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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일반서적

필경사 바틀비

by 하늘땅소망 2012. 12. 19.

필경사 바틀비

허밀 멜빌(모비딕의 저자)

문학동네

공진호 옮김


 


인터넷 서점에 확인해 보니 12월 4일에 주문한 것으로 나와 있다. 책을 택배로 받은 날은 5일이었으니 하루 만에 받은 셈이다. 정말 빠르다. 앞에 몇 장 읽어보고 우선순위에 밀려 구석에 미루어 두었던 것을 오늘에야 꺼내 읽었다. 역자후기까지 106페이지의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다.


신비롭기 그지없는, 그러면서 숨겨진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은 변호사이다. 그에게는 터키, 엔 니퍼스라는 두 명의 직원이 있다. 특이하긴 하지만 주인공은 두 명의 직원을 두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줄곧 평탄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깊은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삶에 바틀비가 필경사로 들어오면서 평범한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바틀비는 묵묵하고 창백하고 기계적으로 필사하는 인물이다.(27쪽) 주인공의 심기가 불편해진 이유는 바틀비가 사장인 주인공의 요구를 묵살하면서이다. 직원인 바틀비가 자신의 요구를 묵살하자 분노하는 동시에 불쌍히 여기는 애증(愛憎)의 역학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의 거절의 표현이다. 이 표현은 책의 전체 흐름을 주도한다. 옮긴이인 공진호는 후기에서 이 표현을 ‘부정의 선택’으로 ‘선택할 권리’를 강조하는 것으로 풀었다. 부정이면서 동시에 긍정이 일어난 것이다. 타자에 대한 거부이자 자신에 대한 긍정의 이중성이 담겨진 말이다.


거부할 수 없는 사장이 거부당함으로 그의 평탄하고 이상적인 삶이 깨진다. 그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시키기에 이른다. 그것은 바틀비를 이상한 존재로 여기며 그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고 자위한다. 그러나 인내와 포용의 한계를 넘어서자 바틀비에게 사식을 권고한다. 이것조차 안 하는 것으로 택한다. 마침내 사장은 바틀비를 자신의 사무실에서 쫓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사무실을 통째로 이사해 버린다. 바틀비는 유령처럼 그 건물이 남아 합리적이고 상식을 따라는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결국 바틀비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음식을 안 먹는 것을 택하고 죽임을 당한다.


바틀비는 화석, 사체, 끄덕도 없는 거대한 바위다. “그의 안정성, 어떤 유흥도 즐기지 않는 점, 부단한 근면(단 칸막이 뒤에 선 채로 공상에 잠기는 편을 택하는 때는 제외하고), 놀라운 침묵, 어떤 경우에는 변함없는 몸가짐 때문에 그는 내가 획득한 귀중한 인물이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그가 항상 그곳에 있다는 것, 아침에 제일 먼저 와 있고, 하루 종일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밤에도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42) 금욕을 최고선으로 여기는 스토아 수도사처럼, 그에게는 단맛도, 쓴맛도, 짠 맛도 없는 무향 무취 무자극의 존재이다. 존재하기는 하지만 부재한 이중적 존재방식이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도 조정할 수도 없는 초월된 이상이다. 즉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인간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점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고 분노한다. 화자인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 본성에 공통된 결점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찌 그런 비뚤어진 옹고집에 직면해서, 또 그런 무분별을 보고 격렬히 항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43)라고 묻는다. 사장은 또 이렇게 말한다. “신사처럼 흐트러짐 없지만, 주검 같은 느낌을 주는 확고하고 침착한 바틀비”(44) 냉엄한 신처럼, 어쩌면 요동 없는 사체처럼 바틀비는 사장의 잠재된 내면에 끊임없이 꽈리를 틀고 불편하게 부닥쳐 온다. 사장은 자신을 바틀비에 의해 ‘거세’되었다고 표현한다. 그의 차가운 온순함 때문에……. 분명 그 온순함은 친절함은 아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주인공은 바틀비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다. 동정심……. 그러나 그 동정심으로 아무런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는 자각은 곧바로 내가 더 이상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차가운 이성적 논리로 미봉(彌縫)한다.





바틀비! 그는 누구일까? 손을 내밀면 곧 닿을 수 있는 그 장소에 언제나 머물면서도, 결코 불러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비워져 있으면서도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타자의 공간이다. 그는 죽음일까? 절대 경험할 수 없으면서, 누구나 두려워하는 그런 존재……. “나는 짜증이 났지만 그 불가사의한 필경사가 나에게 행사하는, 내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그 놀라운 우위에 다시금 복종해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거리로 나섰다.”(66) “주검이나 다름없는 그”(66)


아니다. 바틀비는 예수 또는 우리의 양심이다. 바틀비에게 아무 죄도 없다. 다만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가 자의로 설정한 소유권을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유령처럼 우리의 주변을 떠돈다는 것이다.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도 ‘수치스러운 혐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의 모든 태도가 매우 차분하고 해가 없’었다.(84) 그에 대한 평가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평가와 닮아있다. 그는 미친 사람이고(88) 이집트의 피라미드 속에서 발견된 오래된 하나의 씨앗이다. 무덤이라는 죽음의 장소에서 생명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죽음 속에서 찾은 생명! 뭐 이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적어도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소망'이던지.

 

끝부분에서 바틀비의 이전 직업을 사서(dead letter)로 소개한다. 사서(dead letter)는 수취인의 죽었거나 이사 가 더 이상 반송도 할 수 없고 폐기 될 수밖에 없는 우편물을 말한다. 바틀비는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주검 같은 바틀비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직업이다. 마지막에 멜빌은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라고 외치면 바틀비와 인류를 동일화 시킨다. 그럼 그가 예수가 아니었단 말인가? 하기야 아무 죄 없이 감옥에서 죽어간 것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도 아니고 더더욱 순교는 더욱 아닐 터. 그를 예수로 몰아가는 것도 무리다. 그가 멜빌이 바틀비의 나타남을 예수에게 사용했던 '강림'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분명, 예수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결국 아니었단 말인가. 이 기묘한 책을 읽고 밤새 뒤척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것도 모를 일이다. 그가 죽지 않고 오늘도 나의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하게 동거하는 것 같아 찜찜함을 지울 수가 없다.

뭐 이런 책이 있어!


필경사 바틀비
국내도서>소설
저자 :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 공진호역
출판 : 문학동네 201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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