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묵상] 마태복음 27:45-54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고난주간묵상
4월 10일(금)
마 27:45-54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본문 읽기]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말씀 묵상]
제육 시에서 제구 시까지
제육 시에서 제구 시까지, 그러니까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도대체 이 어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성경을 비신화화 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일식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식이 세 시간동안 지속될 리는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어둠은 악이 지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또 하나님의 고통을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고통은 하나님의 진노이기도하며,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출애굽 당시에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강조하자 애굽에서 빛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애굽에 많은 신이 있지만 가장 강력한 신은 태양신 라(Ra)였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거두심으로 애굽의 태양신 라를 심판하는 동시에, 애굽이 신이라 섬기는 태양도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온 천하에 드러내십니다. 빛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빛을 거두신다는 것은 죄에 대한 심판이자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말해주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죄인된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십자가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진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입니다.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시려는 계획입니다. 사도바울의 사자후의 설교를 들어 보십시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인류에게 쏟아 부어야할 모든 죄를 예수님께 쏟아 부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요 1:29)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어둠 아래 계십니다. 우리에게 참 소망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죄는 주님의 것이고, 우리의 고통도 주님의 것이고, 우리의 어둠도 주님의 것입니다. 죄대신 화관을, 고통 대신 찬송을, 어둠 대신 빛을 허락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람어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입니다. 우리는 이 외침을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에 대해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외침을 ‘아버지! 아들을 죽일만큼 왜 그렇게 죄인들을 사랑하십니까?’로 읽어야 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들을 때 이 외침은 심장을 멎게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감히 하나님의 아들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이렇게 선언합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시고 죄인들을 선택했습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아들을 버리고 죄인을 구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이해와 생각을 초월하십니다. 우리 주님 역시 자신을 죽임으로 모든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철저히 자신의 이익과 평안만을 갈구하는 사람과 다르게 주님은 오히려 자신을 죽임으로 모두를 살린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다 주님을 닮아야 하는 이유, 주님을 따르기가 힘든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자신을 죽여 타인을 살리고, 자신을 부정하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과 삶은 타락한 우리의 본성과 정반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주님께서 이 땅에서 모든 삶을 마치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러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것이며, 하나님의 거처와 인간의 거처를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과 일 년에 한 번 오직 대속죄일에 향을 날리며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많은 연기가 지성소에 가득 차 법궤를 거리고 희미한 모습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아무나, 어느 때나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죄 많은 인간들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예수님의 몸과 생명입니다. 그 몸과 생명을 찢으시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진정한 샬롬의 주인이시며, 화평의 주관자입니다.
마태는 산상수훈을 시작하시면서 주님께서 하셨던 팔복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신지 알려 줍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마무리
어둠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이고, 심판입니다. 그러나 그 진노와 심판을 사람이 아닌 당신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아들의 피를 보고 그를 믿는 자들을 비켜갑니다. 그 피로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갑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 사랑, 어찌 표현하며, 그 은혜, 어찌 다 찬양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도 갈보리의 그 사랑을 감사하며 나아갑시다.
결단과 기도
* 아들에게 모든 진노를 쏟아 부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 아무런 가치 없는 인생을 사랑하여서 귀한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몸을 찢어 우리를 치유하신 독생자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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