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고전 읽기] 크리소스톰 에베소서 강해
크리소스톰 에베소서 강해
동방교회 4대교부 중의 한명인 크리소스토무, 크리소소톰의 <에베소서 강해>입니다. 안디옥 학파의 정점을 찍었던 명설교입니다.
1. 들어가면서
오늘은 크리소스톰의 두 번째 설교집인 <에베소서 강해>를 살펴 보겠습니다. 육백 편 정도의 설교가 전해져 오지만 한글로 번역된 책은 오직 5권뿐입니다. 대부분 절판된 상태이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는 2천 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성경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삶은 대단한 진보적 성향을 지녔습니다. 크리소스톰의 설교의 설교는 문법적-역사적 해석을 따른 안디옥 학파의 정수입니다. 그의 성경 해석은 명료하면서도 분명합니다. 마치 적용을 향해 돌진해 나가는 기관차처럼 거침없이 해석에서 적용으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안디옥 학파의 성경 해석법은 지금 우리가 듣고 바로 알 수 있도록 말해 줍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비밀스러운 ‘저의(底意)’를 찾지 않고, 문맥 자체가 밝히는 것을 따라갑니다. 이러한 성경 해석은 현대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종교개혁과 근대 이후의 성경 해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크리소스톰의 설교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금욕적 삶을 추구하지만, 교리적입니다. 교리는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과 섭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논리적 방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성경의 신비로움을 쫓아갔다면, 안디옥 학파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특징과 비슷합니다. 동방교회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헬라 철학의 깊은 영향을 받아 관념적 신학을 추구합니다. 이에 비해 안디옥 학파는 소아시아에 자리하면서도 경륜적 신학을 추구합니다. 경륜적 신학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역사하시는가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다. 정의하는 것이 관념적 신학이라면,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십다. 는 것은 경륜적 신학입니다. 안디옥 학파의 성경 해석은 정의에 있어서 정통적 신앙고백을 따릅니다. 그러나 설교에서는 실천을 두드러지게 강조합니다. 이것은 삶이 없는 신앙은 거짓이라고 믿었던 크리소스톰의 신앙관과 맞물려 있습니다.
2. 구조와 내용
지난 주 살펴본 <부자>에서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진정한 부자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에베소서 전반을 강해합니다. 이 책은 모두 24편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에베소서 전체를 다루지만 4장에서는 갑자기 속도를 늦춰 열 번으로 나누어 강해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4장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매우 신중하고 주의 깊게 설교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성경의 에베소서를 개략 적으로 살핀 다음 크리소스톰의 에베소서 강해에 나타난 주제들과 특징들을 살려 보기를 원합니다.
1) 에베소서의 내용
1장 /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거듭나며 구속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신령한 복들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만물들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십니다.
2장 /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지만 그리스도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 구원을 얻는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전에 우리는 이방인이었고,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3장 /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방인인 당신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러므로 당신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선물(은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알리십니다.
4장 / 그러므로 힘써 하나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교회의 각 지체들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교회의 은사들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까지 자라야 합니다. 즉 거룩한 삶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5장 / 성도는 하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성도를 사랑하심 같이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악을 버리십시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십시오.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감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특히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들은 목숨을 바쳐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입니다.
6장 /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종들도 주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을 혈과 육이 아니라 어둠의 세상 영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야 합니다. 특히 성령의 검과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2) 구조
(1) 서론
1-7편 1장부터 3장까지 다룹니다. 이곳은 서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도바울이 말한 에베소서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특별히 복음이 무엇이며,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이 무엇인지 강조합니다.
(2) 본론
8-20편 4장부터 5장까지 다룹니다. 핵심은 4장입니다. 다른 장은 한편이나 길면 세 편의 설교로 마무리 하지만 4장은 무려 열 편이 됩니다. 그만큼 크리소스톰에게는 에베소서 4장은 중요한 본문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론이고, 교회론의 핵심은 4장에 가장 많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결론
21-24편 마지막 6장을 다룹니다. 에베소서 6장은 5장 중반부터 이어지는 교회론에 근거한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를 다룹니다. 6:5절부터는 마귀와 싸우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5장이 삶의 무장이라면, 6장은 영적 무장에 해당됩니다.
3) 설교 요약
서론과 본분 부분을 두 편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이곳에서는 에베소서 본문에 에베소서 내용과 크리소스톰의 성경 해석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강조하는 1-3편을 한 편으로 묶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는 8-17편가지를 한 편으로 묶었습니다.
⓵ 교회는 무엇인가?(1-3편)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의 복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인데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13쪽) 집니다. 이 복음...
“당신은 죽지 않게 되었으며, 자유롭게 되었으며, 아들이 되었으며, 의롭게 되었으며, 형제가 되었으며, 함께 유업을 나눌 자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 되었으며, 또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롭게 되었습니다.”(11쪽)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교리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비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도덕적 선함의 상징’(16절)입니다. 택정 교리는 ‘성부께서는 미리 예정하시고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가까이에 가져오셨습니다.’(18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부와 함께 하신 사역입니다. 역사 속에서 예정을 성취하시고,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25쪽)은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성령으로 인을 치십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믿는 자의 ‘보증’(1:14)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확신 속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먼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의 눈이 밝아져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 안에서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도 알아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성도는 교회의 지체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54쪽)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십니다. 교회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각 지체가 있고, 각 지체는 긴밀한 유대 관계를 통해 하나가 됩니다. 각 지체가 머리와 긴밀하다면, 각 지체와 지체도 긴밀하게 연합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성찬식을 통해 연합을 확인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교회의 친밀함과 하나 됨을 보여줍니다.
정리 / 1-3편은 에베소서 1장을 세편으로 나눈 설교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교회가 무엇인지 다룹니다. 크리소스톰은 바울의 논지를 치밀하게 따라가면서 현 상황 속에서 교회가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니케아 이후 교부에 속하는 크리소스톰은 니케아 신조와 거의 동일한 신앙고백을 설교를 통해 해석해 나갑니다. 하나님의 신적 초월성, 성육신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나음과 피조물과의 다른 점, 성령을 통해 거듭남과 확신 등이 도드라집니다. 안디옥 학파의 정수를 보여주는 크리소스톰의 설교는 지극히 성경적이고, 교리적이며, 적용에 강합니다. 4-7편까지는 건너뛰고 크리소스톰이 공을 들인 본론 에베소서 4장의 열 편 설교로 들어가 봅니다.
⓶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교회 지체들의 삶(8-17편)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하시는 이유,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지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교회와 ‘다른 모든 사람을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143쪽) 저는(바울) 이 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합니다. 이곳은 궁전보다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고난당하는 자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존경을 받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고난 받기를 더 기뻐하’(146쪽)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이적을 베풀고 능력을 보이는 것보다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만큼 큰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로 이끌림을 받고 있으며, 저주받은 자의 죽음을 받으셔야’(147쪽) 했습니다.
“고난이 있는 곳에, 진실로 거기에 구원도 있고, 진실로 거기에 위안도 있고, 진실로 거기에 큰 성취가 있습니다.”(169쪽)
바울의 쇠사슬은 황제들과 총독들의 금으로 된 사슬보다 아름답습니다. 고난 받는 바울에게 그리스도는 나타나셨고, 말씀하셨고,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하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교회에 합당한 지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먼저 겸손하고, 오래 참고, 사랑하십시오. 또한 성령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 됨은 ‘평안의 매는 줄’ 즉 화평과 사랑의 결박입니다.
“여러분을 여러분의 형제에게 결박하십시오. 사랑으로 함께 묶인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볍게 참아냅니다. 당신 자신을 그에게 묶고 그를 당신에게 묶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모두의 주인입니다. 당신이 그 누구든지 친구로 삼고자 한다면 당신은 친절을 통해서 그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189쪽)
교회는 한 몸입니다. 각 지체들은 한 성령을 받았고, 동일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사역이 다를 뿐입니다. 누구는 눈으로, 누구는 팔로, 누구는 발로 섬깁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한 몸은 각 지체의 아픔을 함께 느낍니다. 기쁨도 함께 즐거워합니다. 한 몸으로서 그리스도가 머리이나 교회는 한 몸이 맞습니다. 또한 한 아버지를 섬깁니다. 교회는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4:5절)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각 지체에게 몸을 섬기도록 은사를 주십니다. 눈의 은사와 손의 은사는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한 몸으로서 참여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새 사람입니다. 이방인처럼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와 같아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고 욕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들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옳음과 그름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자연인은 욕심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뱌울의 외침을 들어 보십시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참된 것을 말합니다. 분을 낼 수 있으나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분을 품는 것은 분노로 하여금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분노가 여러분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도적질 하지 말고 오히려 구제하십시오. 악독을 버리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선으로 악을 갚는 복수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복수입니다. 눈은 눈으로 갚는 것은 구약이며, 감정이 폭발하여 자신이 당한 것 이상을 갚지 못하게 하는 법적 장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상 원한을 품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308쪽) 십니다. 우리는 서로 인자해야 하며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타인을 용서할 때는 그리스도가 우리는 용서하듯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아무런 희생이나 대가 없이 용서하셨다고 말하지 않고, 자기 아들을 희생함으로써 용서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시려고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셨습니다. 그 반면에 당신은 너무도 종종 아무런 희생이나 대가 없이 용서할 수 있는 순간에도 용서하려 들지 않습니다.”(311쪽)
바울은 다시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엡 5:1)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본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며,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성도가 ‘원수를 위하여 고난 당하는 것이 향기로운 향기가 되고,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된다는 것’(313쪽)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 그것이 ‘하나님을 볻 받는 것’(313쪽)입니다.
정리 / 본론에 해당하는 에베소서 4장을 설교한 8-17편을 간략하게 요약했습니다. 고대의 설교가인데도 현대의 저희들과도 전혀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크리소스톰보다 더 후대 교부인 어거스틴의 경우만 해도 지금의 저희로서는 약간 이해하기 힘든 난해함과 억지스러움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크리소스톰은 탁월한 문법적 해석을 통하여 명징하게 풀어냅니다. 그의 강점은 적용에 있습니다. 필자의 생각과 다르게 크리소스톰은 서론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의 지체를 다루고 대부분을 적용에 초점을 맞추어 나갑니다. 교회론에 관련된 깊은 주해가 있을 것 같았지만 언급이 매우 빈약했습니다. 이러한 난해한 신학적 주제는 당시로서는 무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론적에 입각해 풀어내는 삶의 풍성한 해석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목회론적 관점으로 본 에베소서 강해’라고 제목을 붙이고 싶을 만큼 목회적 안목이 좋았습니다.
3. 나가면서
크리소스톰을 약전(略傳)한 리딜은 주석 학자로서 크리소스톰을 주목하라고 권면합니다. 제가 요약정리한 현대의 설교와 비교해도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탁월합니다. 당시 크게 유행했던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과 신비스러움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히브리어에 약했던 크리소스톰은 구약을 인용할 때 모호하게 넘어가지만 그것이 설교에 큰 흐름을 막거나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는 문법적-역사적 해석을 따른 안디옥 학파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문법적이라 함은 문장이 의도하는 해석을 지향합니다. 문장 안에 다른 의미나 숨겨진 뜻을 발견하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레고리 해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문법적 해석보다는 단어에 숨겨진 의미를 억지로 해석함으로 문장의 의도와 상관없는 뜻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이런 점에서 안디옥 학파는 상당히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성경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해석은 저자나 독자들이 가진 역사적 상황 속에서 문맥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 교회에서는 여자들은 잠잠하라는 표현 등은 다른 서신서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를 해석할 때는 크리소스톰은 우상의 도시와 철학의 도시로서 에베소가 가진 특징들을 염두에 두고 해석한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다른 바울의 서신사와 사뭇 다르게 상당히 철학적이며,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강조합니다. 또한 교회론을 통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만유(萬有)의 주재이심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인 진정한 일자가 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로고스이심을 말합니다.
에베소서의 교회론은 유난히 우주론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철학적 배경 속에서 바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크리소스톰의 성경 해석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선물했습니다.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설교 중에 일어나 박수를 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직 몇 권 번역되지 않았지만, 수백 편의 크리소스톰의 설교가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성경 속에서 교훈을 얻고 삶으로 실천하기를 원했던 크리소스톰은 시대를 앞서가는 설교가였습니다. 특별히 그의 설교는 신학적으로 모호한 시대였음에도 현재의 전통 교회의 신앙고백과 거의 일치하는 교리를 견지합니다. 가끔씩 드러나는 그의 교리는 정통 성경해석을 옹호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갖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더 많은 설교들이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바른 성경 해석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기를 소망해 봅니다.
에베소서 묵상
정현욱 저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십자가로 모든 차별을 허물고 주님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를 통해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깊고도 넓은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 천착하고 주해하여 묵상한 묵상했습니다.
'Book > 국민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고전목록] 정현욱목사 추천도서목록, 초대교회부터 현대까지 (0) | 2018.01.18 |
---|---|
세계기독교고전 목록(CH북스) (0) | 2017.12.29 |
[기독교 고전읽기] 20, 크리소스톰의 <부자> (1) | 2017.11.17 |
[기독교고전읽기] 어거스틴 <행복론 De Beata Vita> (0) | 2017.11.08 |
[기독교고전읽기] 암브로시우스 <토빗이야기> (0) | 2017.11.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