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성경 읽기
오감으로 성경 읽기
김동문 / 포이에마
기독교는 책의 종교입니다. 그 책(The Book)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책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성경’이라고 부릅니다. 성경(聖經)의 한자를 분석해 보면 ‘성스러운 날실’이란 뜻입니다. 세로의 날실은 홀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가로 방향의 씨실이 함께 엮어져야 천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날실을 받은 성도들이 씨실이란 삶을 살아감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법칙을 알려주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1문은 사람의 목적에 대해 묻습니다.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제2문의 답입니다. 제2문의 답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유일한 법’이라고 말합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법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성경 읽기는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성경을 읽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유일하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예식, 즉 찬양, 헌금, 설교, 섬김 등등 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말씀 읽기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두 통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계시인 자연이 있고, 다른 통로는 직접계시 또는 특별계시인 성경이 있습니다. 자연 계시만으로 하나님을 짐작할 수 있지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성경 읽어도 읽어도 부족합니다. 읽고 또 읽어도 늘 새로운 것이 성경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의 지혜와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신비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안식과 영적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성경을 이해하는 수준과 깊이, 풍성함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성경 읽기에 대한 책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김동문 선교사님의 <오감으로 성경 읽기>입니다. 저자인 김동문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이분은 한국외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하시고, 총신신학대학원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구약신학을 배웠습니다. 그 후 1990년11월 이집트와 요르단 등 아랍 이슬람 지역에서 지내면 선교활동을 하십니다. 이 당시는 중동에서 제3차 대전이 시작된다는 설이 나올 만큼 긴장된 시기였습니다. 그 후로 이라큰 전쟁과 911테러 등 이슬람의 광기어린 서구문명과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기나긴 여정을 아랍지역에서 지내왔습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가슴으로 떠나는 이집트 이스라엘 성지순례> <이슬람의 두 얼굴> <이슬람 신화 깨기 무슬림 바로 알기> <요르단> <기독교와 이슬람 그 만남이 빚어낸 공존과 갈등> 등을 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오감으로 성경 읽기>을 2014년 10월에 출간했습니다.
책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성경 읽기법>을 조금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 읽기의 난해함은 몇 가지에서 두드러집니다. 먼저는 성경 기록연대가 대략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후 100까지입니다. 성경 기록연대만 1600년에 걸쳐있고, 지금 우리와 2천에서 3500년의 기나긴 역사의 간극(間隙)이 존재 합니다. 불과 30년 전의 문화차이에도 이해하기 쉽지 않는데 수천 년이 지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은 영어나 한글이 아니라 구약은 히브리어이고, 신약은 헬라어로 되어 있습니다. 엄밀하게 히브리어는 사어(死語)입니다. 신약의 헬라어도 2천 년 전의 헬라어와 사뭇 다릅니다. 언어적 차이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법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성경을 통(通)으로 읽어야 합니다. 즉 성경이 66권으로 분리된 여러 책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와 관점으로 쓴 여러 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구속사 이야기로 읽어 나가야 합니다. 구속사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읽으려면 통독이 필수입니다. 빠르게 하나의 관점으로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두 번은 통독을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읽으면 좋습니다. 수천 년 전의 이야기를 현대인으로 눈으로만 본다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 생활 습관, 음식 문화 등은 지금과 너무 다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성경이 더욱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김동문 선교사님의 <오감으로 성경 읽기>는 두 번째 방법인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문학적 접근에 가깝습니다. 자,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 읽기에 대한 조언들이 많습니다. 에스겔 3:3을 보면 두루마리를 먹은 에스겔 선지자는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고 표현합니다. 계시록 10:10에는 ‘쓰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경험입니다. 성경은 눈으로만 읽지 않고 온 몸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바람의 느낌, 짐승의 소리, 향긋한 냄새, 아름다운 풍경 등을 보며 읽어야 합니다.
크게 3주제로 나누었습니다. 1부는 ‘오감으로 성경 읽기’를, 2부는 ‘일상으로 성경 읽기’를, 3부에서는 ‘공감하며 성경 읽기’를 다룹니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주제가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삶과 몸이라는 두 수단으로 성경을 읽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중동 지방의 사진들이 풍성하다는 점입니다. 딱딱한 텍스트로만 읽는다면 지겨울 수 있지만 다양한 풍경과 사람들은 보여주는 사진은 읽는 재미를 훨씬 높여 줍니다. 사해의 소금, 시내광야의 양과 목동들, 이집트의 피라미드, 성경에 나오는 형형색색의 과일들, 갈릴리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의 풍경까지 볼거리가 정말 많습니다.
-오감으로 성경 읽기
오감으로 성경 읽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오감은 말 그대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말합니다. 그럼 오감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저자의 말을 들어볼까요?
“성경을 읽으면서 사계절이 느껴집니까? 성경 이야기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까? 갈릴리 호수의 서늘한 바람이 와 닿습니까? 한반 중 광야의 삭막한 적막이 느껴집니까? 예수님의 발 위에 그득하게 부어진 순전한 나드의 진동하는 향기가 전율로 다가옵니까? ...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우리 손으로 만진바(요일 1:1)되었다고 한 것처럼 우리도 오감으로 느껴야 합니다.”(8쪽)
문자로만 읽었던 습관을 버리고 오감으로 성경을 읽어 보는 것입니다. 감정을 보통 ‘심장’으로 느끼는 것으로 알지만 성경은 ‘창자’라고 말합니다. 성경 구절을 찾아볼까요?
사 16:11 이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애 2: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현대의학자들이 밝힌 바에 의하면 온 몸의 면역세포의 80% 가까이가 소화기관, 즉 창자에 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고가 쌓이면 창조는 음식을 거절합니다. 이것은 마음과 창자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동안 간과했던 의학적 사실들이 구약성경에서는 당연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신장으로 생각’(37쪽)하고, ‘시장으로 사랑’(41쪽)하며, ‘코로 분노’(41쪽)하는 표현들도 알려 줍니다. 진리가 온 몸으로 표현되었고, 독자들은 몸으로 체득하며 읽는다면 성경은 더욱 풍성한 진리를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일상으로 성경 읽기
이번엔 일상으로 성경 읽기가 무엇인지 알아볼까요? 일상은 생활 습관, 장소, 종교 의식 등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입니다. 특별히 예루살렘 중심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은 동물을 죽여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가 있습니다. 하루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사의 장소인 성전에 들어가 봅시다. 우리는 성전을 생각하면 거룩과 성결을 기억해 내고 ‘청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전은 실제로 더러운 곳이고 악취가 나는 곳입니다. 짐승을 죽여 생긴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완전히 청소하지 못함으로 버려진 제물의 일부가 썩어 악취를 풍깁니다. 365일을 불을 피워야 하기에 불냄기가 끊임없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돕니다.
“희생제물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동물들의 내장과 분비물들을 포함한 부산물 처리장은 그야말로 엉망이었습니다. 더운 대낮이나 여름철은 그 냄새를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냄새는 죽음과 생명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122쪽)
지금까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예루살렘과는 너무 다른 생소한 모습이 아닌가요? 우리가 상상력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는 이런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겔다마’를 기억하시나요? ‘피의 밭’이란 뜻이죠. 힌놈의 골짜기 근처에 자리한 곳이죠.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매매하는 사람들, 저작거리에서의 다툼과 흥겨운 노랫소리, 각지에서 찾아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다양한 언어들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은 이처럼 다양한 화제와 주제들을 통해 진리를 전달해 줍니다.
-공감하며 성경 읽기
마지막 이야기는 ‘공감하여 성경 읽기’입니다. 제가 보기에 ‘공감’이란 표현은 제목으로 그리 적당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3부 1의 제목처럼 ‘낯설게 읽기’로 정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튼 내용으로 들어 가 봅시다. ‘낯설게 읽기’의 요점은 ‘주의 깊게 읽기’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얼굴을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통해 추리해 봅니다. 우리는 성화(聖化)에 그려진 유럽형 미남인 얼굴을 상상합니다. 성경은 오히려 추남에 가까운 존재로 그립니다. 수년 전에 영국 BBC에서 추측해 그린 상상화에는 상당히 못생긴 얼굴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공감하기 힘든 이유는 성경 인물들은 대체로 영웅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브라함, 다윗, 히스기야 등 등장인물들은 한결 같이 범접하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저자는 내가 직접 ‘아담이나 노아가 되어, 가족 이야기를 하고, 삶의 아름답거나 아팠던 순간들을 돌아보며 깨달은 것 등 다양한 소재로 표현해보는 것’(242쪽)도 추천합니다. 아니면 ‘르우벤의 입장’(243쪽)이 되어 보거나 요셉의 조카들의 입장에서 애굽생활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죠. 그러면 지금까지 읽었던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읽혀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나가며
성경 읽기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잘 듣는 방법은 기록된 말씀을 삶의 맥락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때 가능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문자와 지식 중심의 성경 읽기였다면 이젠 오감으로 성경 읽기를 해보는 것을 어떨까요? ‘오감’을 ‘입체적’으로 읽기로 바뀌어도 무방하리라 여겨집니다. 성경 통독의 한 방법인 돌아가면서 읽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다양한 목소리와 감정을 통해 성경을 음성으로 접하면 색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도 문자를 넘어 오감을 통해 읽게 된다면 살아계신 음성을 성경을 듣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더 자세한 오감 읽기와 성경의 재미난 이야기는 책을 통해 직접 접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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