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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에게 기도를 배우다, <프로테스탄트의 기도> 최주훈 엮고 옮김, 비아

샤마임 2020.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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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피플몰] 프로테스탄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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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의 기도
마르틴 루터 / 최주훈 엮고 옮김


기도의 명장에게 배우는 기도하는 법


“매일 아침 두 시간씩 기도했고, 할 일이 너무 많은 날은 평소보다 한 시간 더 많은 세 시간씩 기도했다.” 

마르틴 루터의 기도를 평가한 E. M. 바운즈의 표현입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루터가 기도를 어떻게 생각했느냐에 대한 명확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최고의 칭찬과 최악의 비평을 한 몸은 받은 루터이지만 그 누구도 부인 못 할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영적 어둠의 시기 속에서 교회를 지켜내고 부흥의 시대를 가져오게 한 사람들의 특징은 한결같이 기도에 헌신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찰스 스펄젼이 그랬고, 웨슬리가 그랬습니다. 1907년 평양대 부흥 운동 역시 부흥이 일어나기 전 기도에 헌신 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락한 중세교회에 생기의 바람을 집어넣었던 마르틴 루터 역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루터는 평생에 기도에 관하여 많은 설교를 했고,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기도에 관하여는 언행일치의 삶으로 일관했습니다. 이 책이 루터가 기도의 사람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기도>라는 제목은 역사적 맥락으로 살펴볼 때 의미가 있습니다. 저항자라는 뜻을 가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용어는 루터가 1529년 슈파이어 제국회에서 가톨릭에 저항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기도’에 접목하는 것은 뭔가 어색해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루터의 의지와 신앙을 왜곡하는 그 어떤 것과도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기도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역자인 최주훈은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종교개혁을 특징짓는 내용 없는 형식주의 및 제도를 향한 강력한 비판과 새김, 그리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우상화에 대한 철저한 ‘저항’은 이유 없는 저항이 아니라 복음을 통ㅇ해 힘을 얻고, 삶이 뒤바뀌고, 자유롭게 된 이들의 필연적인 실천이다. 그리고 이 힘을 길러내는 통로가 바로 ‘기도’다.”(12쪽)

엮고 번역한 최주훈은 루터교회 목사로 루터를 내부자 시선으로 가장 정확하고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많은 루터의 기도에 과한 글과 기도문을 선별하고 또 선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습니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1부는 ‘기도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루터의 기도에 관한 편지와 강해로 채워져 있습니다. 2부에서 4부까지는 루터가 사용했던 기도문을 실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일까요? 유난히 나의 눈에서 아른거린 기도는 ‘흑사병’에 관한 루터의 기도입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교회도 흑사병으로 인해 문을 닫아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이곳에 실어봅니다.


오, 주님!
당신께서는 가난하고 불쌍한 피조물들을 아십니다. 
우리는 심히 연약하여 당신의 거룩한 말씀 앞에서
감사할 줄 모르고,
당신의 뜻을 제 맘대로 구부려가며 삽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지금 우리는 범죄로 인해
지독한 역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만을 징계하시되,
당신의 자비 가운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여 주소서.
탄원을 들어주시는 주님,
당신께 간절히 구하오니,
우리가 당신의 말씀과 뜻을 경청하게 가하시고
이 병을 거두어주소서.
그리하여 당신이야 말로 우리의 가장 자비로운
하늘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우리의 대언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첫 장은 ‘좋은 친구 이발사 페터에게 보내는 편지’는 편지 형식으로 기도에 관해 설명합니다. 아마도 ‘기도가 무엇이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주어진 글로 보입니다. 루터는 주기도와 십계명, 사도신경으로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지금가지 기도에 관한 그 어떤 책도 이런 식으로 기도를 소개한 적은 없었습니다.

루터의 기도에 관한 모든 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약간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루터는 15세기 이전 사람이고, 중세의 수도사에서 개혁가로 넘어가는 과정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또한 필자는 21세기를 한국의 장로교단이기에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이질감일 수 있습니다.

루터는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성경학자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기도는 마음에서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말씀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말씀에 대한 헌신이자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사람은 성경학자이어야 합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라는 말이 압니다.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신학자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를 ‘기도, 묵상, 시련’(114쪽)으로 정의합니다. 가장 앞선 것은 단연코 기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태도는 골방에서 무릎을 꿇는 겸손과 진지함을 가지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보낸 성령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깨달음의 길을 비추어 인도해주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114쪽)

허투루 버릴 것이 없는 기도에 관한 책입니다. 어떤 기도는 지나치게 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일상이기도 합니다. 루터는 자신의 딸이 위독해지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이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시지요?
하지만 제 딸을 데려가는 것이
당신 뜻이라면 기뻐하겠습니다.
이 아이가 당신과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루터는 1542년 9월 20일 자신의 팔에 안겨 주님께로 떠나는 딸을 바라보았습니다. 기도는 범인들의 삶의 여정과 함께합니다. 희로애락이 하나님께 드릴 기도의 제목들입니다. 어둠의 힘을 떨쳐내고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의 힘은 그의 지성도 아니고, 건강한 육신도 아닙니다. 오직 그가 ‘기도자’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한 번에 읽을 책이 아닙니다. 읽고 또 읽어 깊이 새겨야할 기도에 관한 명저입니다.

[이 글은 비아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것으로 필자의 관점으로 가감없이 서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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