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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갈라디아서 5장 예수로 충분하다!

샤마임 2020. 1. 26.

[장별설교] 갈라디아서 5장 예수로 충분하다!

갈라디아서 5장은 선언과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선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것이고, 명령은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5:1은 갈라디아서의 전체 요약인 동시에 권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장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 1-12절 거짓 교사들을 배척하라

2. 13-26절 성령을 따라 행하라.

1. 1-12절 거짓 교사들을 배척하라

5:2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바로 할례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확신했던 근거는 바로 할례였습니다. 할례를 하나님께서 자녀를 약속하신 후에 언약의 표로서 할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창세기 17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 구십 구세에 나타나 언약을 재확신시켜 줍니다.

[창세기 17:9-14]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이며, 동시에 할례를 받게 된다면 그 언약이 유효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던 거짓 교사들은 바로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이것으로 갈라디아인들을 유혹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성도가 몇이나 있을까요? 그런데 바울은 이들의 거짓에 대해 명백하게 선언합니다. 2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가 할례 받은 갈라디아인들에게 아무런 효능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한 가지를 행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다 행해야 합니다.(3절) 결국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려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4절)지게 됩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할례는 예수님을 믿고 추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게 되면 그리스도의 공로가 무가치하게 되어 결국 모든 구원이 취소되고 헛것으로 되돌아게 됩니다. 우리는 율법을 행하든지, 그리스도를 믿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율법도 행하고 예수도 함께 믿을 수 없습니다.

2. 13-26절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울은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으니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랑 안에 모든 율법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야 말로 율법의 핵심이고, 원리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노력한다고 될까요?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16절에서 조언합니다. 성령과 육체의 소욕은 서로 대결하며 경쟁합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성령이 함께 합니다. 그러나 육신을 벗지 못했기 때문에 악의 소욕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성도는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인도하심 사이에서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육체의 일을 보십시오.(19-21) 모두 나열하기도 힘듭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好色),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말합니다. 육체의 일은 특징은 24절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탐심입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의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을 ‘탐식’으로 규정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골로새서 3:5에서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선언했습니다.

육체를 따르는 것은 오직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사용하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의 본질 속에는 모든 피조물이 자신만을 경배하도록 하려는 신적 속성이 왜곡된 모습으로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경배를 받으시지만 피조물을 사랑하시고 돌보십니다. 하지만 악은 오직 경배만을 받으려고 돌보지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의 본질입니다.

이제 성령의 열매를 보십시오. 22-23절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언급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얻어지는 것들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열매가 충만히 맺힐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마땅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사랑(ἀγάπη)

갈라디아교회가 고린도교회처럼 현저하게 드러난 분당과 다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로 인해 적지 않은 다툼이 일어났고, 교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율법의 목적이자 전제, 핵심은 바로 사랑입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아가페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하시는 사랑에 종종 빗대어 사용하며, 성도들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더글라스 무는 “동일 어근을 가진 동사와 함께 이 명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가지신 사랑과 서로를 향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낸다”라고 말합니다.

희락(χαρά)

카라는 선이 나열된 목록 중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된 단어입니다. 희락 즉 기쁨은 육신의 쾌락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오는 기쁨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평안한 마음의 상태이며 어려움과 시련 가운데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감정’입니다.

화평(εἰρήνη)

화평은 히브리어 ‘샬롬’을 번역한 것입니다. 외적인 평화를 표현하지만 신약의 저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화평을 더 주요하게 다룹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평이야 말로 진정한 화평입니다.

오래 참음(μακροθυμία)

자비(χρηστότης)

양선(ἀγαθωσύνη)

충성(πίστις)

온유(πραΰτης)

절제(ἐγκράτει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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