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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장 12-20교회는 아픔도 기쁨도 함께 합니다.

샤마임 202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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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장 12-20교회는 아픔도 기쁨도 함께 합니다.

1. 5:12-20 구조

야고보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갑자기 끝이 납니다. 12절은 앞과 뒤가 어울리지 않는 맹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13-18절까지는 기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대교회가 행했던 기도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기도합니다. 죄의 고백과 병을 위한 기도가 맞물립니다. 19-20절은 갑자기 형제를 돌이키라는 조언을 한 다음은 편지를 바로 마칩니다. 이러한 마무리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뒷부분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한 가지의 일관된 형태의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맹세에 대한 메시지 앞 뒤로 고난과 인내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즉 이 구조는 맹세를 중심으로 고난에 대한 인내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앞이 인내로 인한 좋은 결말을 이야기하고, 뒤는 고난 속에서 기도함으로 병이 낫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맹세하지 말라’(마 5:34)는 말씀을 기억하여 맹세의 폐단을 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맹세의 폐단은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러한 맹세에 대한 거절은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와 연결됩니다. 우리는 다만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뿐입니다.

12 맹세하지 말라

13-18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라

19-20 미혹된 자를 돌이키라

 

2. 강해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앞날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오늘 나에게 지킬만한 힘이 있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맹세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맹세를 권하는 사회는 신뢰가 무너진 사회입니다.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이름으로, 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그것은 악한 것이며, 사랑 없는 이기적 사회임을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인이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교만입니다. 맹세를 금하는 것과 ‘허탄한 자랑’(4:16)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내일을 자랑하는 것, 맹세함으로 내일(來日)을 확신하는 것들은 모두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12절)하면 됩니다.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운명입니다. 악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속의 원리는 진리와 언제나 충돌합니다. 진리를 따라 산다면 고난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고난은 바다의 풍랑과 같아 더 빨리 주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고난은 실패가 아니라 바른 것이며, 정직한 삶의 결과입니다. 즐거운 일이 있다면 찬양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 경건한 사람이 즐거운 시기에 급격하게 방탕의 길로 빠져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도 위기지만 즐거울 때도 위기입니다. 모든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을 날마다 이루어가야 합니다. 바울의 권고를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하나님의 아들 삼으심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의 사랑, 그분의 구속, 그분의 은혜가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죄인이며 버리지임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찬양으로 주님 앞에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는 겸손함으로 이루어지며, 감사함으로 풍성해집니다.


병든 자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직접 기도하라고 하지 않은지를 생각해 봅시다. 당시의 장로들은 현재의 목사와 같습니다. 물론 현재의 장로도 포함됩니다. 그들은 교회의 대표들이며, 교인들의 사정을 알아야 할 지도자들입니다. 어떤 성도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자신의 어려움을 감당하려 합니다. 책임감 있고 성실해 보이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나눔으로 한 몸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가족이 서로의 고통과 행복을 나눔으로 하나가 되듯 교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고통을 아무에게도 나누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장로들이 기도할 때도 자신이 아닌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여기서 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을 낫게 합니다. 야고보는 병을 느슨하기는 하지만 ‘죄’와 연관시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적 전통 속에서 질병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다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말합니다. 죄는 다시 ‘의인의 간구’로 이어집니다. 초대교회 전통은 병든 자가 직접 기도하는 일을 흔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였고, 예외적인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병든 자를 위한 기도는 반드시 교회 지도자들이 와서 기도했고, 기도할 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초대교회는 현재 가톨릭의 고해성사나 개신교의 회개기도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파격적인 공유를 지향했습니다. 어쩌면 초대교회의 부흥은 은밀한 죄가 불가능한 생활양식과 사적이면서도 친밀한 교제가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례 주는 것도 까다로웠고, 수년 동안 교리 공부와 거룩한 삶의 징표들을 점검했습니다. 특별히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의인’은 종교개혁 이후 인식하고 있는 칭의로서의 ‘의인’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전인격적이며 삶이 동반된 공적 존재로서의 ‘의인’에 가깝습니다.


의인의 기도는 삶이 동반된 기도이며, 존재방식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기도와 삶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불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를 기도의 선지자로 소개합니다. 아합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처럼 보이지만 야고보는 엘리야가 기도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타락을 보며 하나님께 ‘왜 약속하신 대로 가뭄을 허락하지 않습니까?’라고 기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왕상 8:35-36)


가나안에서 비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긍휼의 표시입니다. 그들이 범죄 할 때 하나님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특별히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이었고,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이키라고 권면합니다. 그가 돌이켜 구원받으면 허다한 죄를 덮게 될 것입니다. 만약 마지막 두 구절이 병든 자의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며, 그는 죄로 인해 병이 든 것이며, 그로 인해 회개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장로들은 그를 찾아가 기도하여 병을 낫게 할 뿐 아니라 그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야 할 의무도 함께 짊어집니다.


야고보서는 이것으로 끝이 납니다.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함으로 시작된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 줍니다. 시험과 인내는 적지 않은 곳에서 강조되며,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해짐을 알려 줍니다. 야고보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온전’이란 단어입니다. 이것은 흠 없는, 완벽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열매 맺는 정상적인 씨앗을 말합니다. 야고보는 초월적 능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다면 당연히 삶을 통해 드러나야 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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