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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세계

[성경의 시간] 성경의 시간(유대식 시간과 로마식 시간)

by 하늘땅소망 2020.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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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시간] 성경의 시간(유대식 시간과 로마식 시간)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되었으며, 다른 서신서에 비해서는 상당히 늦은 시기에 기록된 것이다. 아무리 빨라도 AD 80년 이전으로 갈수는 없다. 요한복음의 기록시기에 대한 논의는 이곳에서 말하려는 주제와 거리가 있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 다만 후대의 기록이기 때문에 유대의 시간법이 아닌 로마의 시간법을 따른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 뿐이다. 요한복음의 시간이 최근 학계에서 이슈가 된 이유는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수가성의 여인을 만날 때가 ‘여섯 시’(4:6)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통적 해석은 여섯 시를 정오로 보고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아무도 물을 길으러 오지 않는 시간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시간은 전통적으로 로마의 시간 계산법을 따른다고 이해되어 왔다. 만약 로마의 시간을 계산하게 되면 여섯 시는 현대 시간으로 저녁 6시가 된다. 이 시간은 대체로 해가 지는 시간으로 유대시간으로 0시이며, 하루가 시작되는 때다. 팔레스타인들은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물을 길으러 나온다. 만약 요한복음의 시간이 로마식을 따랐다면 수가성의 여인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한 것이 아니라 다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제 시간에 찾아온 것이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전통적 해석법이 틀렸음을 의미한다. 자, 이제부터 요한복음에 나타난 시간의 세계로 떠나보자.

요한복음의 시간 표기법을 살펴보자. 요한복음에는 모두 네 번에 걸쳐 하루 안의 시간을 표기하고 있다.

1:39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6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4:52 때를 물은 즉 어제 일곱 시에

19:14 때는 제육 시라

이제 이 시간들이 현대의 시간에 준하여 어떤 시간이었는지 살펴보자.

유대인들의 시간 계산법

먼저 유대인들의 시간 계산법과 로마의 시간 계산법의 차이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대부분의 학자들은 공관복음(마, 막, 눅)은 유대식 시간 계산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유대신 시간 계산법이 가장 장 나타나 있는 곳은 마태복음 20장에 나타난 포도원 품꾼의 비유이다. 이곳에서 등장하는 시간은 이름 아침(1) 제삼시(3) 제육시와 제구시(5절) 제십일시(6)이다. 이곳에서 등장하는 시간은 이름 아침에서 해질녁까지의 시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루를 해가지는 시간을 0시로 보고 두 시간을 한 시간으로 잡고 하루에 12시간을 계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저녁 6시는 0시이고, 자정은 3시가 된다. 그런데 마태복음 20:3에서 느낌상 이른 오전을 ‘제삼시’(3절)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2시간이 아닌 4시간을 한 시간으로 잡아보자. 그렇다면 이른 아침은 해가 뜨기 전이기 때문에 아침 4시나 5시가 될 것이다. 현대시간으로 전날 저녁 6시에서 다음날 아침 6시는 12시간이 지난 시간이다. 그렇다면 4시간씩 계산하면 ‘제3시’가 된다. 이곳만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마지막 시간, 즉 해가 지기 전의 시간이 제11시(6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만약 하루 시간을 현대의 4시간을 한 시간으로 계산한다면 11시는 사라진다. 이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간을 계산하고 있을 것일까?

고대 세계에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시간은 해가 질 시간이다. 현대의 시간으로 오후 6시를 넘기지 않는다. 지금은 불이 있어 연장이니 야근이니 하겠지만 당시는 해가 떨어지면 어두워서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늦어도 저녁 6시에는 모두 일을 마친다. 도날드 헤그너는 마태복음을 주해하며 이렇게 시간을 설정했다.[WBC 마태복음 900-901]

이름 아침(1) - 동이 틀 때

제삼 시(3) - 오전 9시

제육 시 - 정오

제구 시(5절) - 오후 3시

제십일 시(6) - 오후 5시

마태복음의 시간이 틀리지 않았다면 마태복음에 나타난 시간은 현대의 시간과 다르지 않음이 분명하다. 다만 시간을 측정하는 기준이 다를 뿐이다. 동일 틀 때는 0시, 이곳에서 동일하게 하신 시간을 계산하여 제삼시를 오전 9시, 제구시를 오후 3시, 제십일 시를 오후 5시로 계사나면 된다. 그러면 해가지는 시간인 오후 6시는 12시 또는 0시가 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마태복음 20장의 계산법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렇게 결론 내려보자. 마태복음의 시간은 하루를 24시로 보고 있으며, 해가 뜰 때를 0시로 계산하여 12시간을 만든다. 저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 이제 도표로 정리해보자.

유대식

 

현대

0

오전

6

1

 

7

2

 

8

3

 

9

4

 

10

5

 

11

6

오후

12(0)

7

 

13(1)

8

 

14(2)

9

 

15(3)

10

 

16(4)

11

 

17(5)

12(0)

 

18(6)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마태복음의 시간 계산법에 의하면 십자가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제육 시(현 정오)에 어둠이 임했고, 제구 시(15시)쯤에 ‘엘리엘리라마 사박다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7장) 그리고 마태는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라고 서술한다. 아마 제구 시 쯤에 운명하신 것처럼 보인다. 이제 이 시간을 기억해 두자. 왜냐하면 요한에 이 시간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마식 시간 계산법

자 이제 요한복음으로 넘어가 보자. 요한복음에 시간이 기록된 것은 모두 네 곳이다.

1:39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6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4:52 때를 물은 즉 어제 일곱 시에

19:14 때는 제육 시라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시간 서술은 19:14이다. 이곳은 빌라도가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린 시간이다. 요한복음 19:13-16까지 읽어보자.

[요 19:13-16]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마태복음에 의하면 제육 시는 정오, 즉 낮 12:00이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비교해 볼 때 요한복음에서 제육 시는 정오가 아니다. 이른 아침이거나 새벽이다. 왜냐하면 사형언도를 내린 후에 채찍을 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서 못에 박혀 죽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제육 시에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상태였다. 사본 상의 오류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터이지만 사본비평에 의하면 분명 오류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서로 다른 시간 계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가 성 여인과 만난 시간

요한복음에는 ‘여섯 시’가 두 번 등장하는 한 번은 예수님의 사형 언도 시간이고, 다른 한 번은 4장 수가 성 여인과의 대화 시간이다. 요한복음 4장으로 돌아가보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향하신다. 대체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요단 동편 길을 우회하여 돌아간다. 그런데 예수님과 일행은 사마리아를 통과한다.(4:4)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 도착해 야곱의 우물로 알려진 곳에 앉으신다. 요한은 그 때가 ‘여섯 시쯤 되었다’고 말한다. 유대적 시간 계산법에 의하면 6시는 정오이다. 바로 이런 단순한 시간 계산법에 의해 전통적인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수가 성의 여인이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뜨거운 대낮인 정오에 물을 길으러 왔다고 생각해 버린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곧바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예수를 ‘그리스도’(요 4:29)로 소개한다. 이러한 여인의 행동은 동네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거나 소외를 당했다는 느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요한복음을 주해한 비슬리-머리는 이렇게 말한다.

축어적으로 낮이 오전 6시에 시작된다고 계산하여, ‘제육시쯤’이므로 오늘날로 환산하면 정오 12시쯤이다. 시간에 대한 언급이 예수가 지치고 목마른 상태에 계셨음을 섦여해 준다. [비슬리 머리 WBC 요한복음, 206]

비슬리 머리는 요한복의 제육시를 곧바로 유대식으로 계산하여 정오라고 말한다. 전 총신대교수였던 유상섭 목사 역시 정오로 해석한다. 중요한 누락은 십자가 사건에서 제육시가 언급된 것을 가져오면서 제육시의 시간을 이렇게 응용한다.

저자 요한은 4:16과 19:14에서 정확하게 제6시쯤이었다는 동일한 표현 '호오라 엔 호오스 헥테에'를 사용한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저자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약속한 생명수, 즉 많은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예수님에게로 돌아오는 사건이 그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있을 것을 예고하려는 의도이다.[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요한복음』 108]

자, 이쯤되면 필자가 완전히 실수 한 것 같아 보인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데 그렇지 않다. 이광호 목사는 마태복음 주석에서 십자가 사건의 시간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은 현대 우리의 시간으로 오전6시에 빌라도에게서 사형 판결을 받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당하혔다. 유대인의 시간은 현대 시간으로 오전 6시부터 0시가 된다. 그래서 제 삼시는 현대시간으로 오전 9시, 제 구시는 오후 3시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형을 언도한 시간을 제6시라고 했다.(요 19:14) 유대인의 시간 계산법은 현대 시간으로 오전 6시부터 0시로 시작되는 반면, 로마의 시간 계산법은 현대 시각과 똑같이 자정부터 0시로 시작된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6시는 유대인의 시간으로 6시가 아니라 현대의 시간으로 6시이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한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는 예수께서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서 못 박히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이광호 『마태복음』)

조민석 교수 역시 여섯 시는 유대식 시간이 아니라 로마식이라고 말하며, 여인은 ‘여성이 남들의 이목을 피해 가면서 고립된 생활을 했다기보다 오히려 동네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살았음’(126쪽)을 드러낸다고 말한다.(조민선 『요한복음』)

 

현대

유대식

로마식

오전

12

6

12

 

1

7

1

 

2

8

2

 

3

9

3

 

4

10

4

 

5

11

5

 

6

12(0)

6

 

7

1

7

 

8

2

8

 

9

3

9

 

10

4

10

 

11

5

11

오후

12(0)

6

12(0)

 

13(1)

7

1

 

14(2)

8

2

 

15(3)

9

3

 

16(4)

10

4

 

17(5)

11

5

 

18(6)

12(0)

6

 

19(7)

1

7

 

20(8)

2

8

 

21(9)

3

9

 

22(10)

4

10

 

23(11)

5

11

 

24(0)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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