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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샤마임 201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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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구입한 책

제목 / 저자 / 출판사
서양철학사 상하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 이문 출판사
근원적 학명 / 존 요더 / 대장간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 마크 A. 놀 / IVP
 피고석의 하나님 / C. S. Lewis / 홍성사


  책 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고대인은 피고인이 재판장에게 가듯이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현대인의 경우엔 그 역할이 뒤바뀌었습니다. 인간이 재판장이고 하나님은 피고석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루이스의 할일은 무엇인가? 그는 피고석에서 하나님을 변호하는 일이라고 표지는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피고인으로 재판에 선 적도 없을 뿐더러 사람들의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피고석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교만이 만들어낸 허상 때문이다. 인간들은 스스로 교만하여 져서 하나님을 피고석으로 호출했고 자신들이 예전 하나님께서 앉으셧던 재판석에 앉아 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하는 빌라도처럼 말이다. 루이스는 교만과 어리석음에 빠진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을 변호하는 변호자를 자처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재판을 폭로한다. 

역자는 루이스의 전 책인 [기적]과 닮은 꼴임을 발견한다. 그러나 중첩된 이야기는 그대로 베낀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다시 풀어내었다. '글 그대로 실린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 하다못해 단어 하나, 표현 하나라도 바꾸고 다듬어 더 낫게, 책의 전체 구조에 더 잘 들어맞게 만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주제는 명확하다. 인간들은 아담이 그랬던것 처럼 스스로 신이 되어 하나님을 재판하는 재판관으로 자처한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에대해 하나님께 이유를 묻고 책임을 지운다. 교만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피의자였고, 죄인이었다. 자비를 구해야할 대상인 하나님을 재판하려는 어리석음 지적하는 루이스의 새로운 지적 변증을 기대해도 좋다.

"처음부터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제하는 철학을 견지하고 있다면 어떤 경험을 하더라도 그 일을 기적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라도 우리는 자신이 본 것을 환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14)

"진짜 문제는 우주의 광대한 크기와 지구의 공간적 사소함이 이미 여러 세기 동안 일어났고 그 두 사실이 종교적 질문과 관계가 있으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네. 그러다 갑자기 지금부터 100년도 채 안된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사람들(무신론자)이 그것을 기독교에 반대하는 논증으로 흔들어 대고 있단 말일세 그들은 그것이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음에도 주도면밀하게 숨기고 있네."(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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