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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묵상] 2. 1:22-2:5 왜 벌써 포기하려느냐?

샤마임 2018. 2. 23.

2. 1:22-2:5 왜 벌써 포기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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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벧엘을 치다

1:22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1:23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1:24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1:25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1:26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

1: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1: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1: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1:30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1:31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1:32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1:33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1: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1:35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1:36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 나타나다

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2: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2:5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요셉 가문’(22)이란 표현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옵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는 서로 한 몸처럼 움직인 듯합니다. 성경에서는 지파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곧바로 ‘요셉 가문’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한 지파처럼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가 단독적으로 사용되어 북쪽 지파들의 대표가 에브라임 지파임을 강조합니다. 요셉 지파는 벧엘을 치러 올라갑니다. 벧엘의 본 이름은 루스이며, 루스는 아몬드 나무라란 뜻입니다. 야곱은 77세에 하란으로 도망가면서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부릅니다. 후대에 벧엘과 단에 우상이 세워지고 종교적 중심지가 됩니다. 사사기가 기록된 연대가 왕정시대임을 안다면 벧엘이란 단어가 얼마나 부정적으로 다가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집이란 별칭이 붙었던 곳에 우상이 들어섰는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사기의 기록 연대를 사울이나 다윗 시대로 잡아 아직 황금 송아지가 들어서지 않을 때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벧엘이란 지역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요셉 가문이 벧엘을 치러 올라갈 때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고 말합니다.(22절)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서술입니다. 먼저 벧엘을 정탐하러 갑니다. 벧엘의 옛 이름을 루스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그다지 좋은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24절에서 우리는 이상한 대화를 듣게 됩니다. 정탐꾼이 벧엘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입구를 가르쳐 주면 그를 선대하겠다고 말합니다. 요셉 가문은 그 사람이 가리키는 입구를 통해 벧엘로 들어가 벧엘을 정복한 다음 그 사람을 선대하여 보내 줍니다. 어떤 학자들은 요셉 가문이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되어가는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셉 가문이 무엇을 실수했는지 주의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본 이야기는 모세의 열두 정탐과 여호수아의 정탐을 기억나게 합니다. 모세는 실패했고, 여호수아는 성공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의 이야기처럼 옳았던 것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라합이 정탐꾼을 도왔던 것은 자신이 이스라엘에 속하기 위해서이며, 멸망당할 가나안의 운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입구를 가리킨 사람이 요셉 가문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자신만의 성읍을 세우고 그곳 이름을 다시 ‘루스’라고 붙입니다. 즉 루스는 정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요셉 가문은 그 사람과 거래한 것이며, 정복에 실패한 것입니다.


사사기 강해가 출간되었습니다.


사사기 강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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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욱

책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책벌레이며, 일상 속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를 글로 표현하기 좋아하는 글쟁이다. 매일 성경 읽기와 묵상을 즐겨 한다. 필진으로 동참했으며, 그리스천북뉴스 편집자로 있으면서, 기독교 전문 서평가로 활동 중이다. 국민일보(마이트웰브)와 크리스천투데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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