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히브리서] 36. 13:10-17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

샤마임 2018. 7. 29.
반응형

36. 13:10-17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


1. 말씀 읽기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2. 묵상


1) 우리에게 있는 제단


제단은 구약적 표현입니다. 제단에는 항상 불이 타올랐습니다. 희생의 제사를 드림으로 향기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학자들은 이 제단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늘의 성소로 말하고, 어떤 이들은 성만찬으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구약의 제단이 제물을 불살라 드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제단이 있다는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렇게 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 아래 있던 옛 언약의 제단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먼저 구약의 제단은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에게 먹을 권한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화목제의 경우는 먹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제사들은 먹을 수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제단에 주는 의미는 죽음을 통해 대속입니다.


대속을 위해 죽임을 당한 동물의 피를 성소에 가져가 뿌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정결 의식입니다. 피뿌림을 통해 죄 사함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제물의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살라 버려집니다. 불사름은 죽음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는 소멸의 과정입니다. 제물의 죽음은 죄인들의 소생과 다시 살아남을 의미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며, 피의 값으로 지불되지 않으면 생명은 보존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구약의 제단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연결합니다. 예수의 죽음은 그의 피로 택하신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12)기 위함입니다. 예수는 죽음을 통해 구약의 제물처럼 죄인들을 정결하게 할 것입니다. 죽은 시체는 부정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영문(camp)로 밖으로 버려져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백성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부정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예루살렘 밖으로 버려져 부자의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저주받으심으로 인류를 저주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제단은 구약의 제단과 같지 않습니다. 제물이 다르고, 드려지는 방법도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 번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고난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우리도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우리도 주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주님이 당하신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13)으로 나아가자고 권면합니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문 밖은 버림받은 곳이며, 저주받은 곳이며, 부정한 곳이며 소멸되고 희생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영문 밖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영문 안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입니다. 거룩하고 순결한 곳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영문 밖 또는 성문 밖에서 고난 당하심은 성문 안에 있는 백성들을 거룩하게하기 위해서입니다.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저주의 장소로 찾아가셨습니다. 스스로 버림받으시고, 저주받았습니다. 영문 밖은 안정된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위험이 도사리고, 약탈자가 있으며, 평화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구원은 도성 안이 아니라 밖에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조상들은 영문 밖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버지의 떠나 장막에서 유리하며 살았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영광을 버리고 광야로 나아가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히브리서 독자들이 가야 할 영문 밖은 소외받는 자들과 함께 하고, 갇힌 자들을 돌보고, 흔들리는 자들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함께 장차 올 것’(14)을 찾아 나서는 믿음의 여정을 걷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고난의 삶은 그리스도가 살았던 삶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 독자들은 현재 영문 밖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11장의 인물들은 안주하는 삶이 아닌 본향을 찾는 삶이었습니다. 본향을 찾는 삶은 서로 격려하며, 사랑하며, 희생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


영문 밖의 삶을 영적으로 해석해 줍니다.


. 찬송의 제사를 드리자


찬송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확신하고 먼저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입술로 그렇게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고백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하나님께 드리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 행함의 제사


제사는 죽음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제사는 궁극적으로 죽음으로 통해 다시 죄인들은 의롭게 하는 회복을 전제하고 목적으로 합니다. 먼저 찬송의 제사를 드렸다면 이제 삶과 행위로 드러내야 합니다. 두 번째 제사는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16)입니다. 선을 행함(유이포이아스)과 서로 나누어 주기(코이노니아스)는 초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 됨의 명징한 표시들이었습니다. 특히 선을 행하는 것은 악을 대적하고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삶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 자체가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연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벧전 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 인도하는 자들에게 복종하라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것은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족하라’(17)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며,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섣불리 듣지 말고 대적하여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경성하다’(ἀγρυπνέω)는 단어는 깨어있다는 말이며, 종말에 대해 긴장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룩과 순결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받아야 할 것들을 계산하며 살아갑니다. 이들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들이며, 깨어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인도하는 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들처럼 깨어 종말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나가면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히브리서의 마지막 권면에 해당됩니다. 세 가지의 권면은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다시 경계시키는 효과를 가집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생각과 행위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저주받으심으로 구원의 길을 걸었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 진영 밖에서 성소로, 성소에서 지성소로 더욱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임재가 지성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의 방향은 믿음의 방향과 정반대입니다. 지성소에서 성소로, 성소에서 진영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저주받으시고 버림받으신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깊이 질수록 부정한 세상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믿음과 사회적 행동은 반비례합니다. 거룩은 세상과 구별된 교회 안이나 수도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