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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종교개혁을 읽다

샤마임 2019.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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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종교개혁을 읽다

2019년 2월 28일


세상의 모든 책을 읽는것이 꿈인 적이 있다. 특히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해 현대의 중요한 고전들을 읽고 싶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갈망은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고, 아는 만큼 살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두려움이 독서를 주츰 거리게 한다. 공부를 새로 시작하면서 과제로 읽어야할 책들이 산을 이루고, 헬라어와 영어를 다시 시작해야 하고 있기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사에 대한 갈망은 가시지 않는다. 


2년 전부터 마이트웰브(국민일보)에 기독교 고전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고전 읽기가 초대교회와 중세를 넘어 종교개혁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어제는 종교개혁 직전의 마지막 주자라할 수 있는 에라스무스의 생애를 살폈다. 교부시대는 번역된 책이 거의 없어 매번 고전을 소개하는 것이 힘들었다.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출판사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책 값 타령할 일은 아니지만, 무보수로 비싼 책을 구입해 며칠 밤을 끙끙 앓으면 책을 읽고 요약하고, 평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책은 보름이 넘어서야 도착하기도 한다. 중세로 넘어가니 그나마 조금 나았지만 개신교와 큰 상관이 없고 가톨릭 신학이 생경해 읽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안셀무스나 스코투스, 아퀴나스 등은 신학자인 동시에 철학자들이기 때문에 읽어내는 것 조차 힘들었다. 겨우겨우 중세를 넘어 드디어 종교개혁의 문턱을 밟을 시간이 온 것이다. 


종교개혁 시기로 넘어가니 책이 많다. 많아도 너무너무 많다. 특히 루터와 관련된 책은 1차 저작뿐 아니라 전기나 신학서 등 2차 저작까지 합하면 수 백권은 족히 된다. 그 책 중에서 어떤 책을 고르고 소개해야 할지 난감하기까지 하다. 그에비해 츠빙글리나 불링거 등의 책들은 거의 번역이 되지 않았다. 1차 자료를 거의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을 소개한 2차 자료까지도 찾기 힘들다. 추측이지만 종교개혁에 관련된 2/3는 루터의 글이나 그 완 관련된 책들이고, 나머지는 칼뱅과 다른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책들이다. 칼뱅의 개혁사상을 이어받고 청교도와 존 낙스의 장로교단의 영향 아래 있는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칼뱅 등의 종교개혁가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다. 


이번에 세움북스에서 약간 가볍기는 하지만 츠빙글리에 관한 책을 무려 두 원이나 출간했다. 2년 전에 루터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낸 <루터 루터를 말하다>(세움북스)도 읽을 만하다. 장대선에 의해 독보적인 한 권의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번역되거나 관심을 갖지 못했던 <프랑스 신앙고백 해설>(세움북스)이 주인공이다.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장 칼뱅이 초안을 작성하고 그의 제자인 인 앙트완 드 샹듀(1534-1591)가 개편한 것이다. 극심한 박해 가운데 있던 위그노(프랑스 개혁주의자를 일컫는 말)들의 신앙을 돋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571년 8월 24일, 성 바돌로매의 날에 프랑스 가톨릭 주의자들은 위그로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그로 인해 프랑스의 종교개혁은 불가능해 진다. 프랑스의 위그노들은 비록 자신의 본고장에서 종교개혁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지만 작은 불씨가 되어 대륙으로 퍼져 나간다.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가인 칼뱅이 위그노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은 성공한 것이다. 



아이들 학교 문제로 양산에 다녀오니 이틀 전 주문한 책이 도착해 있다. 

에미디어 감피 <스위스 종교개혁> 합신대학원출판부

김중락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 흑곰북스

<루터 : 초기 신학 저술들> <츠빙글리와 불링거> 두란노아카데미

아내는 책을  좋아한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사는 것 역시 좋아한다. 며칠 전 들렀던 대구 보문서점에서 앞으로 읽어야할 중요한 책들은 찾았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고르고 또 골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가 고맙고 미안하다. 교회의 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언제나 부지런하다. 힘든 시간임에도 독서를 놓치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루도 그냥 흘려 보내지 않는다. 다음주 부터 시작될 교육에서도 최선을 다하기 위해 책을 읽고 강의안을 작성한다. 


요즘들어 아내가 자신 없어 한다. 강하고 다부진 그녀의 입술에서 '자신 없다'는 말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여러가지 일로 힘들어 한다. 분명한 건 교회와 성도를 사랑함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난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심방을 하고나서 울며 들어왔다. 아픈 성도을 보니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아내를 보면 몸이 축날 것 같아 조마조마한다. 적당히 하라고 일러 주어도 아내의 사전에는 '적당히'가 없는가 보다. 


종교개혁 서적들을 읽어 가면서 현재의 나의 삶과 한국교회를 본다. 한국교회는 '이제 개혁되었으니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모토를 하나의 기치로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개혁이란 멈추지 않고, 퇴보하지 않고, 계속하여 개혁해 나가야 한다. 바울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랄지라'(엡 4:15)고 하지 않았던가. 자란다는 말은 성화한다는 말이며, 성화한다는 것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말이다. 종교개혁은 운동이나 기치가 아니다. 진정한 종교개혁은 삶이며, 마음이며, 영혼의 문제인 것이다.


교인들에게 가르칠 강의안을 만들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머리를 사매는 아내를 보니, 바로 저런 삶이 종교개혁이 아닌가 싶다. 책만 잔뜩 읽는 나에게 아내는 종교개혁의 실물이다. 아내는 아직도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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