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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 박동근 / 세움북스

샤마임 2020. 3. 6.

올인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박동근 / 세움북스


지난주부터 성경을 통독하면서 성경의 줄거리를 요약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미 너무나 잘 아는 성경을 굳이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정리를 하면서도 제 스스로에게 질문하곤 합니다. 그렇게 10일 넘게 읽고 또 읽고, 중요한 사건을 추려내고, 간략한 해설과 함께 성경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드디어 사사기까지 마치고 내일부터 통일왕국시대를 다루는 사무엘서로 들어갑니다. 작년에도 한 번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정리하다보면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경을 정확하게 읽게 됩니다. 이름이나 지명, 시간과 사건의 흐름들을 잘 읽어야 요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역사의 흐름을 알게 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마음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사사기를 마무리하면서 삼손 스토리와 뒤이어 나오는 미가의 제사장과 레위인의 첩 사건을 접했습니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이해할 수 없는 반복들이 연이어 나오는 발견했습니다. 육백이란 숫자입니다. 에훗 이후 아낫의 아들 삼갈이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입니다.(3:31), 단 지파에서 육백 명이 북쪽으로 미리 떠납니다.(1:11)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살아남아 광야로 도망갑니다.(20:47) 성경 안에서 ‘6’은 완전수인 ‘7’에서 하나 부족한 숫자이기에 대체로 신이 아닌 인간의 숫자, 또는 악을 상징하는 짐승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사기에 등장하는 육백이란 숫자는 육백에 100을 곱한 숫자이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거나, 악의 충만한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장된 해석법은 성경을 엉뚱한 길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반드시 전체에서 부분으로, 부분에서 다시 전체로 해석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이러한 오류나 왜곡된 관점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성경 해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성경 해석이 필요합니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1644]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해서는 기초적인 교리를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보수교회는 칼뱅의 기독교 강요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을 중요한 교리로 다룹니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는 종교개혁의 완성이라할만큼 중요한 교리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교리서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칼뱅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바른 신앙을 위한 고백하기 위해 정리한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은 교리를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든 질문(:)과 대답(:) 형식의 학습서입니다. 당시 일반 강의나 교육이 아닌 문답형식으로 만든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하고 암기하여 답하는 형식으로 학습이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고 사고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문답형식으로 진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현대의 교리교육은 문답형식에서 탈피하여 주제에 맞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강의형식으로 들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며 가장 적절하게 교리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요? 필자가 보기에 주일 오후나 수요 기도회를 통해 주제별로 성경을 강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것은 다이아몬든 원석을 캐내는 작업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보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공과정을 거쳐 아름다운 보석이 됩니다. 동일한 원석이지만 어떤 세공사가 세공하느냐에 따라 보석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가 보기에 요리문답서는 실력 있는 세공사의 세공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가 더 좋다고 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요리문답입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죄 많은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만든 요리문답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1563년

저만의 생각이지만 현대는 교리를 다시 현대의 언어로 풀어내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시기는 중세의 모호함과 왜곡된 교리들을 재정립하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는 시기였습니다. 루터와 츠빙글리, 칼뱅의 글들은 교리서적들이라고 보기에는 빈약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성경 해석자요 강해자들이었습니다. 현대의 조직신학과 칼뱅의 기독교 강요는 현저히 다릅니다. 칼뱅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 기독교 강요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17세기와 18세기는 교리의 시대라 할 만큼 수많은 교리들이 정리되고 정립됩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시대는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근대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포스트모더니즘은 비평과 회의를 너머 삶의 실존을 물었습니다. 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너머 삶의 존재 자체조차 회의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기는 다시 스토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리를 시대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화석화된 문자를 공감의 언어로 다시 들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고 있는 것이 재해석된 교리, 또는 삶으로 풀어낸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박동근 목사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설교와 해설을 너머 시대의 요청에 맞게 새롭게 풀어낸 교리입니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교회를 개척한 후 요리문답과 신조들을 강설해 왔다고 고백합니다. 처음 그냥 설교이라 생각하며 읽고 싶은 마음이 덜했습니다. 솔직히 교리 설교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 많은 설교들이 너무나 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요약하고 주제별로 성경의 이야기를 추려내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이 책을 제대로 읽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분량에 있어서 설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풍성합니다. 내용도 식상하지 않고 적절한 성경 해석과 강해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추측이지만, 아마도 저자가 설교를 다듬어 내지 않고 완전히 새롭게 글을 쓰지 않았는가 싶을 정도로 꼼꼼하고 풍성합니다. 편집자 역시 수많은 인내의 시간이 요구되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읽어 가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설교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 책은 참고용으로도 좋고, 교리를 설교하는 좋은 모범으로서도 좋습니다. 교리를 풀어가면서 삶의 언어로 다시 풀어내려는 저자의 고민이 역력합니다. 기꺼이 이 좋은 책을 성경을,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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