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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기고글]/크리스찬북뉴스

부활의 주와 함께 살라 / 맥스 루케이도 / 박상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by 하늘땅소망 2020. 3. 10.

부활의 주와 함께 살라

맥스 루케이도 / 박상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일상으로 그린 십자가

은 살아감으로 정의 내린다. 누구의 삶도 아닌 바로 살아가는 자신이 그렇게 한다. 삶은 해석이다. 오래 전 어느 모임에서 당신에게 일주일간의 마지막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당장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갈까?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까? 도대체 뭘 할까? 아무리 고민해도 할 게 없었다. 아니 할게 너무 많아 일주일이란 시간 안에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스스로 질문했다. 이번에는 질문을 바꾸었다. ‘무엇을 할까?’가 아닌 무엇이 가장 가치 있을까?’였다. 질문을 그렇게 바꾸니 나니 한결 생각하기 쉬워졌다. 마지막 일주일이 주어진다면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자.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가치, 가장 가치 있는 일이란 뭘까? 쉬울 것 같던 질문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질문을 다시 바꾸었다. ‘어떻게 살아야 가장 잘 산 것일까?’ 거의 잠을 설쳐가며 고민 했다. 다시 만나기 하루 전 자정이 되어서야 답을 내렸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란 어제처럼 오늘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삶이란 하루하루 가장 중요한 일에 투자해야하고, 가장 중요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 책은 예수님의 마지막 여섯 시간에 대한 묵상이다. 현재 시간으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다.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의 시간, 즉 마지막 여섯 시간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시고 운명한 시간을 말한다. 맥스 루케이도는 마지막 여섯 시간을 승리라는 단어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여섯 시간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시간들의 전제라고 말한다. 루케이도는 십자가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반추(反芻)한다.


절묘한 삶의 의미로의 여행은 살아감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3장에 나오는 그레이스 르웰린 스미스의 외로운 무덤은 역설이다. 세상에서 사랑 받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삶, 살아 있을 때 혼자였지만 죽어서도 혼자인 보잘것없음이 묻힌 곳이다. 그런데 아유수비츠 감옥에서 죽음의 방으로 가는 가조니체크를 대신 자신이 가기를 결정한 프란치스코회 신부 콜베는 이 보잘 것 없음을 재해석한다.


제겐 아내도 없고 아내들도 없습니다. 게다라 저는 늙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건강 상태가 저보다 양호해 보이는 군요.”


그렇다.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이기 죽어도 된다는 것이다. 집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가조니체크에 비해서 말이다. 자신과 아무상관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 아니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한 사람도 그렇게 죽었다.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고 십자가에 기꺼이 오르셨다.


이 책은 십자가의 고통의 깊이와 무게를 숫자로 소개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면 나의 죄의 깊이와 십자가의 은혜가 세밀하게 그려진다. 루케이도는 언어의 마술사다. 분명 성경의 이야기인데 나의 이야기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하던 이들이 모두 달아났다. 여인은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어떻게 보았을까? ‘장성한 딸이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눈으로 그녀를 보셨을까?’ 루케이도는 그럴 것 같다고 말한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한 명 한 명 그렇게 바라보신다. 예수님은 사람을 대중으로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개성 넘치는 한 사람으로 보신다.


이 여인에게서 예수님을 그런 마음을 보신다. 여인은 맨발에 흙투성이다. 팔로 가슴을 가리고 두 손을 절망적으로 쥐어짠다. 그런 그녀의 마음은 그녀 자신의 죄와 사람들의 분노로 누덕누덕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에게서만 볼 수 있는 온유함으로 맺힌 곳을 풀고 구멍 난 곳을 메우신다.”


루케이도는 일상을 그린다. 그렇게 그려낸 그림을 모두 조합하니 영락없는 골고다의 십자가 형상이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마음껏 방탕을 즐긴 아들은 이제 아무도 자신을 눈여겨 보지 않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하루 벌어 하루도 살지 못한다. 집으로 가고 싶은데 갈 자신이 없다. 그래도 모르니 가자. 그렇게 시작된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렇게 긴 귀향의 끝.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빌었다. 용서해 달란 말은 안했다. 그냥 굶어죽지 않도록 일꾼처럼 대해달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이전의 아들로 인정해 주었다. 옷도, 신도, 잔치도 벌였다.


주님은 여섯 시간 동안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사람들에게 모욕당했으며, 제자들까지 외면했다. 마음도 찢어지고 몸도 찢기셨다. 십자가의 여섯 시간은 우리의 삶과 아픔을 고스란히 떠안은 시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그렇게 귀한 것이다. 자신을 가장 가치 없는 존재처럼 여기시고 기꺼이 버리신 그 사랑 때문에. 주님은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신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삶을 재해석해야 한다. 주님의 쓸모없음은 쓸모없음이 아닌 우리를 사랑한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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