릅니다.(15.5) 신기하게도 로마의 시작 역시 동생을 죽인 형 로물루스에 시작됩니다. 가인과 아벨이 싸우듯, 사람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이 싸웁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다투듯(갈 5:17) 사람의 도성은 죄와 욕망에 의해 시작되고, 하나님의 도성은 은혜와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가인으로 시작된 사람의 도성은 가인의 후손들을 통해 견고해집니다. 어거스틴은 바울이 유비를 통해 아벨을 죽인 가인, 예수를 죽인 유대인(709쪽)으로 상정합니다. 노아의 홍수로 인해 가인의 족보를 끝이 나지만, 어거스틴은 함의 족보를 통해 그들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려 줍니다. 그들은 다시 홍시 전의 니므롯에서 홍수 이후 바벨탑과 바벨론으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11장 이후 셈의 족보는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때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갈대아 우르, 즉 바벨탑 공동체에서 단독적으로 부르십니다. 어거스틴은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출발했다고 표현합니다.(16.12) 17권에서는 족장 시대를 넘어 예언자들의 시대를 다룹니다. 18권은 이스라엘의 말기에 해당하는 선지서들을 다루지만 초반에 모세로부터 시작된 신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고 세상의 나라와 뒤섞이는가를 말합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은 여러 나라에 흩어집니다. 어거스틴은 유대인들의 천상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일치한다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나라는 완전하지 않으면 세상의 나라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상징이었으며, 하나님의 집은 구약이 아닌 신약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실현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마지막 22장에서는 모든 것들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종말에 일어날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 땅의 도성의 무너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성은 영원하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부활하여 육신으로 승천하셨다는 것’(1078쪽)이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격하는 이들의 허망을 이야기합니다. 비록 사람의 몸이 썩고 없어지더라도 부활 시에는 다시 실제의 몸으로 일어납니다.
“그뿐 아니라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우리 몸을 다시 살리실 때에 짐승에게 먹히거나 불에 타버린 부분, 먼지나 재로 분해된 부분, 물이 되거나 공기 중으로 증발한 부분들은 모두 다시 부르시지 못하리라고 염려하지 말라.”(1107쪽)
마지막 단계에서 어거스틴은 오래된 화제인 자유의지를 살며시 꺼냅니다. 어거스틴은 ‘처음 받은 자유 의지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고, 마지막에 받을 자유 의지로는 죄를 지을 수 없’(1130쪽)는 상태가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도성은 이 땅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도성은 세상의 도성과 함게 섞여 있으며 종말의 때에 모든 것이 분간되고 분별될 것입니다.
3. 나가면서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은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닙니다. 한글로 번역된 것도 천 쪽이 넘어가는 방대한 분량이며 원래 작성한 분량만 해도 무려 22권이나 됩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의 멸망 이유가 기독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책을 썼지만, 방대한 분량이 말해주는 것처럼 창조와 역사, 타락과 자유 의지 등의 다양한 화제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처럼 사단이 지배하는 이 땅의 나라는 소멸될 것이나 진리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합니다. 사람들이 세운 도성은 죄에 근거했으며, 오류와 왜곡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에 비해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지배하며, 겸손과 헌신으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은 사람의 인식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으며, 모호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아벨의 동생인 셋의 족보를 통해, 그 이후 셈과 족보를 통해 전해 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타락하게 될 때 다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것조차 사람들의 욕망으로 무너집니다. 신약의 시대에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영적인 나라. 즉 거듭난 영혼들이 모이는 교회를 시작됩니다. 가견적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는 하지만 일치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가 침투해 있으며, 마지막 땅에 구별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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