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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추억, 김광석 거리를 거닐며

샤마임 2019. 5. 14.

 

오래전 이야기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 오십대로 접어들기 전, 아내와 난 김광석 거리를 걸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아내는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김광석 거리를 거닐자고 제안했다.  불편한 마음, 하지만 묵묵히 따라나섰다. 오십이 다 되도록 무엇하나 이룬 것 없고, 무엇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 아내는 내 손을 잡아 이끌며 '힘내요 여보' 말한다.

아직 밤이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가 가까이 온 탓이리라. 태양은 여름이 주는 잉여의 시간을 서슴없이 지상에 뿌린다.

삼삼오오. 사람들은 그렇게 적지도 많지고 않게 거리를 거닌다.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그리고 가족들, 낯선 타지의 언어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타지의 거리는 어떨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일까? 고른 연령층과 무리 지어 다니는 풍경은 패키지여행인 듯 하지만, 그리 분주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일말의 눈부심을 흩뿌리는 태양빛 아래로 걸었다. 

 

허기를 달래려 김광석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곱창을 먹었다. 밖에 나오니 태양은 벌써 힘을 거의 잃어가고 급속하게 석양이 내려앉았다. 불과 30여분, 그 사이 김광석 거리는 그 전보다 밀도를 높이며 사람들을 채운다.

연인들... 연인들... 연인들...

이십 대 후반의 연인 들도 있고, 사십 대 후반의 연인들도 흔하다. 저기서 두 손 잡고 걸어오는 부부는 환갑을 넘긴 듯하다. 시간을 공유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추억을 공유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공유하리라. 연인이니까. 

거리를 거닐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멈추어 섰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김목경



곱고 희던 두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감에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김광석의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김광석과 친했던 김목경의 노래다. 김목경이 유학시절 그곳에서 보았던 노부부를 보고 지은 노래라고 한다. 김광석이 '다시 부르기'라는 앨범을 내면서 김목경에 찾아와 곡을 달라고 했다. 흔쾌히 허락하고 나서 돈은? 김목경은 김광석에 빌린 돈이 생각나 그걸로 퉁치자고 한다. 그렇게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김광석의 것?처럼 흘러 들어갔다.

 

 

 

그 앞을 서성였다. 대중가요는 잘 듣는 편은 아지만 가사 하나하나가 애절하여 쉬이 떠나질 못했다. 지금은 70대도 젊다하지만 당시만 해도 환갑은 인간의 마지막을 대비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생의 마지막을 살아가는 생의 끄트머리의 이야기인 셈이다. 

 

곱고 흰 두 손으로 넥타이 매어주던 아내의 손

막내 대학 시험을 앞두고 뜨눈으로 지샌 밤

큰 딸 결혼 때 흘렸던 눈물의 온도를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여기까지 왔다.

방금 막 숨을 거둔 아내의 손을 잡은 노인

그 손을 붙잡고 안타까워한다.

다시 못 올 그 길 어찌 가느냐고?

왜 날 홀로 여기 두고 가냐고? 

노인은 그렇게 아내를 그리워한다.

 

아내가 아프다. 자칭 에너자이저였던 아내는 요즘 방전된 배터리처럼 힘이 없이 주저 않기 일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여기저기 아프다면 한 숨이다. 자신의 마음 몰라 준다며 삐지기 일수다. 

아내의 입에서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멎듯 숨이 턱턱 막힌다. 내색하지 않으려 영혼 없이 대답한다.

"응 그래" "응 알았어"

그렇게. 그렇게 무성의하게 답하고 급하게 화제를 돌린다.

"그래 오늘은 별일 없었어?"

 

아내는 환갑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은 시로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싶다고 한다. 아프고 힘들게 살아왔던 아내는 쉬고 싶다고 말한다. 푹~ 쉬고 싶다고.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아내의 영순위 시로. 난? 뒤에서 영순위다.

 

소박한 꿈 하나.

홀로 남겨지지 않고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것.

오늘도 아웅다웅 티격태격이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박한 작은 꿈 하나.

남루한 삶의 자투리 아내와 행복하게 살다 함께 마지막 인사 없이 한 날 한 시 함께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는 것.

 

부디 건강하게 살아남아 주길.

마지막 70이 다 되어 함께 이 노래 부르며 이십 년 전 거닐었던 김광석 거리를 추억해 보았으면... 그리고 다시 걸을 수 있다면 좋으리.

 

원목에 사진을 인화하는 곳을 지난다.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도 저거 하나 할래요?"

"해도 돼?"

"물론!"

 

그렇게 우린, 김광석 거리를 거닐었고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아프지마! 함께 남겨진 시간의 길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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