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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기고글]/크리스찬북뉴스

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 애덤 윈, 오현미 옮김, 북오븐

by 샤마임 2021.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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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

애덤 윈 / 오현미 옮김 / 북오븐

 

 

[갓피플몰] 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

메시아 예수 죽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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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예수를 죽였는가?


예수는 왜 죽었을까? 보수적 성향의 신앙 가진 이들은 단박에 ‘인류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라고 답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린 이러한 ‘정의’가 후대에 만들어진 해석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신학적 해석을 제하고 나면 예수님의 죽음은 철저히 정치적이다. 유대인들은 아무런 죄가 없던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에게 ‘반란’이란 죄명을 씌워야 했고 빌라도는 자신의 잘못된 감추기 위해 또는 조롱하기 위해 ‘유대인의 왕’이라고 죄패를 달았다. 하지만 정치적이라는 말은 상당히 모호하고 어색하다. 복음서의 기록만으로 예수의 죽음을 정치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성경만으로는 왜 예수가 로마에 대항하는 반란의 주모자로 죽어야 했는가를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다. 저자인 애덤 윈(Adam Winn)은 이 부분을 소설이라는 픽션을 통해 잘 설명한다. 원제는 ‘killing a messiah’인데 번역의 과정에서 제목을 <환영과 처형 사이에서 선 메시아>로 부연설명을 추가했다. 필자가 보기에 원제보다는 번역된 제목이 책의 내용과 저자의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냈다고 본다. 예수의 죽음은 ‘환영(歡迎)’과 ‘처형(處刑)’ 사이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책의 내용과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체 읽는다면 환영(歡迎)이 환영(幻影)으로 읽힌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오해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사라진다.

 

 

 


기독교 출판사로서 처녀항해를 시작하는 북오븐이 내 놓은 첫 책이 애덤 윈의 <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먼저는 기독교 소설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는 긴장감을 연출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책은 충분히 도전적이고 매력적이다. 소설은 조직신학적 교리가 풀어내지 못한 삶의 경륜과 신학의 깊이를 담아내기에 좋은 그릇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삶의 맥락을 제외 시키려한다. 보수적 개신교인들은 더욱 그렇다. 필자도 그러한 실수를 많이 한다. 이야기로 된 성경을 교리로 읽으려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성경 읽기 방식을 너머 서사적 성경 읽기로 인도한다.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예수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적 현실이 복음서의 설명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는 점을 보여’(333쪽)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신학적 논쟁과 더불어 당시 삶의 맥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소설처럼 더 좋은 수단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북오븐의 첫 책이자 『북오븐 히스토리컬 픽션』 시리즈의 첫 책이기도 하다. 앞으로 ‘히스토리컬 픽션’과 관련된 책으로 더 출간하려는 출판사의 명백한 의도가 보인다. 실제로 앞으로 제임스 L. 파판드레아의 <로마에서 보낸 일주일>이 출간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인 애덤 윈은 메리 하딘 베일러 대학의 기독교학 조교수이자 풀러 신학교에서 신약성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학 배경사에 깊은 조예가 있는 저자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한껏 살려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간을 소설화 시킨 것이다 바로 이 책이다. 필자가 잘못 읽지 않았다면 저자는 ‘밀정’과 ‘대제사장들의 정치적 목적’이라는 두 축을 가지고 스토리를 진행한다. 밀정들은 자신의 부를 위해 형제를 팔아먹는 배신자들이며, 대제사장들 역시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로마를 이용하는 자들이다. 애덤 윈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겼다는 기존의 해석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이 펼쳐졌음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그들의 분명한 목적이 있는 데 그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된 ‘안정’이다. 이를 위해 혁명적 성향을 유대인들을 제압하고 통제하기 위해 ‘밀정’을 이용한다.


초반에 밀정이었던 나사로가 혁명적 민족주의자들에게 잔인하게 살인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중심에 후에 밀정으로 활동하게 되는 갈렙의 사촌 동생인 유다가 중심에 있다. 갈렙은 도기 상점 주인으로 폐업 위기에서 밀정으로 활동한다. 조국을 지키려는 유다와 갈렙은 혁명과 안정이란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중적 양가감정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소설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주변의 사람을 추가하여 예수님의 죽음을 밝혀 나간다.


이 책은 몇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는 예수의 죽음과 그의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주변부에 넣지도 못할 만큼 지극히 타자적 관점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것을 ‘예수 중심’으로 읽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서적 공백이 느껴진다. 둘째는 첫 번째 특징으로 인해 성경에서 세밀하게 그려내지 못한 당대의 유대인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초반부에 유다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과 동맹자들은 로마의 억압과 착취로 인해 불가피하게 혁명가로 나설 수밖에 없는 삶의 맥락을 들려준다. 이 부분은 매우 주의 깊게 읽어 나갈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 부분이 이 책의 최고의 일미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한 가지는 마지막으로 치달을수록 예수의 죽음을 위해 가야바와 빌라도의 비밀협약이 사건의 중심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물론 가야바와 빌라도의 비밀협약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두 사람의 입장에서 예수를 바라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두 사람의 은밀한 거래는 성서배경사에 조예가 없으면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대화들이다. 안정을 추구하는 대제사장의 입장과 또 다른 안정을 추구하는 빌라도의 비열한 교만이 대치된다. 두 사람이 실제로 거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성경은 침묵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농후하다.

복음서를 다시 읽어야겠다. 책을 읽고 나니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유다와 갈렙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감은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재미와 상상, 그리고 탄탄한 성서배경이 스며들어있어 읽는 내내 재미와 유용함이 더하는 책이다. 성경을 깊이 그리고 자세히 읽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이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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