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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0. 9:11-14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

샤마임 201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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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9:11-14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

1. 말씀 읽기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2. 묵상


15절부터 마지막 28까지 길고 중요한 문제가 언급되어 있어서 오늘은 간략하게 11-14절까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앞선 구절에서 양심을 깨끗하게 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여 그리스도는 양심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여 양심을 깨끗하게 할까요?


1) 창조에 속하지 않는 온전한 장막


이 땅의 장막은 하늘의 장막을 본떠 만든 것임을 앞서 배웠습니다. 이 땅의 장막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고, 그 명령은 하늘의 있는 성막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막을 만들 때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실 때 기구를 만드는 장인들인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하나님의 영'과 지혜를 부어 주십니다.(31) 영은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을 아시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원하시는 대로 성막의 기구들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재능과 기능만을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손으로 짓는 성막도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성막은 어떨까요? ‘더 크고 온전한 장막’(11)이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을 넘어 하나님 자신이 성막이 되십니다. 제물도 이 땅의 제물이 아닌 오직 자기의 피’(12)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속죄는 한 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고, 완전하기 때문에 다른 피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 손으로 지어진

구약에서 손으로 지어졌다는 표현은 우상을 만들 때 사용됩니다. 비록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통해 성막이 지어졌지만 여전히 불완전하고 흠이 있는 사람의 작품입니다. 하늘의 장막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 창조에 속하지 않은

두 번째 특징은 창조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천사들도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성막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원하며, 완전하며,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 더 크고 온전함

땅의 성막은 매우 작습니다. ‘크다는 공간적인 의미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 신적인 권위들을 내포합니다. 하늘의 성막은 땅의 성막처럼 제한되거나 차례를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2)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함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구약이 짐승의 피로 정결케 했다면 신약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창조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새사람으로 창조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따르는 자들을 새 사람이며, 그는 새로운 양심을 가진 자입니다. 이것이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와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는 것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 살기 위해 부정하여 짐

땅의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는 역설로 채워져 있습니다. 먼저 13절을 보면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한다고 말합니다. ‘를 뿌림은 하나의 정결의식입니다. 거룩하기 위해 피를 바르거나 뿌렸습니다. 피는 생명을 말합니다. 거룩하게 된 이유는 대신 죽어 죄가 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살리기 위해서는 피, 즉 부정한 죽은 시체의 일부를 만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은 자신이 정결하게 되기 위해서도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3-14절에서 강조하는 제물의 특징입니다.

-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은 거룩하고 영원합니다. 줄곧 속죄에 관련하여 영원을 사용했습니다. 이제 성령에 대해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결국 속죄 자체가 어떤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죄인들의 마음에 대한 것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성령이 성도들에게 내주하심으로 전적인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 흠 없는 자기(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죄가 없다는 것은 히브리서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제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그는 흠 있는 제물이 되어 다른 사람을 위한 제물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 다른 제물을 드려야합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고 완전하기 때문에 모든 이들의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3) 하나님을 섬기게 함

 

성막의 사역은 성막 안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막의 제사가 필요한 이유는 죄를 사하고 다시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않다면 굳이 대속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제물을 죽여 드린 죽은 제사의 목적은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개혁은 제사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며, 다시 제사할 필요가 없게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영적 예배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어떻게 영적 예배가 가능한지 14절에서 밝힙니다.

- 죽은 양심을 깨끗하게 함

 

죽은 양심은 죽은 행실을 말합니다. 사용된 헬라어는 ‘ἔργων인데 ‘ἔργον의 소유격으로 ’ ‘행동’ ‘결과’ ‘효과등을 뜻합니다. 마음의 변화는 곧 행위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헬라어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가 행동을 수반한 삶의 개혁과 돌이킴을 뜻한 것처럼, 죽은 행실에서 돌이키는 것도 동일합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함

 

죽은 행실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합니다. 죽은 행실(νεκρν ργων)은 몇 가지의 의미를 갖습니다. 먼저는 범죄 행위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직접적으로 불순종하는 행위이며, 악을 말합니다. 쾨스터는 부정하지만 유대인들의 제의법 자체도 포함합니다. 만약 아직 예수님의 사역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죽은은 정도는 아니면 흠 있는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모든 것이 명백해진 상태이므로 유대인의 제의에 남아 있다는 것은 죽은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현재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그럴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상 숭배를 뜻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서가 아닌 구약 성경 전반에 흐르는 것입니다. 이러한의 의미들을 종합해보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더욱 중요한 변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가 하나님의 섬기는 행위이듯 신약의 예배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긴다는 말을 구약에 경작하다의 뜻을 가진 아베드에서 온 것입니다. 동사는 섬기다의 뜻이지만 명사가 되면 ’ ‘노예’ ‘하인등의 뜻이 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을 하는 행위입니다.

 

교리에 지나치게 경도된 아더 핑크는 죄책의 문제를 강조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마땅히 행할 모든 의무들이 함축되어 있다고 언급합니다. 쾨스터는 좀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일은, 환대하고 옥에 갇힌 이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돌봄으로써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일을 포함한다.”(6:10, 12:38-13:9)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결국 공동체를 세우고 고통받는 이들과 아픔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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