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율법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율법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율법(νόμος)’의 용례
‘율법(νόμος)’이란 단어는 25개의 절에서 32회 사용된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의미로서 사용된 경우는 2:16에서 2회 사용되는 것을 비롯해 모두 6회 사용된다.
- 2:16, 2:21, 5:4, 3:11;21
(1) 율법과 의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ἐξ ἔργων νόμου)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διὰ πίστεω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2) 율법과 믿음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과 아브라함 언약(약속)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3: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3) 율법과 행위
한 가지의 율법을 행하는 자는 모든 율법을 행해야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을 지키고자 한다면 율법 가운데 살아야 한다.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3:11에서 믿음으로 살리라(ζήσεται)라고 말하고
3:12에서 율법으로 살리라(ζήσεται)라고 말함으로 믿음과 율법을 대등구조로 보고 있다.
[3:11 ὅτι δὲ ἐν νόμῳ οὐδεὶς δικαιοῦται παρὰ τῷ Θεῷ δῆλον, ὅτι Ὁ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3:12 ὁ δὲ νόμος οὐκ ἔστιν ἐκ πίστεως, ἀλλ’ Ὁ ποιήσας αὐτὰ ζήσεται ἐν αὐτοῖς.
레위기 18:5에 의하면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생명을 얻는다. 바울은 구약에 근거하여 본 절을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율법은 자체적으로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은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다고 본다.(전통적인 율법이해)
(4) 율법의 제한적 기능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3:19절에서 율법이 온 이유를 ‘범범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고 하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라는 임시적 방편으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3:21-23에서는 하나님의 약속들과 율법이 절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는 율법을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율법은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만 필요한 것이다.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5) 율법의 완성
이 부분은 아직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율법의 완성이란 개념이 가능한지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바울은 5:14에서 온 율법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다라고 말한다. ‘이루어졌다(πεπλήρωται)’는 ‘성취’한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상당히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레이제넨의 경우는 바울이 율법에 대해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웨스터호움는 바울이 율법의 ‘행함’과 ‘이룸’을 구분하며 말하며, ‘행함’이 유대인들에게 적용된다면, ‘이룸’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한 결과라고 말한다. 슈라이더 역시 웨스터호움의 견해에 동조하며, 율법의 행함(ποιῆσαι)가 성취(πεπλήρωται)를 구분한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6:2절에서 그리스도의 (율)법(τὸν νόμον τοῦ Χριστοῦ)을 언급함으로 구약의 율법과 대조하고 있다.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τὸν νόμον τοῦ Χριστοῦ)을 성취하라
결론
이상으로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율법관을 살펴 보았다. 바울은 율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율법은 결코 의롭게 할 수 없다. 또한 율법과 믿음은 별개의 것이며, 믿음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죄를 범함으로 율법을 주셨지만 임시적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에 비해 시기적으로도 늦기 때문에 결코 율법을 아브라함의 언약(약속)과 비교할 수 없다. 율법을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율법으로 ‘살 수’는 있지만, ‘성취’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율법을 구원에 ‘들어가기’ 위한 행위의 개념으로 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성취’하지 못한 열등한 것으로 치부한다. 성취는 오직 사랑, 즉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일어나는 삶의 결과로서 가능하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τὸν νόμον)’을 대칭적으로 보여줌으로 그리스도의 법이 율법이 이루지 못한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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