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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1-2 강해, 복음을 다시 알게 하노니

샤마임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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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지 않은 복음, 흔들림 없는 구원

고린도전서 15장 1절과 2절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 중 부활의 핵심을 여는 서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받은 복음이 무엇이었고, 그것이 어떻게 구원에 이르는지를 다시금 분명히 선포합니다. 당시 헬라철학의 이원론에 영향을 받은 고린도 교회는 육체의 부활에 대한 의심과 혼란에 빠져 있었고, 바울은 그들에게 다시금 복음의 본질을 상기시키며 흔들림 없는 구원의 확신을 붙들도록 권면합니다.

복음을 다시 알게 하노니 (15:1)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15:1)라고 말하며 본문의 논증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알게 하노니'(γνωρίζω)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확증하다', '다시 상기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입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것이 실제 삶에서 흐려지고 있었기에 다시 그 진리를 마음에 새기게 하려는 바울의 목회적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 헬라철학, 특히 플라톤의 이원론적 사상에 영향을 받아 육체는 악하고 영혼만이 선하다는 세계관 속에 있었습니다. 이런 사상은 그리스도의 부활, 더 나아가 성도의 부활이라는 신앙의 핵심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복음을 단지 영적인 차원에서만 해석하려는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지금 이 복음이야말로 그들의 존재 기반이며, 신앙의 뿌리임을 다시 알리고자 합니다.

그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15:1)고 말합니다. '받은 것'(παρελάβετε)은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단지 듣고 수용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이 사도적 권위 아래 전해진 신적인 계시라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 복음을 받은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주어진 생명의 선물이었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 선 것이라'(ἐν ᾧ καὶ ἑστήκατε)는 현재완료형 동사를 사용하여, 과거에 받은 복음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그 믿음 안에 서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어야 할 삶의 방식임을 일깨워 줍니다.

구원의 자리, 복음의 조건 (15:2)

이어지는 2절에서는 바울이 복음의 효력을 더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15:2).

여기서 '굳게 지킨다'(κατέχω)는 '붙잡다', '단단히 움켜쥐다'는 뜻으로, 복음을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전 존재로 굳게 붙드는 삶을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 여러 사상과 가치관 속에서 혼란을 겪으며, 복음의 핵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단순히 복음을 기억하라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을 삶의 중심축으로 삼아 굳게 붙들라고 명령합니다.

또한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헛되이'(εἰκῇ)는 목적 없이, 방향 없이 라는 의미입니다. 즉,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믿음이 실제 삶과 연결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의 죄와 생명 문제와 무관하게 여겨지는 상태를 바울은 경고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적 동의에 머무르는 신앙의 위험성을 드러냅니다.

바울이 말하는 구원(σωζεσθε)은 현재형으로 쓰여, 단회적인 구원 사건뿐 아니라 계속되는 구원의 여정을 포함합니다. 믿음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 실천이며, 그 믿음을 굳게 붙들 때 구원은 계속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구속사적 복음과 우리의 정체성

이 두 절은 단순한 도입부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복음의 근간이 무엇인지 상기시키며, 그들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복음'(εὐαγγέλιον)은 단지 좋은 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가 한 인격,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완성된 사건입니다. 이 복음은 성경 전체를 꿰뚫는 흐름이며, 아담에서 시작된 타락의 역사를 그리스도의 순종과 대속으로 회복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정수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통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삶의 한쪽 구석에 있는 종교적 지식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다시 복음을 알게 한 것은 그들이 단순히 교리적으로 바른 지식을 갖추기 위함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접근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많은 정보 속에 살고 있지만, 복음을 알고 있는 것과 그 복음 안에 서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지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사건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결정적인 승리입니다.

복음을 붙들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다른 것을 붙잡게 됩니다. 헬라철학이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 합리주의, 실용주의, 자기중심적 신앙에 쉽게 노출되고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복음을 다시 확인하고, 그 안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5장 1-2절은 바울이 단지 부활 교리를 서술하기 위해 꺼낸 서론이 아니라, 교회의 신앙과 존재의 뿌리를 바로 세우기 위한 강력한 복음의 선언입니다. 받은 복음, 그 가운데 선 것, 굳게 지킨 믿음, 그리고 헛되지 않은 구원 — 이 네 단어가 고린도 교회와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복음을 붙들고, 그 안에 서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날마다 복음을 다시 붙들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며, 구속사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길입니다.

고전 15장 구조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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