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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sées

팡세-신을 갈망하는 이유는?

by 샤마임 2012.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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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ise Pascal




신을 갈망하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통제되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잠재하고 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오직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이다. 아담은 그것을 통제함으로 모든 실권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선악과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것을 '신이 되고자하는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이 욕망은 너무나 강열하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 과학과 의학, 경제 등등의 발달은 결국 인간의 통제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고, 모든 환경을 자신의 통제아래 두려하는 것이 바로 신이 되려는 욕망인 것이다. 오직 신만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이나 바벨탑 사건 등은 모두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신비란 무엇인가?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통제불능 영역이란 뜻이다. 인간은 자신이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경의를 느끼지 못한다. 그곳에서는 '권태'를 느낀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사람에 대하여 사람들은 깊은 분노나 존경을 나타낸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 남자에게 정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모든 여자로부터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그러나 유일하게 그 여자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시하고 무관심하다. 그러면 이 남자는 모든 여자를 버리고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강력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여자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순간, 남자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 버린다.(최소 관심의 법칙) 남자는 여자를 얻는 순간 그 여자에게 권태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남자들은 결혼 전까지 죽도록 여자를 따라 다니다 결혼 하고 나면 딴 여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안에 내재된 신이 되려는 욕망 때문이다.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신앙의 문제를 다루어 보자. 인간은 어디서부터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가? 그것은 오직 '신'에게서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신비롭고, 매력적인 존재는 신이기 때문이며, 신만이 자신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에게 자신을 위탁함으로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 왜냐하면 신의 능력이 자신에게 믿음을 통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우리들 내부에도, 또한 우리들 외부에도 없다. 그것은 신에게만, 즉 우리의 내부와 외부에 모두 있다." 또 이렇게 말했다.


"자기의 의사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될 때에도 결코 만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의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자의가 없다면 불만이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이 있는 한 인간은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472)


빌립보서 2:12에서 사도바울은 '두려움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고 했다. 두려움이란 자신이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다. 마치 자신을 낭떠러지 끝자락에 위치 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위기를 느끼는 순간 인간은 신의 존재를 필요로한다. 바울의 이 말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  날마다 의탁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제불능의 상황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지만, 하나님께로 가는 지름길이자 원동력이다. 토인비가 예로 들어서 청어의 매기와 같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스칼의 말로 마무리해 보자.


"두려움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룰지어다." 기도의 증거,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구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미치는 곳에 있다. 얻음은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기도함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함이 우리의 능력 안에 있지 않고 얻음이 그 안에 있는 것이라면, 기도는 그 안에 있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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