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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데살로니가후서 개요

샤마임 202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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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데살로니가후서 개요

 

데살로니가전서가 바울의 개인적인 변증을 위한 목적이 강하다면 데살로니가후서는 바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잠깐 언급할 뿐입니다. 후서는 전서에서 잠깐 언급했던 종말, 즉 주의 재림에 대한 설명을 체계적이고 깊게 설명하는데 시간을 쏟습니다. 또한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 일상을 저버린 성도들을 권면하고 바로 잡도록 지도하려는 목적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또 다른 주제는 환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1. 환난과 하나님의 공의

ㄱ. 그리스도 됨의 표지로서의 고난

1장에서는 환난에 대해 다룹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환난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표지로서 다룹니다. 5절에서 바울은 환난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받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합니다. 바울은 전서에서 예루살렘교회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듯 데살로니가교회도 동족들에게 ‘동일한 고난’(살전 2:14)을 바독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고난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여러 곳에서 고난이 그리스도인 됨의 표지로 설명합니다.

고후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고난의 원형은 그리스도이며, 고난을 받고 버림을 받음으로 구원을 성취하십니다.

눅 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은 의로운 자의 고난을 통해 세상이 악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의 고난 받음 세상의 악함을 폭로하는 것이며, 심판하는 행위입니다. 베드로는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편지하며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 앎이라’(벧전 5:9)고 권면합니다.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고전 4:16)려야 할 이유입니다.

ㄴ. 공의의 하나님

그리스도들이 받은 환난은 단지 그리스도인들의 것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1:6)신다고 설명합니다. 대신 환난을 받은 성도들은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1:7)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갚으심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것임을 설명합니다.(1:7-10)

2. 주의 재림에 대한 권고

데살로니가후서의 두 번째 주제는 주의 날, 즉 주의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에 의해 긴박한 종말론이 팽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2에 의하면 영과 말과 편지를 통해 잘못된 재림론을 주장한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주장에 쉽게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왜하면 재림은 아무렇게나 오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배교하는 일이 있고’, 그 다음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설명은 마카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박해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주의 재림(나타나심)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불필요하게 그들의 ‘미혹’에 흔들리지 말아야합니다.

3. 게으름에 대한 경고

마지막은 잘못된 종말론에 빠져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대한 경고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은 ‘게으르게 행하고’(3:6), ‘무질서하게 행하’(3:7), ‘음식을 값없이 먹’(3:8)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11에서는 보다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들은 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게으름은 그릇된 종말론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일 뿐이고, 그들은 태생적으로 게으르고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기는 받았지만 삶을 본받지 않으려 한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여러 교회에서 수고하여 일함으로 교회에 짐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전통’(3:6)은 바울이 직접 본을 보인 삶의 모범입니다.(3:9)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일해야 하고, ‘자기 양식을’(3:12)을 먹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노력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마무리

데살로니가후서는 짧지만 강력한 재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으며, 게으름을 심각한 죄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에 대한 기대는 마땅히 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성실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환난 가운데 인내해야하고, 거짓된 종말론에 빠져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이웃의 짐을 지는 사람들입니다.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자신을 타인에게 짐지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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