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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빈 집 앞에서

샤마임 2018. 10. 28.

[포토에세이] 빈 집 앞에서


아내와 함께 집 근처의 마을을 걸었습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석 달 전부터 도시락 배달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일용직 노동자의 삶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울한 마음, 근심과 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이 걸을 때만큼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걷기는 도를 닦은 것과 같고,

장엄한 피조의 세계와 직면하는 것이며,

섬세한 하나님의 손길을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리베카 솔닛-


저는 솔닛이 말하는 사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걸을 때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아내의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걸었습니다.

한적하고 소박한 시골길은 추억과 희망을 동시에 심어 줍니다.

오래된 길은 추억이고, 그렇기에 앞으로도 계속 길은 존재할 것이기에.


좁은 골목길,

이곳은 왠지 새로운 집과 건물들이 시골답지 않게 즐비합니다.

아마 돈 많은 사람들이 한적한 곳에 집을 지어 사는가 보다 생각합니다.

남루한 삶의 짐을 지고 가는 저희들에게 지나치게 화려한 풍경은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떠날까?'

잠시... 

"저기 돌담이다!"

아내는 돌담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자고 이끕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빈 집이 보입니다. 

빈 집, 허물어져가는 옛집.

마당에 한참 머물러 보았습니다.

마당이 있는 집

방은 두 칸, 부엌은 하나, 사랑채가 딸린 집입니다.

집의 구조를 보니 육이오 전쟁 이후 지어진 집이 분명합니다.

저곳에 분명 사람이 살았을 겁니다. 아들 딸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누나 등등 

그러나 이제는 모두 이곳을 떠나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이 집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옮겨간 사람들로 인해 텅 빈 공간이 되었습니다. 

아늑했을 이곳, 

아궁이에 불을 때면 겨울밤은 따스하게 보낼 수 있었던 시간, 

불을 지핀 아궁이에 재속에 넣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노릇하게 익어가는 군고구마. 

달콤한 군고구마 냄새를 맡으며 겨울밤을 지냈을 것입니다.


그날 유난히 바람이 많았습니다.

아내가 춥다며 재치기를 합니다. 이곳을 떠나야 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

이 집을 발견했죠.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바람은 멈추고, 따스한 기운이 돕니다.

집 뒤로는 햇볕을 잔뜩 안은 대나무가 보입니다. 

아! 이런 곳이 있네요.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따스한 집입니다.

아늑하고,

사랑스럽고, 

정다운 곳입니다.


아내는 동네가 좋다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저는 싫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가고 싶은 곳입니다.

그곳은 마음을 치료해줄 추억이 어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10월 17일 양산 중리마을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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