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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 1:12-18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

샤마임 2018. 9. 3.

[빌립보서] 2. 1:12-18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

 

1. 말씀 읽기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2. 묵상


본문은 빌립보 교회에서 일어나는 바울에 대한 생각들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시기하여 복음을 전하고, 어떤 이들은 선한 마음으로 복음전도에 동참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생각이 어떠하든 오직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알렉 모티어는 12-26절까지를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변화를 통해 설명해 나갑니다. 비록 과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악의든 선의든 복음 전도에 힘쓰고 있으며, 결국 이러한 일이 미래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것을 기대합니다. 복음 전도는 그리스도를 확장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만을 보도록 촉구하는 영적 행위인 것입니다. 이제 12-18절까지의 말씀에 담긴 의미들을 살펴봅시다.


1)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고


참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바울이 복음 전파에 힘을 쓰자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복음이 널리 전파하도록 했고, 그로인해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꼼짝없이 옥에 수인(囚人)으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바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한 일’(12)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옥에 갇혀있는데 어떻게 복음이 갇히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이 전파될까요?


바울은 여기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울이 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13)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자 사람이 바울의 갇힘에 해 대해 적지 않게 놀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왜 복음전도를 하는 바울에게 고통을 주는가?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평범하지만 비관적인 생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전도를 하다 바울이 옥에 갇혔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가?입니다. 다행히 사람들은 두 번째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옥에 갇혔다는 바울의 소식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 자성과 열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스스로 열심을 내어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도리어이 단어는 바울의 생각을 읽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도리어에는 바울의 생각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리어전과 후로 나누어 봅시다. 바울은 분명 자신이 옥에 갇힌 것에 대해 답답해하고 하나님께 이유를 물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당한 고난이나 실패에 대해 내가 이렇게 되면 하나님만 손해일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스갯소리지만 그곳에는 자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통해서만 일해야 한다는 생각, 또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잘하고 있다는 교만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생각들입니다. 하나님은 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자리를 물러나 다른 사람이 맡게 되었는데 자신이 하던 때보다 훨씬 일이 잘 되는 것을 발견하고 실망합니다. 입술로는 잘하게 하소서기도하지만, 마음으로는 나보다 훨씬 못하게 하소서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의 현장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바울이 갇혔다는 소식에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2) 복음전도의 다양한 모습들


복음은 거룩하고 숭고한 것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소식으로 인해 사람들이 복음을 힘써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순전한 마음으로 열심히만 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전하고,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합니다.(15)

 

우리는 이곳에서 아이러니한 장면을 발견합니다. 대체로 초대교회는 부흥과 화합, 사랑과 헌신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투기와 분쟁을 언급합니다. 이곳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경우는 생각할 수도 없는 다양한 악과 범죄를 접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의 비결을 묻는다면 그것은 한 가지로 답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도 지금처럼 여전히 어려웠고,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었고, 여전히 투기와 분쟁이 교회와 동역자들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러한 들을 사용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십니다.


투기와 분쟁’(φθόνον καὶ ἔριν)은 서로 시기하고 파당을 짓는 것입니다. 투기(‘투기(φθόνον)라는 단어가 동일하게 마 27:18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는 질투와 시기심을 말합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것은 자신들의 인기를 예수가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27: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그러나 약 4:5에 나타난 시기는 동일한 단어임에도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시기함으로 성도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시기는 구약의 질투하시는 하나님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우상에게 주지 않으며, 오직 자신만이 모든 성도의 찬양과 영광을 받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4: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이러한 단어의 용례 속에서 투기라는 단어가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마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을 시기하여 자신이 열심 있는 하나님의 복음전도자로 인정받고 싶은 그릇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열심은 자신들만의 파당을 형성하고, 파당은 공동체를 분열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열심을 통해 바울에게 시기심을 발동하여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17) 생각했습니다.


초대교회도 현대의 교회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들도 사람이었고, 연약하고, 허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시며 확장시키십니다. 제랄드 호돈은 다툼’(ἔρις) BDB 사전을 참고하여 원래의 뜻이 노동자였고, 후에 정치적으로 고용된 선거 운동가였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다툼은 의도적이며, 조직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심적으로 괴롭히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고, 바울에게 돌아갈 영광을 자신들이 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3)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이러한 선동에 대해 조금도 마음 상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18)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했다면 분노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낙심하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생각과 삶의 우선순위를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두었습니다. 과연 바울은 진정한 복음전도자입니다. 그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복음을 전하는데 힘썼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생각은 주의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합니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은 은퇴 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동안 교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은퇴 후 거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심과 사랑이 체화되어 그것이 사라질 때 존재의 의미까지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직분을 내려놓은 교인들에게도 이러한 모습은 흔하게 일어납니다.

진정한 기쁨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질 때 가능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헛됨과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관심과 사랑이 거짓된 것이나 악한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바른 것이 아니며 채워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로 만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나가면서


바울은 절망적 상황입니다. 그는 옥에 갇혔고, 복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비록 옥 안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적지 않은 열매들이 맺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로운 몸으로 전하는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사정을 알게 된 빌립보 교회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쪽은 시기와 다툼의 기회로 사용했고, 다른 한쪽은 갇힌 바울을 대신하여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복음전도에 열심을 내었고, 바울이 갇힘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전도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울에게 타인들의 열심은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을 사라지고 예수님만 높이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을 시기하지 않았고, 스스로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높여지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빌립보서 묵상이 출간되었습니다. 분량상 2권으로 분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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